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을 하기 여의치 않지만 강변은 열섬현상이 심각한 도시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장소로 꾸준히 이용되어 왔다. 열섬현상은 도시 중심부의 온도가 주변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인구 증가, 각종 시설물의 과밀화, 인공열의 방출, 온실 효과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쿨시티 랩(COOL CITY LAB) 프로젝트는 제17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미래학교, 감독 신혜원) 참여 프로그램으로 도심의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물의 냉각 효과를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나폴리 노마드 건축 연구소(LAN)가 2004년부터 진행한 도시의 물길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킨 이 프로젝트는 방치된 지하수를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디자인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박경 교수(Visual Arts 전공)가 책임 연구자로 있으며 지난 1월부터 이탈리아, 두바이, 서울의 건축가들이 함께 ‘전통 냉각시스템’, ‘서울’, ‘도시재생’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왔다. 그리고 7월에는 서울에서 ‘북촌의 옛 물길’ 등을 주제로 한 워크숍과 전시가 계속될 예정이다.

청계천 수계도(水系圖)(출처: 청계천복원사업백서)
개천명은 본고 하단에 별첨
쿨시티 랩은 카낫(Qanat, 이란의 지하수로), 야크찰(yakchal, 자연 냉장고) 등 고대로부터 물을 냉각의 목적으로 사용해온 기술과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고 현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서울의 청계천복원사업(2003-2005)도 주요 사례로 다루었다. 하천은 역사적으로 많은 도시의 성장과 발전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근대화된 도시에서는 환경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며 도시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한양은 풍수와 수계(水系)에 따라 개발된 도시였기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후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인구가 도시에 유입됨에 따라 오염된 하천의 주변 지역은 슬럼화되었고, 1958년 복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사라져갔다. 이렇게 사라진 도시의 하천이 2003년 시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2006년 발행된 청계천복원사업 백서에서 밝힌 이 사업의 주요 목적은 노후화된 건축물 보수와 지하 공간의 안정성 문제 해결, 친 생태계적 환경 구축, 역사문화유적 발굴 의지, 도심 환경 개발을 통한 균형 발전이다. 청계천 복원에서는 수원(水源)을 살리지 못한 인공 하천이라는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속 생태하천으로 자리 잡았고 실질적으로 청계천 물이 흐를 경우 주변 기온이 최대 10~13% 떨어지는 효과도 내고 있다. (서울시 발표)
*청계천의 본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청계천’으로 불렸다.
서소문 아파트(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6길 59)
쿨시티 랩은 서울에 남아있는 물길의 흔적을 조사했는데, 그중 하나가 서대문과 서울역 사이, 미근동에 위치한 복개지상상가아파트인 서소문 아파트다. 이 건물은 주변의 빌딩들과 대조되는 낡은 외관도 그렇지만 곡선형으로 지어진 구조가 독특하다. 이 아파트는 60년대 말 하천을 복개(覆蓋)하며 지어진 건물이라 물길을 따라 곡선형의 형태로 지어진 것인데, 현재는 하천 위에는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법이 바뀌어 재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수선전도(首善全圖), 수선총도(首善總圖)같은 옛 지도를 보면 물길이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그 물길이 개발되면서 현재의 길의 모습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을지로나 종로의 뒷골목을 걷다 보면 이런 식으로 물길에 의해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된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수선전도 북촌일대 확대, 김정호 제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6호,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 현재의 북촌일대(출처: 네이버 지도)
그리고 옛 물길의 흔적이 잘 남아있는 곳으로 북촌 지역을 꼽을 수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소격동, 사간동, 삼청동, 가회동, 재동, 계동 일대를 포함하는 북촌 지역은 물길을 따라 길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북촌에는 복정우물, 석정보름 우물, 원서동 빨래터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에 30개의 우물이 남아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궁 안에 존재하는 우물과 연희동의 장희빈 우물터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 공동체에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커뮤니티의 장으로 역할 했던 우물은 상도 개발과 함께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쿨시티 랩은 북촌에 남아있는 우물의 현대적 재해석과 지하수 활용 방안에도 주목한다. 이들은 도심 속 물의 경로를 추적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환경적 대책을 세우고 이상기후에 대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술 활용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복정우물 / 석정보름우물 / 원서동 빨래터
사실 도심 속 하천이나 우물이 얼마나 개발되고,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밀화된 도심에서의 대규모 공사가 쉽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자연 개천 상태일 때 도성의 개천은 건천(乾川)이었고, 우기에만 불어났다고도 전해지니 정확한 수량과 활용 안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환경문제가 주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자연 개천을 통해 기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워크숍을 통해 공유되고 발전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쿨시티 랩-서울 워크숍은 7월 12일에서 15일까지 진행되며, 온라인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워크숍의 내용은 7월 21일에서 28일까지 북촌 한옥청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쿨시티 랩의 자세한 내용과 강연은 웹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futureschool.kr/ko/cool-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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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도(水系圖)에 표시된 하천명
1. 백운동천(白雲洞川) 2.옥류동천(玉流洞川) 3.사직동천(社稷洞川) 4.경복궁내수(景福宮內水) 5.경희궁내수(慶熙宮內水) 6.삼청동 천(三淸洞川) 7.대은암천(大隱岩川) 8.정릉동천(貞陵洞川) 9.창동천(倉洞川) 10.회현동천(會賢洞川) 11.남산동천(南山洞川) 12.이전동 천(履廛洞川) 13.주자동천(鑄字洞川) 14.필동천(筆洞川) 15.생민동천(生民洞川) 16.묵사동천(墨寺洞川) 17.창경궁옥류천수(昌慶宮玉溜泉 水) 18.회동(灰洞)ᆞ제생동천(濟生洞川) 19.금위영천(禁衛營川) 20.북영천(北営川) 21.안국동천(安国洞川) 22.쌍이문동천(双里門洞川) 23.남소문동천(南小門洞川) 24.성균관흥덕동천(成均館興徳洞川) 25.영미정동천(永美亭洞川) 26.안암천(安岩川) 27.정릉천(貞陵川) 28. 동활인서천(東活人署川) 29.무악천 30홍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