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회용품, 편리미엄 시대와의 만남
오늘 당신은 일회용품을 얼마나 사용했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회용품의 사용의 급격한 증가는 온라인쇼핑과 배달포장음식의 증가와 함께 편리미엄의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편리미엄. 말 그대로, 편리함과 프리미엄을 결합한 용어의 등장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편리한 상품, 서비스를 더욱 선호하는 현상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 개인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도 그 효과는 크다는 사실에서, 지속될 미래의 풍경이다. 이제 편리미엄은 단순히 일시적인 소비 트렌드 현상이 아닌 고유한 문화이자 일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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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각종 수단과 도구는 쓰레기의 양의 증가와 비례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점점 더 쌓여가는 쓰레기의 양은 이제 눈앞에서 보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현재 한국사회는 자연의 생태계와 기후환경의 변화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에코 디자인(eco-design)이 이뤄지고 있다. 1980년대 이후로 환경운동과 함께 떠오른 에코디자인은 친환경. 경제, 환경을 모두 고려한 요소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에 나서서 앞장서고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연의 위기, 생태계의 파괴로 다가오는 미래의 풍경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매일경제>, 2021년 2월 21일[사진이미지]
우리는 이제 더욱 환경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재건축, 재개발, 디지털 공간, 융·복합 등으로 성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와 함께 급격한 변화를 이룩한 한국사회의 환경이 분명 과거와 다르다는 신호이다. 거주하는 공간, 일상 활동 등의 제한과 통제가 지금보다 더 이상은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제 편리미엄 속에 숨겨진 이면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 낭비문화와 쓰레기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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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루에 한 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일회용품의 사용의 급격한 증가. 과잉포장, 광고, 생산으로 인해서. 낭비문화가 더욱 심각하게 조성되고 있다. 가속화된 소비와 함께 코로나19이후로 더욱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쓰레기의 범람은 우리의 일상행동이 모여서, 거대한 쓰레기 산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쓰레기 매립장에 가득 찬 쓰레기의 양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러한 심각성을 보여준 시사교양프로그램 EBS1 <극한직업>에서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숨은 영웅들”, “쓰레기에서 찾은 보물, 폐타이어, 유리병, 폐비닐, 우유 팩”을 통해서,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의 양, 많은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과 사람들, 버려지는 폐기물의 재활용 과정을 통한 재발견의 과정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했다.
- 쓰레기. 쌓다. 축적한다. 집적한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처리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재활용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개인의 소비를 자제하는 방향보다, 환경오염 배출의 증가를 줄이기 위한 방안. 일종에, 에코 디자인의 시스템구조와 같이 재활용에 대해서 적극 참여하는 쪽으로 말이다. 사실, 재활용의 선순환은 재활용가능성을 향상시켜, 최종의 폐기물의 양을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는 과정을 실천하는 방법이기에, 쓰레기의 대량생산과 과잉소비의 문제를 막는데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도 그들이 접한 현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기에, 그들의 선택 또한 재활용을 실천하는 참여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2014년 <웨이스트랜드> 영화 이미지
만약, 2014년에 개봉한 <웨이스트랜드>(2010)를 본 적이 있다면, 빅 뮤니츠(Vik Muniz, 1961~)가 마주한 대규모 쓰레기폐기장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한 예술현장 프로젝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빅 뮤니츠 이전, 쓰레기를 예술재료로 재활용한 예술가들의 활동은 이미 소비자본주의사회의 성장과 급속도의 발전 속에서 알려져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술가가 바로 아르망 피에르 페르난데스(Arman, 1928~2005)이다. 프랑스 니스출신의 미국 예술가로 알려진 아르망은 유럽과 미국의 소비사회로의 발전의 전후과정을 경험한 세대이다. 아르망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이 대상이 되었다.

<NBC 분노>(1961), <종이 쓰레기통>(1964), <축적>(1973)
아르망은 댄 플래빈의 형광등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사용한 재료들을 손쉽게 구하여, 이를 표현의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아르망은 사용한 흔적이 있는 재료들. 예를 들어, 산업폐기물, 폐품, 인쇄물, 쓰레기 등의 다양한 종류들을 재활용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태도는 에코 디자인 실천의 시작을 알린 예술가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아르망의 작품은 <NBC 분노>(1961), <종이 쓰레기통>(1964), <축적>(1973)와 같이, 파괴된 바이올린, 각종 구겨지고 폐기된 종이들, 쌓아올리고자 한 도장들의 수집, 그리고 배경에 보이는 축적이라는 단어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쌓고자하는 행위가 그려진다. 아르망은 특히, 1960년대를 기점으로 쓰레기의 폐기장을 상기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설치작품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NBC 분노>(1961), <종이 쓰레기통>(1964)는 그 시작을 알린 시점에 제작된 설치작품들이다.

<쓰레기통, 뉴욕>(1969), <무제>(1970)
특히, 미국사회의 대량소비와 낭비문화가 본격화 된 1960년대 전후로의 아르망이 경험한 현실은. <쓰레기통, 뉴욕>(1969)이 그 대표적인 설치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뉴욕의 쓰레기통이라는 제목을 붙인 아르망의 <쓰레기통, 뉴욕>(1969)은 뉴욕에 있는 쓰레기통의 표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쓰레기통과 같이, 각종 깡통과 과자박스, 종이가 담겨져 있다.
아르망의 재료선택은 본격적으로 증가한 쓰레기의 양의 범람을 연상시키는 각종 쓰레기 폐기물이였다. 유년시절부터 수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아르망은<쓰레기통, 뉴욕>(1969)에서와 같이 각종 쓰레기 쌓고, 축적하고 모으는 형태를 보여준다. 또 그 한 예가 <무제>(1970)이다. <무제>(1970)에는 각종 오물들로 보이는 투명한 사각형박스에 섞여있는 소비상품들,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것은 병, 옥수수콘 상표가 붙어있는 통조림, 병뚜껑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또 한 예로 <유기적 쓰레기통>(1972)에서도 <무제>(1970)과 같이 재가 된 쓰레기, 오물이 묻은 종이가 서로 얽혀 묶여있다. 다른 설치작품과 같이, 쓰레기 폐기장에 쌓여진 쓰레기 더미를 연상시킨다.

<유기적 쓰레기통>(1972), <조셉 코수스의 쓰레기>(1973)
특히, 재료와 함께 아르망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재활용을 압축, 축적, 집적하는 방식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그의 설치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또 한 예로, <조셉 코수스의 쓰레기>(1973)는 개념예술가로 알려진 조셉 코수스의 쓰레기로 보이는 종이들로 가득 찬 투명 아크릴 박스이다. 투명 아크릴박스에 넣어진 각 종의 종이들은 일종에 개념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면서, 그가 사용하고 버린 쓰레기이다. 이는 조셉 코수스가 사용한 흔적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투명 아크릴박스에 뒤죽박죽 쏟아 부은 행동을 감지시킨다. 특히, 이 종이류들은 쌓아서 축적하고 압축되어, 전체적으로 투명 아크릴 박스에 규격화된 설치작품이다. 이와 같이 아르망은 실제, 쓰레기 폐기현장을 연상시키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식과 그 과정, 그리고 실제 쓰레기를 버린 행위를 인식시킨다.
아르망의 대표적인 설치작품은 산업생산물, 일회용품, 폐품 등 각종의 쓰레기의 수집방식과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식을 하거나 추상적인 언어의 유희가 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적인 표현이 아르망의 설치작품 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우라를 만든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는 투명한 프레임 속에 담긴 쓰레기의 재활용,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쓰레기 파편들과 파괴되고 해체된 폐기물들이 즐비하다. 특히, 아르망의 설치작품은 쌓고, 축적하여 압축한 형태가 쓰레기의 재활용 현장을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아르망의 현실에 대한 목격과 그만의 방식으로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 아르망,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다.

<수백만 마일(머나먼 여정)>(1989), <소니 리스튼>(1963)
한국에서도 천안 아라리오 광장에 아르망의 <수백만 마일>(1989) 작품이 설치된 것은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재활용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가졌던 그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당시, 대량생산으로 인해서, 폐기된 산업생산물의 원형과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수백만 마일>은 산업폐기물을 한 곳에 모아, 기념비와 같은 공공조각 설치작품이다. 폐차의 차축으로 구성된 <수백만 마일>은 가까이 바라본다면, 1960,70년대의 아르망의 쓰레기 재료의 설치작품을 더욱 웅장하고 거대하게 만든 산업폐기물의 거대한 탑이다. 이 또한 아르망의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새롭게 설치작품을 진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63년, 버려진 다리미를 쌓아올린 <소니 리스튼>(1963)를 시작으로, 의자를 재활용한 <이오네스코>(1985), 자동차를 탑의 형태로 쌓아서 올리고 압축시킨, <장기주차>(1982), 등으로 파편적이고 해체된 것들을 집합시켰다.
<이오네스코>(1985), <장기주차>(1982)
이와 같이, 아르망의 설치작품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쓰레기에 대한 인식에 대한 문화가 과거와 우리의 현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더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빼고 말이다. 아르망은 소비한 모든 대상들을 단순히 쓰레기로 버리지 않았다. 쓰레기로 간과하지 않고, 재수집하고 모았다. 그리고 쓰레기가 된 대상과 오브제들을, 과연, 쓰레기로 버려져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소유보다는 공유를 통해서 아르망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재료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아르망은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쓰레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재료를 새롭게 찾기보다는 지금 자신이 소비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사용하는 방식을 보여준 아르망의 선택,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빠르게 무언가를 채워가는 의미에 우리는 현재 비중을 두고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에 욕망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한 노력. 그것 역시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르망이 쌓은 쓰레기의 양은 측정이 가능한 것과 다르게, 현재. 편리미엄을 추구하는 삶속에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쓰레기의 양은 그 무게 또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속적인 발전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한국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들이 있다. 개인의 편리함과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의 사용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쉽게 버려지고 있는 쓰레기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쌓고, 압축하고 축적해야 할지. 우리는 그 심각성을 더욱 인식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거주공간을 아르망의 쓰레기와 같이, 가득 채워 가겠는가. 아니면, 살기 좋은 환경에서 함께 거주하기 위한, 작은 실천으로 미래를 생각하겠는가.
* 사진출처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1/02/169301/
http://www.arman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