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즘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공예술이라는 거창한 틀 가운데 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 개인의 이야기, 창작자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좁은 이야기에서 나아가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룰 수 있는 더 깊은 대화와 소통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온갖 SNS로 타인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받아들이는 환경 속에 놓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소식만 골라서 듣는 편식을 통해 이웃에 대한 관심보다는 저 선 너머에서 둔감한 방관자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변했고, 사회의 형태와 문화가 달라지고 있기에,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변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켜내야만 하는 우리의 소소한 문화는 없을까요?
어릴 적, 일상 가운데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참 다양했습니다. 학교 갈 때 동네 어르신께 인사하고, 슈퍼 아저씨, 아줌마랑도 인사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동생하고 동네를 누비며 놀고……. 과연 그 시절은 어렸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던 걸까요.
오늘, 동네 골목에서 누구와 인사를 나누었나요?
옆집에 사는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나요?
편리라는 미명아래 경직된 관계 속에서 방어막을 두르고, 파편화된 지독한 개인의 역할을 너무나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진 않은지 자문하게 됩니다.
필자는 옛날이 참 좋았다라는 개인의 향수를 타인에게 강요하고자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의 말을 들을 필요와 여유를 가지고 있는지, 더 나아가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스스로의 마음은 잘 살피고 있는지, 소통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삶 가운데에서 던져보고자 말하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받으며,
우리, 사랑과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소망하자고,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술작품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고민 중에, 좋은 공공예술의 예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른 아티스트 분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운드를 기반으로 작품을 창작하고 있기에, 공공예술 안에서의 사운드 아트의 좋은 사례 또한 찾아보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정답을 얻거나 방향을 잡진 못했으나, 리서치 과정에서 만난 좋은 작품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곧 고민의 흔적과 창작과정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승영, <시민의 목소리>
시민의 목소리 1.8 X 1.8 X 5.2m, 청동, 사운드(스피커8개, 마이크1개), 2017
200여개의 청동 스피커 모형으로 쌓인 5.2m의 스피커 탑. 김승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작품 안에는 실제 스피커 8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오윤석 사운드 디자이너가 서울 곳곳의 소리를 채집해 사운드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또한, 작품에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에 목소리를 녹음하면 실시간으로 재생되어 시민들이 목소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7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후 현재는 성북구 구립미술관 거리갤러리에 위치해있으며, 현재는 성북동에 살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공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소통에 대한 이야기, 모두의 참여가 가능한 예술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을 내뱉고, 듣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치유의 과정에 대해서도 동의하며, 필자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이 작품과 매우 닮아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상처와 회복, 치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현장에 묘한 숭고함이 느껴졌습니다. 결국은 많이 닮아있는 우리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며, 마음을 나누고,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함에 사명감을 느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낫고 싶습니다. 또한 다른 이도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23/3, <말풍선 프로젝트>
23/3, <말풍선 프로젝트> 현장 사진. 출처:아트다
23/3, <말풍선 프로젝트> 현장 사진. 출처:아트다
이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아트 작업을 리서치하던 중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말문이 막히고, 모든 소통이 휴대폰과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세태 속에서 말풍선에 이야기를 남기며, ‘말’을 나누고 시각적으로 만남의 장을 형상화한 프로젝트입니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말풍선에 채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쪽 벽면이 시끌벅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출하기, 연결하기, 해소하기, 이렇게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출하기는 “으악!!!”, “흠….”, “무야호~” 3가지 감탄사를 지정하여 이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서 붙이는 형태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결하기는 부착되어 있는 말풍선을 옮겨 이야기를 이동시키고 연결하여 대화를 완성해보는 참여 형태였는데, 자연스럽게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3번째, 해소하기는 인스타그램에 제작해놓은 말풍선 스토리 필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던 말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 해소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참여를 이끈 방식에 대해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담아두었던 이야기’라는 말의 묵직함에서 오는 무게를 덜어줌으로써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재밌게, 나눌 수 있도록 구성했던 점에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또한 다양한 말풍선의 형태가 주는 시각적 재미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워크숍의 프로그램 구성, 워크숍 참여 인원 모집 방식 등 많은 고민거리들이 쌓여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보며 방향을 점검해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들을 세워보게 되었습니다. 준비하는 스스로에게도, 참여자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재밌게!
Christina Kubisch, <Electronical Walks>
https://vimeo.com/350675219
Christina Kubisch — virtual electrical walks Oslo 2019 from ants and butterflies on Vimeo
Christina Kubisch, <Electronical Walks>
크리스티나 쿠비쉬는 독일의 사운드 아티스트로, 도심 도처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존재를 알리고자 <Electronical Walks>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전자기장을 오디오 신호로 변환해주는 헤드폰을 개발하여, 작가가 설계한 특정 공공장소에서 헤드폰을 쓰고 전자기장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주변소리를 듣는 작품입니다. 위 사진은 베를린, 버닝험, 브뤼셀, 모스코바, 오슬로에서 진행됐던 사진과 지도입니다.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이는 프로젝트로, 공공예술 안에서 정말 좋은 사운드 아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한 자리에서, 혹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감상했던 사운드아트 작품들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소리로 형상화하여 소리로서 일상의 전자파를 감각할 수 있게 했고, 참여자들은 일상과 너무나도 긴밀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매일 타던 지하철, 버스, 동네의 골목을 지나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전자파가 소리로서 느껴집니다. 그리고 두 가지의 놀라움에 휩싸입니다. ‘이 전자파에 매일같이 노출되고 있었다니.’, ‘일상 가운데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수많을까.’ 이렇게 예술은 일상 가운데에서 지각과 감각을 자극합니다.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지금 당장의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함으로 우리 모두의 집중을 이끌어냅니다.
그녀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생각을 새깁니다.
‘지금을 이야기하자. 그리고 살아 느끼자. 내 안의 지금, 가족의 지금, 이웃의 지금, 타인의 지금, 모두의 지금에 조금 더 귀를 열자. 따뜻한 관심으로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예술 안에서 깊은 교감과 소통을 나눌 수 있으리라.’
고민의 끝에서,
세 작품을 소개하며,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에 대하여, 나눌 이야기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게 됩니다. 저의 창작의 과정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건강한 고민들이 쌓여 소통의 창구가 되는 작품을 만들기를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 가운데 건강한 예술 경험들이 쌓여 그 ‘겪음’들이 삶으로 흘러가 오늘 나의 하루를 건강하게 지켜내고, 내일 더 따뜻한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내일, 우리는 누구와 인사를 나누게 될까요?
/ 글.김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