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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손윤원 개인전 《발 아래 머리 위》 리뷰 | ARTLECTURE

환대의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손윤원 개인전 《발 아래 머리 위》 리뷰


/Art & Preview/
by 이도요
환대의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손윤원 개인전 《발 아래 머리 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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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바닥 구조물처럼, 일상 속 환대의 풍경도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우리 사회가 완벽한 유토피아의 장일 수는 없다. 그러나 주위에서 누군가가 들어설 권리, 자리 잡을 권리가 점차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공간에서 누군가를 적대하고 배제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장소의 구멍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인지하는 것, 동료들과 우정과 연대를 이어가는 실천부터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도시의 일상 속 적대적 풍경]

 

언제부턴가 도심의 광장작은 공원에서는 칸막이가 붙은 의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좋다고 만든 거야진짜 못됐어.” 한 친구는 이 의자를 마주칠 때마다 그 제작의도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이 의자는 누울 수도 없을뿐더러 두 명이 나란히 앉을 수도마주 앉을 수도 없었다우리는 할 수 없는 게 많은 의자에 앉았다차가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붙어 앉아 특정 대상을 싫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대가 없이 앉을 자리라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엉덩이 한 번 붙일 곳의 가치가 막대하게 다가왔던 지난 코로나19 시기가 떠오른다매체에서는 사람들에게 집이나 실내 공간에 있을 것을 요청했으나 모두가 안전하고 아늑한 집을 가진 것은 아니다도서관의료복지시설과 같은 공공시설이 길게 폐쇄되었던 시기였으므로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은 여러 장소를길가를 전전해야 했다그러다 누구라도 빨리 떠나길 바라는 이 야속한 의자에 잠시 앉아보았을 것이다비인간 동물에게 비슷한 기능을 하는 대표적인 물건은 비둘기 스파이크라고 불리는 철조망이다비둘기와 같은 조류를 쫓아내기 위해 도심 곳곳의 다리와 건물 외벽에 설치된 뾰족한 철조망은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장면을 일상적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사회적 성원권’, ‘환대’ 등의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인류학자 김현경은 그의 저서 사람장소환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

 

 

[바닥에서부터 시작된 환대와 연결의 가능성]



<썬베드>, 2024, 이중바닥재알루미늄온열장치나무경첩가변크기

<얼굴들>, 2024, 구슬흙 또는 테라코타, 35x40x30cm

 

 

손윤원 작가는 바닥을 주요 소재로 삼고 줄곧 환대와 연결의 가능성을 이야기해 온 작가이다지난 2024년 11월 16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인사미술공간에서 손윤원 작가의 국내 개인전이 7년 만에 열렸다그 사이 작가는 부지런히 국내외 단체전과 해외 개인전을 개최해 왔다. 2024년 한 해만 해도 갤러리2의 나란 나란 읽는 시대아르코미술관의 인투 더 리듬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 전시와 서울책보고 기획전책장 드로잉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었다작가는 장판이나 나무금속 자재를 이용해 제작한 바닥 구조물점토로 제작한 조형물이나 동료와의 협업 작품음향 퍼포먼스 등을 선보여 왔다이번 개인전에서는 그간의 작업 양상을 전시 공간에 맞추어 복합적으로 펼쳐냈다.

작가는 바닥을 세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바닥 작업은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간을 관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언급해 왔다. ‘바닥은 밑바닥근본기초최하층 등 여러 의미를 함의할 수 있다손윤원의 작품에서 바닥은 계급적 의미보단 그것의 공간적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장소로 연결된다한국인들은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만큼우리 다수에게 좌식문화는 친근하며 바닥은 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전시장 1층에 금속 평상 <썬베드>와 그 위로 뒹굴고 있는 점토조각 <얼굴들>이 펼쳐졌다. “작품에 앉아서 관람하세요곳곳에 따뜻한 자리가 있습니다.” 전시장의 스태프와 바닥의 안내가 친절하다. <썬베드>는 이중바닥재로 쓰이는 금속재료로 제작되어 한없이 차가워 보이지만 평상에 올라선 발바닥에는 따듯함이 느껴졌다표정을 지닌 얼굴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게 천천히 걸어보았다살짝 퉁명스러운 표정부터 미소를 띤 표정까지밝은 피부색부터 진한 피부색까지 있으며 구슬로 된 눈알이 빠져 눈물을 흘리는 얼굴도 있었다.

주위에서는 사운드 작업인 <Anniversary>가 내내 들려왔다스페인 작가 안드레스 가르시아 비달과 협업하여 11월 16일의 오프닝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운드이다이들은 후안나리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협업을 이어왔다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다른 동료들과의 또 다른 협업 작업을 만날 수 있었다. 25개의 엽서 작업 <Post>이다라나 머도키카트린 그라프에이미 윈스턴리머라이어 블루는 손 작가가 네덜란드 유학 시절 만난 친구들로이들은 현재 4개국에 흩어져있지만 4년 동안 와이파이 환경을 이용해 꾸준히 연결되어 왔다. <Post>는 이들 각자의 삶과 우정을 드로잉으로 남긴 작업이다.

 

 

 

<미끄러지는 바닥이거나소리의 엔벨로프이거나>, 2024, 장판나무합판테라코타가변크기


<와이파이>, 2020, 대리석알루미늄, 20x20x5cm

 

 

전시장 2층에 이르자 커다란 목재 구조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미끄러지는 바닥이거나소리의 엔벨로프이거나>가 전시 공간을 휘감는 커다란 파도 형상처럼 펼쳐져 있었다엔벨로프는 소리가 변하는 양상을 나타내는 음파의 모양을 뜻한다스케이트 보드장 같기도 한 구조물에 올라타면 곧 긴장감을 주며 잔음을 길게 남기는 끼익 소리가 발밑으로 울린다작가는 곳곳에 발 아래 공간을 볼 수 있게끔 제작했기에우리는 발밑에 무언가가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작가가 이전에 선보인 작품을 먼저 알고 있다면다른 살림을 지내는 이웃이거나 유령개미 심지어 꼽등이와 같은 생명체일 수도 있겠다작가가 친구들과 연결되기 위해 크게 도움 받았을 와이파이 공유기오늘날 실내 공간의 존재감 없는 장식물이기도 한 이 물체의 잔해를 대리석과 알루미늄으로 구현한 <와이파이>는 목재 구조물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얼굴들중 일부

 


[환대의 지평을 넓혀가려면]

 

다양한 경계에 속한 이들은 환대의 대상에서 은연중 배제된다. <썬베드>와 <미끄러지는 바닥>의 실천은 이러한 감춰진 배제를 드러내며환대의 가능성과 그 한계소속감에 동전의 양면처럼 수반된 배제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경계들을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금지원 큐레이터

 

작가는 우리를 새로운 바닥 구조물로 초대하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발 아래의 공간을 마주치게 하거나 군데군데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얼굴들중 눈에 해당했던 유리구슬은 물과 함께 작품 <공기>에 담겨있는데이 공기 그릇들은 <썬베드>를 지지하는 한 기둥이 되기도 했다이 장면은 누군가의 눈물이 우리가 발 딛고 올라간 평상의 기둥이 된 듯 보인다전시글을 작성한 금지원 큐레이터는 작품 속 경사와 장애물이 존재한다고 말하며사실 인미공 건물 또한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휠체어와 유모차의 진입이 어려움을 언급했다이동권에 제약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멍 난 바닥의 존재가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환대의 장소에 생긴 구멍은 장애인과 노약자외국인성소수자 또는 가난한 사람이 종종 사회에서 배제되는 풍경과도 같다.




 

다시사람장소환대에서 김현경 저자는 사회란 본디 조건부 환대가 아닌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자크 데리다는 절대적인 환대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이와 달리 저자는 칸트가 그랬듯이환대의 권리를 공간에 대한 권리이자 교제의 권리로 이해한다절대적 환대란, 사적 개인이 다른 사적 개인에게 자신의 공간을 완벽히 개방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 자격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로 환대를 정의했다.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바닥 구조물처럼일상 속 환대의 풍경도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우리 사회가 완벽한 유토피아의 장일 수는 없다그러나 주위에서 누군가가 들어설 권리자리 잡을 권리가 점차 사라진다면우리 사회의 많은 공간에서 누군가를 적대하고 배제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면우리는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내가 발 딛고 서있는 장소의 구멍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인지하는 것동료들과 우정과 연대를 이어가는 실천부터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오늘날 타인과 연결되고 연대하는 감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타인을 환대하는 장소는 멀리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나의 발 아래머리 위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POST> 중 일부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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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도요_ 보고 작게 말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