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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시작과 황혼의 마지막 공간은 서로 닮았다. 두 남녀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새 출발로써의 결혼을 하는 웨딩홀(결혼식장)과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들리는 요양원의 공간은 우리 삶의 출발과 종착을 말해준다. 웨딩홀은 새로운 시작과 미래를 의미하는 반면, 요양원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보호와 안락함을 제공하는 곳으로서 서로 보완적인 존재이다. 한가지 아이러니 한 것은 이 두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담은 겉 모습이 마치 동일한 용도로 보일 만큼의 외적인 유사성을 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국적 판타지를 기호화 시킨 성(castle)의 모습이다. 물론 모든 결혼식장과 요양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통틀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판타지적 요소를 건물 외부로부터 발산하고 사람들을 집중시켜 모으는 용도로써 보자면 역시 자본주의사회의 단면으로 모여지는 부분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남들과 다른 결혼, 남들과 다른 황혼서비스를 받으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보고 싶다. 포스트 모던 이후의 사회가 가진 재해석과 재창조를 오로지 판타지 재생산으로 봐야하는 것이 마땅한가? 21세기에 중세 성의 모습을 현실과 충돌시켜 펑크적 요소를 드러냄으로써 판타지에 다가서려는 시도는 어떠한 이유에서 발생하는가?
1. 새출발과 종착지는 같은 건물에서
도심에 있는 웨딩홀중 1980년대부터 등장한 오래된 건물들은 대부분 서구의 성(castle)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건축의 용도와는 별개로 장식되어진 오너먼트적 파사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진만 보면 유럽의 도시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서구 건축 재현에 충실하려 노력하였다. 결혼을 성에서 한다는 것은 한국사람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고, 상류층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평범한 일은 아니다. 성이라는 공간은 현대화된 테크놀러지 시대에 있어서도 판타지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진] 종로(좌측)와 용산(우측)에 위치한 웨딩홀의 외관 모습
2000년 세계적 팝가수 마돈나는 가이리치 감독과 스코트랜드에 있는 스키보 성(Skibo Castle)에서 결혼식을 올린적이 있다. 이 결혼식이 세기의 결혼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엄청난 부가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바로 이 장소가 13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유명한 성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성은 진짜 성이라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웨딩홀은 결혼을 준비하고 이루어지는 곳으로, 두 사람이 서로의 약속과 사랑을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특별한 장소이다. 결혼식은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사회적 행사로, 미래를 기대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할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직도 이러한 성은 로맨스와 특별한 기억을 해줄 독특한 공간기호로써 유효하게 작용한다.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한국에서의 웨딩홀은 외관은 성과 유사하다 하여 그 내부까지 성의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2] 경기도 외곽에 있는 요양원 건물의 파사드 (좌/우)
요양원은 인생의 종착지에 가까운 공간이다. 긴 인생을 살아오신 노인들은 생애의 마지막 단계에서, 보호와 케어가 필요한 경우에 이 공간을 선택한다. 따라서 요양원은 안락과 평온함을 제공하면서, 노인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공간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공간의 내적 요소를 담은 겉모습 중 일부는 이러한 서구의 성 건축물을 모방한 경우가 많다. 요양원은 실버타운처럼 부를 가진 노인을 제외하고 모두 자손과 가족의 비용으로 충당한다. 따라서 이 건물의 외관이 성처럼 꾸며졌다고 하여 이 안에 주거하는 모든 노인분들이 실제로 성 안의 환경을 제공받고 스페셜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즉, 외관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보호자를 타겟으로한 심리적인 마케팅 효과를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에 내부보다 외피가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웨딩홀과 요양원은 새출발과 종착지라는 의미에서 서로 다른 인생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1편에서 언급한 건물의 파사드의 외피에서 스펙터클을 생산하려는 의도를 포함해서 생각해보자면 몇 가지 사회적인 함의를 아래의 표와 같이 정리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표] 웨딩홀과 요양원 건축 양식의 속성에 대한 활용목적
2. 건축의 기능과 무관한 오너먼트의 과잉생산
건축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특정 공간에 대한 기능적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는 보통 건물의 평면도, 구조, 재료 등을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건축물의 외관과 장식은 이러한 기능적 요소를 보완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웨딩홀, 모텔, 요양원의 기능은 본래 건축이 가진 기능과 무관한 외피적 성격의 오너먼트에 머물러있다. 오너먼트는 장식적 요소로써 건축물에 색채, 텍스쳐, 패턴 등을 추가하여 시각적으로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며, 이는 건물이 주는 첫인상을 강화하거나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건물의 기능을 가리거나 방해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들은 웨딩홀과 요양원의 오너먼트는 정도에 따라 과도함의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로맨틱한 분위기와 안락함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써 성을 차용한 것은 확실한 장식적 의도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취향과 관심이 변함에 따라 건물의 외관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교회 같은 특수 건물들에서 이러한 건축적 기능 이외의 장식적 요소들이 자주 드러난다. 이는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와 신앙심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건축에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형식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일부 교회는 전통적인 교회 건물의 형태를 벗어나 고대 유럽 성당이나 현대적인 디자인을 차용하는 등 독특한 외관을 가지려 한다. 최근 현대건축에 있어 새로운 개념을 건축 안에 녹여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경우도 있지만 80년대~90년대 사이의 교회건축들을 보면 다소 지나친 목적성이 건축의 기능을 넘어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교회뿐만 아니라 모텔과 어린이집 등에 폭넓게 적용된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3]. 지구촌교회의 모습(左) / 광주시의 한 모텔(中) / 일산시의 한 어린이 집(又)
위의 사진을 보면 거대한 지구본모양이 건물의 상부에 얹혀져 있다. 이 건물은 서울 신림동에서 서울대입구쪽으로 가다보면 언덕에 세워진 오래된 교회건물로 세계선교를 표방한다는 의미로써 교회 건물 첨탑의 위치에 지구모양의 조각조형물을 얹혀 놓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다른 모양으로 대체되고 지구본의 모습은 사라졌다.
가운데 사진은 광주시의 한 모텔인데 한 건물 안에 자유의 여신상, 르네상스시대의 부조 조각, 기타 기둥 양식 등 다양한 시대의 아이콘들이 하나의 건물 안에 혼합되어 장식되어져 있다. 모텔 건물 옥상에 자유의 여신상이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하나의 양식을 가지고 세워진 다른 모텔들보다 금방 눈에 띄는 장점과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맨 오른쪽 사진은 경기도 지방도시의 한 외곽에 위치한 어린이 집인데, 성모양의 기둥양식이 현대식 건물위에 장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과도한 장식이 건물의 기능을 가리거나 방해하는 경우, 이는 건축의 본질적인 목표를 해칠 수 있다. 따라서 건축가들은 이러한 오너먼트와 기능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데 고민해야 한다.
3. 이식된 식민 근대 건축의 동화(同化)현상
일제 강점기에 근대건축이 이식된 한국처럼 20세기 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유럽식 식민지 근대 건축은 모두 공통적으로 식민지배시기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베트남의 사이공 시공사(1904,프랑스식민지)와 사이공 총독 관저(1931,프랑스식민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관공서(1945, 네델란드식민지), 일본 요코하마 그랜드 호텔(1898, 네오르네상스양식)등을 보면 모두 식민지배를 당한 나라에서 발견되는 근대통치의상징건축들이다. 이 건축들의 공통점은 일잠적인 19세기 이후 서구의 급격한 변화로 새롭게 요구되어지는 근대사회의 기능을 수행한다기 보다 이와 무관하게 서구에서 일방적으로 건축하였다는 것에 있다. 비서구 국가들의 경우 산업근대화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국자들의 근대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이루어진 이식된 형태의 건축양식이다.
이보다 더 앞서서 역사적으로 미국이 독립선언이전 시기에 이러한 건축양식의 동화된 부분이 존재한다. 1776년 독립선언 당시 신생국 미국의 내륙지방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땅이기도 하였다. 1699년 프랑스는 루지에나주를 만들고 다스리면서 그들의 건축문화양식을 미국의 땅에 이식한다. 루지애나주를 비롯한 15개의 주는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땅이다. 토마스 재퍼슨이 존경받는 업적 중에 하나가 바로 프랑스와 스페인로부터의 지정학적 독립이라는 부분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당시의 건축양식을 한 건축들이 남이 있다.
French Colonial (左) Spanish Colonial (右)
이러한 건축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의 사용자들의 기억에 영향을 주고 기억과 공간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전승되어져 왔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원본은 아우라고 대체되고 사라져 변형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근대건축의 이식은 조선의 방식에서 서서히 전환된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강압적으로 이식되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불확실한 원본과 타자화의 진행이 불안전해지는데 이런 곳곳에 난 구멍들 사이로 자본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메워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현상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다른 식민지 나라들의 현상들을 같이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비교 연구가 될 것같다.
4. 변치 않는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ies)의 공식
얀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은 그가 '기억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도입한 것으로 그는 문화적 기억을 단지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 전체 사회와 공동체를 아우르는 넓은 차원의 기억으로 정의한다. 이 개념은 개별적인 기억이 아닌 공동체의 공유된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이 개념을 건축과 도시에 적용해보면, 건축물과 도시는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건축물이나 도시를 보거나 어떤 공간에 머물면서 바라보기를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그 공간이 담고 있는 문화적 기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건축물이나 고대 도시를 방문하면 우리는 그 공간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느끼며, 그를 통해 그 공간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아 인식을 주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중소도시에서 발견되는 모텔-웨딩홀-요양원 등으로 이어지는 성 건축의 유행은 얀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으로 보자면, 성모양의 건축에 머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공간에 대한 상상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동원하게 하여 실제공간과 차이가 나거나 과장되게 묘사하고 이를 인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스스로가 규정되어지는 방식을 띈다.
근대 일본인들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서양인과 구별되는 아시아인으로 규정되어지는 과정에 사용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ies) 이홍렬. (2021). 건축을 매개로 한 상상의 문화적 기억공간-탈식민시대 대한민국의 일제 식민지 근대 건축문화 유산. 일본근대학연구, 71, 197-221.
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동양/식민지의 피지배자를 타자화시켜 서양/식민지배자인 자신들의 존재감을 재확인시키는 방법을 통해 근대일본인의 정체성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심상지리는 타자를 되도록 부정확하게 인식하고 동시에 타자를 대상화 시키고 자기화 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 도시에 나타난 성모양의 건물이나, 건축의 파사드에 부착된 여러 가지 서양식 오너먼트들은 양식출처가 부정확하다. 동시에 건물의 장식적 요소로 적극 활용하여 건물 전체를 그 어떤 나라 (유럽이나 러시아 등)의 것으로 대상화 시키고 자기화 시켜서 성 전체를 하나의 독립된 나라의 건물로 완결시켜버린다. 과거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근대 베를린의 도시를 심상지리 방식으로 가져와 근대일본을 규정하였고 이러한 방식이 지금 한국에 잔존하여 서구에 대한 판타지 대상화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래의 사진은 현재 한국에서 건축재료로써 판매되고 있는 서양식 건축양식의 복제시스템을 나타낸다.
[사진] 복제되어 판매되는 서양식 건축기둥(左)과 실제 건물 입구 장식에 적용된 사례(右)
이제 누구나 돈을 지불하면 자신의 건물 외벽에 이러한 서양식 건물을 조립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다. 그 목적과 환경에 부합된다면 이제 카페, 아파트, 놀이터, 등 특정 건물을 벗어나 자유롭게 이런 기호들을 장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전문가집단의 고증이나, 역사적 의미의 고찰 따위는 필요 없다.
한때, 90년대 한국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신데렐라 신드롬이 유행을 한 적이 있다. 착하고 가녀린 힘없는 미모의 여주인공에게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 어려운 현실에서 구해내는 클리쉐중에 탑을 차지하는 소재이다. 뻔한 결말이지만 가부장적이고 산업화에 밀린 불평등으로 시달리는 근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달려온 여성들을 나타낸 로망이자 판타지가 이루어지는 대체효과를 잘 나타낸 현상이었다.
백마 탄 왕자님의 개념은 서구의 고전동화나 영화, 드라마에서 나온 로맨틱한 남성을 나타내는데 많이 차용한 일종의 허상이다. 이러한 유행으로 인해 한국 남성의 자동차 선호색깔로 흰색차가 매출이 급증한 시절이 있었는데 이 하얀색 자동차가 우수개소리로 백마탄 왕자를 빗대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이런 관념은 서구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영의 형태로써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에 원조의 형태로 일방적으로 유입된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발생한 심상지리의 표본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류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요즘,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해외로 나가 인정을 받고자 하는,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태도에 습관적으로 매몰되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K+명사 = 한류가 되는 이상한 공식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명사 앞에 K자를 붙여 둔갑시키면 그럴싸한 것이 되는 분위기 속에 판타지와 허상을 만들어내는 화려한 ppt 발표용 장표구성은 차고 점점 화려해지고 넘쳐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장표대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교류와 새로운 문화의 탄생은 일정하게 저장되고 일정 시간 동안 소비자 사이에 쌓여져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흡수되는 파생력을 가져야하는데 인위적으로 도장을 찍어내듯 K마크를 찍는다고 모두 한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급하게 빨러 서둘러 해외로부터 인정받아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하나의 징표로 여기려는 조급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웃픈 현실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이러한 올드한 성의 기호는 아직도 유효한가? 과거의 것과 미래의 것이 충돌하는 펑크적 요소로 보자면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성의 모양을 한 웨딩홀, 요양원, 모텔 들은 이제 어떤 서구의 시대양식을 가져오는 것은 이미 실패하였고 의미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혼종된 양식의 남발을 펑크적 요소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해 본다.
펑크, 키치가 건축적 요소로써 받아들여 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다소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거기에 따른 몇 가지 실현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보았다.
첫 번째로, 독창성과 개성 강조하는 형식이다. 펑크 문화는 독창성과 개성을 강조한다. 과거의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함으로써 독특하고 개성적인 건축물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기 걱정은 찍어내듯 대량생산하는 건축자제에서 어떤 차별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로, 사회적 비판과 차별화를 가지는 것이다. 펑크 문화는 사회적인 규범에 비판적이며, 기존의 것과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펑크적인 메시지나 아이디어를 표현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차별화될 수 있다면 오히려 신선할 것이다.
세 번째로,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약속(?)하는 것이다. 건축은 예술의 하나로서, 예술가나 건축가는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펑크적인 요소를 반영한 건축물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될 수 있는 기타 다른 방안들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국, 뭘 하든 확실한 것은 모텔-웨딩홀-요양홀의 캐슬 벨트 (Castle Belt)를 펑크적 요소라는 예술적 시도로 갈아타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사적 시기의 명분을 가져와야 하고 무작정 찍어내듯 판타지의 외피를 남발하는 무책임한 행동은 피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