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은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대학원 시절 학교 과제를 하다가 은일에 대해 조금씩 관심 갖기 시작했다. 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은둔이 왜 나올까? 내 꿈은 세(勢)에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소외시키는 무리는 곧 세(勢)이다. 두 명까지는 감당이 되는데, 세 명부터는 나의 내공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세勢는 나와 대립하기도 하고, 합세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은둔은 세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측면이 있다. 정치에서도 세가 중요한데, 은일은 어찌 보면, 세를 확장하는 정치와 대척점에 있다. 그렇다면, 옛 그림에서 종종 선비는 출세하지 않고, 왜 은둔했을까? 바로 안전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은일(隱逸)에서 일(逸)은 편안하다는 의미가 있다.
매화초옥도 - 전기(1825-1854),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29.6*33.3cm, 1981년 이홍근 기증
‘숨어서 편안하다’. 는 의미이다. 옛 선비들은 입신출세에 대한 욕망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에 은거하여, 한가롭게 사는 은일처사의 삶을 동경했다. 이러한 삶은 욕망을 적당히 발현시키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 평화롭게 사는 삶이다. 자연의 이치를 본받고,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지향한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권력기관과 함께한다. 권력은 지배욕이다. 은둔의 삶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지도 모른다. 은(隱)은 미학적 개념으로 킴바라세이고가 연구한 바 있다. 놀랍게도, 세이고에 따르면, 공자 시대에도, 은둔자들이 존재했으며, 공자가 그들에 대해 염두에 두었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몸이 노쇠한 것을 느끼는 공자로서 자기가 남기는 사업의 완성에 희망을 걸 제자는 오직 안회 하나였다, 안회에게 건 희망이 다름 아닌 역(易)과 은(隱)의 문제였다.(1) 안회는 은일의 풍모를 지닌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사는 누추한 시골의 삶을, 사람들은 근심스러워 하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필자는 누추한 시골의 삶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은둔은 필연적으로 누추한 삶을 불러들인다. 세속의 속된 것을 잘라내는 행위는 물질의 풍요에서 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속은 곧 사회이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물질의 풍요를 가져오기가 쉬울까? 누추한 시골의 삶을 근심스러워하지 않은 안회는 그러한 면에서, 자족하는 삶을 산 사람이다.
매화서옥도 - 이한철(1812-1893이후) ,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138.3*198.3cm 1981년 이홍근 기증
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옛 그림을 소개할까 한다. 조선 말기의 화가 전기의 <매화초옥도>이다. 흰 매화가 눈송이 같다. 하얀 매화 속에서 붉은 옷, 초록 옷이 눈에 띈다. 이 그림은 조선말기에 유행한 매화서옥도류의 하나이다. ‘매화서옥’은 중국 송대의 임포(967-1028)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매화와 학을 사랑했으며, 검소하지만, 즐겁게 산 임포. 선비가 은둔하는 이유는 아마도, 임포처럼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1)킴바라세이고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