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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빛나는 깨어진 형태 | ARTLECTURE

금빛으로 빛나는 깨어진 형태


/Artist's Studio/
by 박수현
금빛으로 빛나는 깨어진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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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완벽한’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이상, 이미 깨지고 무너진 관계는 새로운 관계의 재료가 된다. 곧 또다시 깨져버린다 해도 거기서 시작하여 새로이 만들어 나가면 된다. 어긋난 계획을 기회로 여기고 불완전한 형태의 다양하고 예기치 못한 양상을 즐기면서...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할 때, 대상의 완전한 상태를 기준으로 현재의 옳고 그름, 적합성과 부적합성을 판단하곤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사고가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는 대상,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정의함으로써 다른 단어들과 구분시키고 다른 이들과의 소통에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한다. 대상에 이름이 붙여진 순간부터 대상은 그 이름의 정의에 따라 존재가치가 규정되고 판단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대상의 실체는 대부분 그 정의가 표현하는 완전한 상태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적용되는 여러 단어들도 완전한 상태를 전제한다. ‘사랑’, ‘우정’, ‘존경’, ‘신뢰등의 단어에는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가 담겨있을 뿐 부정적인 요소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인다. 더 나은 관계와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현실에서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쳤을 때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미 관계가 깨져버렸다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다른 문제이다. 관계의 완전한 상태에 집착하기보다는 깨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고 달라져 버린 관계의 새로운 양상을 받아들인다면 그 관계는 다시 단단하게 이어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변주된 형태 속에서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수경은 깨진 도자기 조각을 모아 붙이는 번역된 도자기시리즈를 20여 년간 이어왔다. 높은 경지의 도자 명인들이 자신이 만든 도자기 중에서 완전한 것만을 추리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깨뜨려버리는 행위는 높은 이상을 향한 철저한 장인정신을 나타내는 익숙한 예시이다. 이수경은 그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가져와 에폭시로 이어 붙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자기를 만든다. 흩어진 파편들은 단단히 붙여져 오히려 도자기보다 튼튼한 오브제가 되고, 깨어진 흔적인 (crack)’에는 금박과 금분이 입혀져 귀한 (gold)’으로 거듭난다. 작품은 항아리 크기의 작은 오브제에서 시작되어 점차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전개되며, 둥근 백자 파편에서 시작되어 점점 청자 등 다른 종류의 도자기로 확장되고 한 작품 안에 여러 종류와 색상의 도자기 파편들이 함께 조합되기도 한다. 주자 주둥이나 손잡이 등 가늘고 긴 파편으로 작품에 섬세한 디테일을 추가하고, 수 세기 전 이탈리아의 도자기 파편을 사용하면서 작품의 맥락을 다른 문화와 시대로 확장시킨다. 도예 공방의 폐기물뿐 아니라 작품을 위해 별도로 도자기를 제작하여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파편을 이어주는 금빛 접합 부분도 그 두께와 형태, 밀도를 달리하면서 오브제에 리듬을 더한다. 작품을 신화의 모티브와 연결시킴으로써 내러티브를 부여하고 관람객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렇게 작품의 형태와 크기, 디테일, 내용은 무궁무진하게 변주되면서 작품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부족해서 깨뜨려지고 버려진 쓸모없는 것이 새롭고 가치 있는 존재로 재탄생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이 예술적 결과물은 완벽한 도자기가 줄 수 없는 풍부하고 다양한 시각적 변주. 내러티브, 상상력과 영감으로 관람자를 이끈다. 작풍은 또한 장인과는 다른 예술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장인은 불완전한 것은 그 존재도 용납하지 못해 깨뜨려버린다. 자기 손으로 만든 도자기도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 엄격하고 냉정한 잣대와는 대조적으로 예술가는 완벽한 정답을 만들 생각이 없다. 오히려 예술가는 발터 벤야민이 넝마주이에 비유하듯 거리를 돌아다니며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들을 예술적 소재로 주워담고 생각지도 못한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작품에 기대어, 우리의 관계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을 가져본다. ‘완벽한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이상, 이미 깨지고 무너진 관계는 새로운 관계의 재료가 된다. 곧 또다시 깨져버린다 해도 거기서 시작하여 새로이 만들어 나가면 된다. 어긋난 계획을 기회로 여기고 불완전한 형태의 다양하고 예기치 못한 양상을 즐기면서...이 방식은 내 이상을 지키는 것보다 그 존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할 때 가능하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존재를 생각하며, 완벽한 관계에 대한 고집이나 환상이 아니었더라면 지킬 수 있었던 관계를 떠올려본다.

시행착오를 동반한 끝없는 노력을 통해, 깨지고 무너진 관계는 원래보다 단단한 새로운 관계가 된다. 흉터 자국같이 울퉁불퉁한 흔적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금박을 입혀 드러낸다. 이제 주인공은 형태 자체가 아닌, 그 형태를 만들어낸 순간들, 깨짐과 봉합의 순간이다. 존재가 파괴된 그 경계면은 봉합되어 흉터가 되고, 그 흉터들은 반짝이며 그 형태를 빛내주고 지지해주는 소중한 일부가 된다.

 


Translated Vase_The Other Side of the Moon_2014 TVB 2


Translated Vase_2014 TVW 2 (left), Translated Vase_2014 TVWG 1(right)

 

Translated Vase, TVBGJW1


Translated Vase_2007 TVW 11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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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수현_매일의 삶과 함께 하는 예술을 바라며, 글을 쓰고 기획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