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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나요? | ARTLECTURE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에피메테우스의 여섯 번째 질문 (작가 안지산의 회화)-

/Artist's Studio/
by youwallsang
Tag : #표현, #대상, #회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에피메테우스의 여섯 번째 질문 (작가 안지산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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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작가가 자신의 주제를 바꾸고 대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바꾸는 계기는 무엇일까. 심경의 변화-그/그녀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들-, 혹은 시대적 요구 때문? 예술이 유행을 좇는 미적 산업만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변화는 더디고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안지산의 회화가 그의 이름표를 확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그의 회화를 가슴에 품은 사람으로서 지금 그가 보여주는 ‘마리’를, 꼭 알아야겠다.

메인이미지 <폭풍이 온다>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장 전경



<발끝으로 서다>. 2016, 캔버스에 유채, 90.9X60.6

아이디어 & 아이디얼리즘 2017 경기도미술관

 


얼룩덜룩한 맨 다리가 뒤꿈치를 든 채 발가락을 오므려 의자 끝에 매달려 있다. 힘을 준 발가락은 멈춰진 회화가 아니라면, 관람자가 눈을 떼자마자 다음 상황으로 달려갈 것만 같다. 의자가 엎어지고 다리의 주인이 쏟아지듯 떨어지던지, 아니면 상체를 보이지 않은 채 대롱대롱 매달리던지. 그 참담함을 상상하기 싫어 계속 바라보면 불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순간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진다. 어떤 상황이든 좋지 않다.


 


<손 담그기>, 2015. 캔버스에 유채, 45.5X38

아이디어 & 아이디얼리즘 2017 경기도미술관

 


색을 바른 두 손이 색을 쏟아내며 물에 풀리고 있다. 흰색 물받이에 담긴 색도, 팔꿈치까지 범벅이 된 색도 유난히, 지나치게 파랗다. 미끈거리며 두텁게 끈적거리는 색의 물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내 피부 위를 덮은 것처럼, 그 밑으로 정반대의 색이 흐르는 것처럼, 색의 온도가 느껴진다.




<Untitled>, 2016, 캔버스에 유채, 53X45.5

아이디어 & 아이디얼리즘 2017 경기도미술관

 


흑백의 대비가 거친 붓질만큼이나 긴박하다. 넘어진 컵의 액체는 테이블보를 타고 흐르며 움켜쥔 손을 위협한다. 정신 차려야 하는 순간이다. 잠깐 한눈을 팔아도 상황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아슬아슬한 감각이 전하는 위태로움이 슬며시 쾌감으로 바뀌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던 흰색은 아찔하지만 매혹적인 유혹으로 빛난다. 회화가 무엇을 잡아 세우는지, 포착된 순간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우레 같은 소리. Wake up!

 

작가 안지산의 회화는 물성의 체험과 현상의 구조화를 회화로 재현한다. 스스로 제작하는 연극적 무대를 통해, 직접적인 물성과의 일체를 통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표현을 만들어낸다. 머리에서 캔버스로 이어지는 길 위에 손과 감각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몇 차례의 단계를 마련하여 구조적인 세팅을 완성한 이후를 회화로 옮기는 것이다. 미니어처처럼 만들어진 대상이 1, 2차의 제작-재현을 통해 더욱 객관화되거나 보다 명징한 대상으로 탐구되어 고정된다. 회화는 사유의 시간을 위해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은 유예된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서쪽 구름이 밀려온다>, 2021, 캔버스에 유채, 250X260

폭풍이 온다 2021-2022 아라리오 갤러리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명확한 색으로 갈리며 회색빛으로 솟아오른 땅 위에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구름이 몰려온다. 돌산의 거친 질감과 다르게 매끈한 표면을 지닌 구름이 빠르다. 돌산은 죽은 듯이 멈춰있지만 구름은 살아있듯 생동감이 과해 자못 공격적이다. 미사일의 둥근 앞태를 닮았고 UFO의 확인되지 않은 형상을 닮았다. 어쩐지 금속성의 냄새가 난다. 말짱한 푸른 하늘에서 폭격하듯 쏟아지는 구름의 길쭉한 형태는 그 난데없는 형태로 말미암아 어딘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생경한 풍경,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야 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일어선다.

 


<비구름이 멈춘 그곳에서>, 2021, 캔버스에 유채, 250X260

폭풍이 온다 2021-2022, 아라리오 갤러리


(부분)

 


우산대가 놓인 불안의 폐허 위로 구겨진 구름의 곧은 빗줄기가 날린다. 잡동사니가 쌓인 듯 어지러운 땅보다 구정물을 흘리는 듯한 하늘이 더 심란하다. 왼쪽 구석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가 심란함을 고조시킨다. 비가 멈춘 것이 아니라 비구름이 그곳에 멈춰있다. 폭풍이다, 폭풍이 왔다.

 

몸으로 직접 겪으며 대상을 표현하던 작가의 탐구는 여전하다. 촘촘한 붓질의 질감이나 물감이 흐른 겹겹의 자국은 대상의 물성을 피부로 감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탐구가 상황에 대한 탐구로 바뀌었다. 돌산의 질감과 느닷없는 사물의 등장, 구름의 형태, 방향성. 2017년의 회화가 사물의 긴박감을 만들어진 화면으로 표현했다면, 2021년의 회화는 제작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풍경을 화면에 옮기고 있다. 유난히 구름이 낮게 드리우던 네덜란드-작가가 유학 생활을 한-의 하늘을 회화로 재현하고픈 작가적 욕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름의 풍경에 주목했다.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상황과 그로 인한 우울은 폭풍처럼 우리를 휩쓸었다. 촉각적 경험이나 신체적 감각, 연출된 모형의 재-표현을 통한 실재적 이미지의 재현이,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구름의 비실재적인 이미지 보여주기로 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숲속의 마리>, 2021, 캔버스에 유채, 50X60

폭풍이 온다 2021-2022 아라리오 갤러리



<노란 마리>, 2021, 캔버스에 유채, 45X53

폭풍이 온다 2021-2022 아라리오 갤러리


<슬픈 마리>, 2021, 캔버스에 유채, 45X53

폭풍이 온다 2021-2022 아라리오 갤러리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형태의 풍경에서 선명한 인물 하나가 튀어나왔다. 특정한 인물보다 대상이 처한 상황이 먼저 인식되기를 원했던 작가가 또렷한 이목구비에 화면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중성적인 얼굴로 울고 있는 마리는 누구인가? 폭풍에 직면한 흔들리는 내면의 얼굴일까.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는 마리는 울고 있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 울음이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흐느낌도 없고 격정도 없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 얼굴은 이콘(1)을 닮은 것도 같고 파이윰 초상(2)을 닮은 것도 같다.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성스러움과 눈물 밑에 깔린 세속적 얼굴이 겹쳐 어색하다, 역시 불안하다. 폭풍이라는 갑작스런 상황과 마리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마음에 쓰인다. 그런데 이 얼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 2016, 캔버스에 유채, 200X290

아이디어 & 아이디얼리즘 2017 경기도미술관


I’m Too Sad to Tell You(1971)

 


반쯤 물에 잠긴 배와 흘수선(3)까지 칠해진 페인트의 벗겨진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떨어져 나간 페인트(4)의 유독함이 코를 자극하는 듯 불안과 불길함이 공존하고 있다. 오른쪽 구석으로 낯선 사내가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다. ‘바스 얀 아델’(5). 추락하는 것들의 얼굴, 폭풍처럼 지나간 감각의 얼굴이고 그 이후 남겨진 부스러기 같은 얼굴이다. 떨어지고 매달리고, 구르고, 사라진다. 이 남자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빈 배로 돌아왔다. 남자는 계속 운다. 영문도 모른 채 울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 보면 내 속에도 울음이 차오른다.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약간의 울음을 목구멍에 걸어두고 산다. 언제든지 울 준비가 되어있다. 울음은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던 바스 얀 아델의 주제는 안지산의 회화로 들어왔다. 그 울음이 마리와 닮았다. 비록 울음소리는 사그라들었지만 어쩌면 상황은 더욱 나빠졌는지 모른다. 그들의 울음은 작가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마리와 하얀 새>, 2021, 캔버스에 유채, 45.5X60 부분


<마술 지팡이와 복실이>, 2021, 캔버스에 유채, 194X112 부분


<슬픈 마리>, 2021, 캔버스에 유채, 45X53 부분


<숲속의 마리>, 2021, 캔버스에 유채, 50X60 부분

 


마치 곡비(6)처럼, ‘마리는 울지 못하는 나 대신 울고 있다. 우리의 상황이 생각만큼 좋지 않을지 모른다고, 폭풍이 오고 있다고, 먼저 알려주려는 것이 아닐까. 폭풍의 풍경 속에 마리가 있는 이유는,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자기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해 나보다 먼저 울고 더 나중까지 울기 위한 것이 아닐까. 폭풍은 어디에서 오는가. 폭풍은 어디로 가는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참고]

1) 이콘 icon 주로 동방교회에서 발달한 예배용 화상.

2) 파이윰 초상 Fayum mummy portraits 이집트 콥트기에 미라 앞에 놓인 나무판에 자연주의 화풍으로 그린 초상화

3) 흘수 선 배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

4) 안티 폴링 페인트 anti-fouling paint 선박의 아랫부분, 물에 잠기는 부분에 해양생물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칠하는 유독성 도료

5) 바스 얀 아델 Bas Jan Ader(1942~1975) 네덜란드 퍼포먼스 작가. https://youtu.be/wW9PDCMI1iA 참고

6) 곡비 哭婢 남의 슬픔을 대신해 울어주는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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