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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브리튼 특별기획전: Now You See Us – 400년간의 여성 화가들을 기억하다 | ARTLECTURE

테이트 브리튼 특별기획전: Now You See Us – 400년간의 여성 화가들을 기억하다


/Site-specific / Art-Space/
by Ayla J.
테이트 브리튼 특별기획전: Now You See Us – 400년간의 여성 화가들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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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가는 길.

 

테이트 미술관의 전신인 테이트 브리튼은 템즈 강변 밀뱅크 지역에 위치해 있다런던의 튜브(지하철핌리코(Pimlico) 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뒷문으로 들어가게 된다테이트 브리튼으로 가는 길은 늘 날이 좋았던 것 같다.

 


 

테이트 브리튼은 다른 미술관에 비해 덜 붐빈다아담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클래식한 미술관, ‘영국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미술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언제나 많지는 않기에상설전을 보기 전 기획전을 먼저 둘러보기로 한다그 날은 존 싱어 사전트의 전시와 여성 미술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시간상 다 보기는 어려워 여성미술가전을 보기로 한다.

 



 

영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생긴 건 1918그즈음엔 여성화가라는 단어조차 낯설었을지 모른다미술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찰스 1세의 초청으로 영국에 머물며 몇 점의 주문화를 그렸다세상의 편견에 맞선 당당한 여성화가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번 전시의 목적은 그렇게 기록되지 않았던혹은 잊힌 여성 화가들을 다시 불러내어 기억 속에 자리하게 하는 것이었다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소심하게혹은 대담하게 재능을 펼치며 꿈을 그려낸 그녀들의 작품과 마주한다.

 




 

 

젠틸레스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사선의 구도가 자연스러우면서도 과감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장로들, 1638~1640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산나와 장로들>이다젠틸레스키는 이 외에도 같은 주제로 여러 점을 더 그렸다이 작품은 구약성경(다니엘서 부록)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수산나는 부유한 유대인 요아킴의 아내로아름답기로 소문난 인물이다어느 날 그녀가 정원에서 목욕을 하던 중몰래 숨어 있던 두 장로가 그녀에게 접근해 간음을 요구한다이를 거절하자 두 장로는 수산나가 젊은 남자와 간음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한다.

 

율법에 따라 간통은 돌로 쳐 죽일 죄였기 때문에수산나는 사형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그러나 젊은 재판관 다니엘이 각 장로를 따로 불러 심문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모순된 진술로 인해 두 장로의 거짓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수산나는 결국 명예를 회복한다.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이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잘 알려져 있듯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진술을 굽히지 않았다그런 억울함과 분노를 그녀는 그림으로 풀어냈던 것이 아닐까.

 

강하고 영민했던 그녀는끝내 그림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Tate Britain 전시장 전경ㅣPhoto ⓒAyla J.Lim

Mary Beale (1633-1699), Sketch of the Artist's Son,

Bartholomew Beale, in Profile/Facing Left, 1660 | Tate Britain | ⓒAyla J. Lim

 

 

메리 비일(16331699)은 런던에서 활동한 영국의 여성 초상화 화가였다. 1670년대부터 전문 화가로 활동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글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했다여성 화가로서는 드물게 회화 기법에 관한 안내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녀는 가족과 지인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위의 작품은 장남 바솔로뮤 비일(1656년 세례)의 옆모습을 그린 스케치다일반적으로 초상화에서는 정면 구도가 많지만이 작품에서는 양쪽 옆모습을 나란히 남겼다는 점이 인상 깊다아들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과 더불어상반신 구도의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여성화가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던 당시에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직업화가로 활동했다는 점도 필자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Emily Mary Osborn (18281925), Nameless and Friendless, 1857 | Tate Britain | Ayla J. Lim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화상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그녀 옆에 선 아이는 비교적 당당하게 상황을 바라보지만여성은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다그림을 살펴보는 화상은 냉담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고사다리 위의 조수는 그림을 흘끗 바라볼 뿐이다그녀는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화랑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그린 에밀리 메리 오스본은 여성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였다그림 속 여성은 검은 옷차림의 고아 출신 화가로 묘사되며어린 남동생으로 보이는 소년과 함께 그림을 보여주러 화랑을 찾은 장면이다이 작품은 단순한 장면 묘사를 넘어당시 여성들이 예술계에서 마주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담아낸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으로 기획되었다.

 

오스본은 아동을 그린 그림과 장르 회화로 잘 알려져 있으며특히 곤경에 처한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1857여성 예술가들이 전시와 판매에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설립된 여성 예술가 협회(Society of Female Artists)’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이 그림 속 여성의 처지와는 달리 오스본 본인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는 점이다학생 시절에는 가족의 지지를 받았고단체 초상화를 판매해 자립적인 화실을 꾸릴 수 있었으며빅토리아 여왕을 포함한 여러 여성 후원자들의 지지도 받았다그녀는 이후에도 오랜 시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에도 사회적·경제적 기반이 있는 일부 여성만이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여성 화가들이 드물지만 분명 존재했다현대에도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과 구조적 장벽 속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많은 작가들의 현실을 문득 떠올린다그림 속 여성의 고립된 자세와 불안한 눈빛은 지금 이 시대의 작가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Mary Moser (17441819), Summer, ca.1780 | Tate Britain | Ayla J. Lim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당시에도 여성 화가들은 꽃이나 자수장식 회화 등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주제나 공예적인 작업들을 많이 했다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이런 작업들은 종종 여성들의 취미 수준으로 폄하되었지만사실 꽃을 그린 남성 화가들도 많았다그러니 꽃이라는 소재가 여성적인 소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메리 모저(Mary Moser)는 영국 왕립아카데미(Royal Academy)의 창립 멤버 36인 중 유일한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스위스 출신의 화가였고어린 시절부터 모저는 아버지에게 직접 미술 교육을 받으며 재능을 키워나갔다초상화나 역사화도 그렸지만그녀는 꽃을 주제로 한 회화로 잘 알려져 있다그 실력을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공주의 미술 교사로 임명되었고왕실로부터 다양한 의뢰를 받기도 했다.

 

 


꽃을 그렸던 여성화가들의 작품들, Tate Britain 전시장 전경 | Photo © Ayla J. Lim 


Laura Knight (18771970), A Dark Pool, 19081918 | Tate Britain | Ayla J. Lim

 

 

로라 나이트(Laura Knight) 역시 영국의 여성 화가로 유화나 수채화 에칭등 다양한 매체로 그림을 그렸다그녀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로라 나이트는 연극과 발레 무대 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이나,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공식 전쟁화가로 여성들의 전쟁 참여와 군수 공장에서의 활동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1929년 여성화가로는 최초로 대영 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결혼 이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콘월(Cornwall)과 뉴린(Newlyn), 라모나(Lamorna) 지역으로 이주해 예술가 공동체에서 활동했고이 시기에는 해변과 절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Anna Airy (18821964), The ‘L’ Press: Forging the Jacket of an 18-Inch Gun, Armstrong Whitworth Works, Openshaw, 1918 | Tate Britain | Ayla J. Lim

 

 

안나 에어리(Anna Airy)는 생전에 높은 평가를 받았던 화가였다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모더니즘이 주류가 되며 에어리와 같은 리얼리즘 화가들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잊혀지게 된다그녀는 영국계와 독일계 혼혈로 태어났다그녀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고모와 함께 자랐다아버지나 고모 모두 그녀와 언니의 예술적 재능을 적극적으로 격려했다고 한다.

 

그녀는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다녔는데재학 할 당시 주요 상과 장학금을 휩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학생 시절그녀는 자신의 안락한 중산층 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호기심을 가겼다그녀는 템스 강변의 권투장과 불법 도박장 등의 세계를 직접 찾아나섰고그 경험은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 1차 대전이 발발할 무렵 에어리는 이미 활발한 활동과 공적인 명성이 있었고그녀 역시 전쟁화가로 임명된 몇 안되는 여성 중 한명이 된다그녀는 제국전쟁박물관의 군수품 위원회에서 의뢰를 받아 중공업 현장에서 일하는 군수 노동자들을 묘사한 대형 회화 네점을 제작한다.

1520년부터 1920년까지약 400년에 걸쳐 활동한 여성 화가들 중 일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오랜 시간 동안 여성 화가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그 시기에도 재능과 명성을 갖춘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이름은 점점 잊혀졌지만기억되는 작가보다 잊혀지는 작가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이렇게 꾸준히 작품을 발굴하고작가를 기억하며 연구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생물학자 최재천 선생님의 말처럼사람도동물도그림도 결국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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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Ayla J. 

예술을 통해 삶을 용서하고, 예술을 통해 삶을 사랑하고, 예술을 통해 삶 속에서 노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