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의 《임옥상:여기, 일어서는 땅》은 장단평야에서 떠낸 흙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흙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웅덩이>(1976)를 소환하고, <무극백록>(2021)과 <무극천지>(2021)를 마주하게 하며, 마지막으로 <검은 웅덩이>(2022)와 교차한다.
<무극백록>20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_전시전경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를 그리다>2022
첫 번째 전시실에서 관객은 재소환된 1회 개인전과 그 시기의 작품들 그리고 최근까지의 평면회화들과 마주한다. 그 사이사이를 느리게 걸으며,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임옥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명징하게 다가오고, 그렇게 전시는 시작된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하나의 질료가 눈에 띄는데 바로 흙이다. 흙은 임옥상에게 매우 근원적인 물질형식으로써 그의 서사의 뿌리이다. 산과 들을 다니며 자신의 신체로 자연과 접촉하고 호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작가에게 흙은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로써 작용한다.
임옥상은 캔버스 위에 흙을 덧발라 채우고 그 위에 유화물감, 먹물 등을 혼합하여 형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형상들은 작가의 신체적 행위 자체를 반영하기도 하고, 상당히 구상적인 풍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을 회상하며 그것들을 서사의 구조 속에 지속적으로 재배치하기도 한다. 임옥상은 이처럼 관객에게 기존의 습관화된 감각과는 다른 감각을 촉발하고, 내가 볼 수 없던 것을 유연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한다.
<흙의 소리> 2022
또 다른 전시실에는 태초의 흙, 이 흙의 변형체인 <흙의 소리>(2022)가 마치 거대한 인간의 머리가 옆으로 뉘어져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작품의 한쪽에는 입구가 있어 그 거대한 머릿속으로 관객을 들어가게 한다. 마치 동굴처럼 어두운 공간 속에서는 대지의 어머니가 내는 숨소리를 감각 할 수 있다. 그 소리의 진동은 살아있다는 울림인 동시에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의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흙의 소리>는 그동안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그래서 미처 들려주지 못한 차원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그곳에 놓인 듯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지의 신음 즉 자연의 이 울림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땅,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파괴 억압 고통, 갈등 등 첨예한 의제를 가진 땅, 역동하는 생태로서 땅을 사유하는 임옥상만의 방식이다. 그는 자연과 예술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자연이 가진 생명력을 토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새로운 구조와 형식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재구성은 근원적인 생명력과 울림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관객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전율을 준다.
<여기, 일어서는 땅> 2022
다시 깊은 공간을 지나 만나는 전시실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스케일을 넘어서는 거대한 흙벽이 펼쳐진다. <여기, 일어서는 땅>(2022)은 2×2m의 크기의 패널 36개로 만든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가공된 흙이 아닌 진짜 흙으로써 우리와 마주한다. 벽 가득 다양한 형상들이 흙으로 빚어져 자리하고 있다. 사람, 동물, 식물, 기호 등이 나열되어 있어 관객들은 개별적 서사를 반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흙의 질감이다. <여기, 일어서는 땅>은 재료나 의미에 있어서 매우 근원적인 지점에 닿아 있다. 장단평야의 논에서 가져온 흙은 추수 후 땅의 상황이 그대로 담겨져, 시간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배어있는 땅의 냄새가 원초적인 무의식을 깊숙이 건드리고 있다. 임옥상은 생명력의 근원인 흙의 본성을 지켜줌으로써 생명의 파동을 작품 속에서 구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바닥에 있어야 마땅한 땅이 수직으로 높이 서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중력의 거부는 존재하기 위해 견뎌야만 하는 흙의 생명력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물리적인 중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예술적 중력에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 그리움이 담긴 이 작품에서는 흙이 빚어내는 생명체들의 빛나는 율동이 느껴진다. 그는 흙이라는 질료가 가지는 성질을 온전히 살리면서 미의식 그리고 미적 감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반영하고 있다.
<검은 웅덩이>2022
<대지-어머니>1993
미술관 내 중정에는 지름이 4m가 넘는 <검은 웅덩이>(2022)와 그 웅덩이를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대형 구상 조각 <대지-어머니>(1993)가 자리 잡고 있다. 작가가 ‘숨구멍’이라고 칭하는 이 <검은 웅덩이>는 생태, 문명, 문화, 사회 등 우리에게 ‘지금’ 현재를 새삼 각성시키고 있다. 힘겹게 버티며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투박하고 둔탁하며 거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감성적으로 보인다. 아마도 임옥상이 자신의 신체적인 힘과 신경을 통해 전달하는 미세한 생명의 파장이 형상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애처롭지만 강력한 이 아우라는 어떤 감정적 동요도 드러내지 않은 차분함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좋거나 나빴던 숱한 경험과 자아 성찰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삶의 담담함에서 나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빛을 보며 다시 한 번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모든 예술은 태생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좋든 싫든 누군가에게는 보여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작가의 내밀한 아주 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작품의 존재 방식은 사적일 수만은 없다.”는 임옥상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이제 우리에게 던져졌고, 우리를 통해 그 의미는 더욱 더해지고 채워질 것이다.
삶을 온전히 투영한 작품들을 만나면 언제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임옥상이 작품이 그러하다.
보다 포괄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존재를 탐구하는 임옥상,
“자신의 언어를 제어할 수 있는 자는 타인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언어는 자기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최고의 지적 무기이다.” 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임옥상은 자신만의 언어를 장착하고 예술로써 소통하고 있다.
이번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은 예술로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이 임옥상이 삶을 대하는 태도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