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레펠스의 비너스>, 독일 슈바벤, B.C. 38,000-33,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thecollector.com/venus-of-willendorf/
홀레펠스의 비너스(Venus of Hohle Fels)는 현재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조각품이다. 이 조각은 가장 오래된 여성 몸의 형상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38,000년에서 33,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독일 울름(Ulm)의 펠스 동굴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형상은 약 6cm로 소지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이며, 맘모스 상아를 다듬어 만들어졌다. 이 조각은 언뜻 보기에 여성의 몸이라 인지하기는 어렵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특징이 드러난다. 조각상에 머리는 없는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이 U자형 고리 형태로 되어있어 목걸이 팬던트나 장식품의 용도로 매달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커다란 두 가슴은 다소 위로 솟아 돌출되어 있고, 가슴 밑에 표현된 손가락은 줄을 그어 묘사되어있다. 왼쪽 어깨와 팔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조각상의 허리와 배는 매우 풍만하여 원형을 이루고, 그 밑의 여성의 성기는 매우 강조되어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짧은 다리가 달려 있으며, 발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형상을 통해, 인류학자들은 원시인류가 인간 몸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이 조각이 제작된 시기는 유럽이 빙하기를 겪고 있었고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기였으므로 임신을 하더라도 여성이 풍만한 몸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홀레펠스의 비너스는 이 시기 사람들의 풍요에 대한 염원을 담아 풍만한 몸으로 제작되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현재까지 선사시대의 풍만한 비너스 조각은 세계의 곳곳에서 200개 정도 발견되었는데, 인류학자들은 빙하가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비너스 조각상들이 빙하가 먼 곳에서 발견된 비너스 조각상들보다 더 풍만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풍만한 여성의 몸은 먹을 것이 부족한 선사시기 사람들의 생명 보존, 임신 및 다산을 염원하는 상징적 조형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많은 비너스 조각상의 표면에 오랜 시간 손으로 만져진 흔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세대를 이어 대물림하여 간직한 물건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는 염원의 상징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B.C. 24,000~22,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thecollector.com/venus-of-willendorf/
홀레펠스의 비너스보다 뒤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선사시대의 비너스로 가장 유명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는 1908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Willendorf)에서 발굴되었다. 이 조각상은 24,000년에서 22,000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기는 약 11cm로 홀레펠스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소지하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이며,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땋은 것인지 모자인지 모를 것이 머리 윗부분을 감고 있다. 작은 팔은 가슴 위에 얹혀 있으며, 커다란 가슴은 늘어져 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허리가 굵고 배가 나온 체형인데,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엉덩이가 매우 크며, 여성의 성기가 숨겨지지 않고 강조되어 표현되어 있다. 몸통과 거의 반반의 비율을 이루는 다리가 있으며, 발은 떨어져 나간 것인지 원래 없었던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다. 홀레펠스의 비너스와 비교했을 때, 추상적인 몸의 형태라기보다는 머리의 크기를 제외하면 실존했거나 실존하는 인류의 체형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셀의 비너스>, 프랑스 로셀, B.C. 20,000~18,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6866/the-venus-of-laussel/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보다 뒤에 만들어진 로셀의 비너스(Venus of Laussel)를 보자. 로셀의 비너스는 조각상이라기보다는 석회암 동굴 입구에 새겨져 있었던 부조 형태의 작품이다. 로셀의 비너스 크기는 43cm 정도이며, 홀레펠스의 비너스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큰 크기이다. 전체적 여성의 몸의 형상은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과장이 심해 보이는 몸의 형상은 아니다. 그러나 얼굴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으며, 여성의 성기는 잘 보이도록 표현되었다. 다리의 포즈는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고, 발은 있었던 듯하지만 떨어져 나간 듯 보인다. 팔과 손이 관절의 방향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포즈로 표현되어 있으며, 한쪽 손에는 뿔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다. 이 뿔은 악기로 보기도 하고 액체를 따르는 잔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살펴본 선사시대의 비너스상들은 머리가 있더라도 얼굴이 없거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고,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배가 임신한 여자처럼 풍만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대부분의 선사시대 비너스상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이를 기반으로 인류학자들은 선사시대 비너스상들은 특정 인물을 표현하거나 묘사한 것이 아니고 출산과 풍요의 이상적 여성성을 상징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선사시대는 부계사회가 아닌 모계 중심의 사회였고, 사회의 번영을 위해서는 출산을 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여성의 역할이 사냥이나 싸움을 하는 남성의 역할보다 더 신성해 보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선사시대 이후 농경사회와 부계 중심의 사회로 변모해 가면서 풍만하고 성기를 드러낸 형태의 비너스상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밀로의 비너스>, 그리스, B.C.130 ~ B.C.12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de_Milo
우리가 미의 여신 ‘비너스(Venus)’라고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여신인 비너스상은 비교적 작은 가슴을 하고 있고, 허리는 살짝 굴곡이 있지만 거의 일자로 보이며, 배가 부르지 않은 임신하지 않은 상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성성을 강하게 내포하는 형태의 몸이 아니다. 그녀의 머리는 정갈하게 빗질 되어있고, 몸의 곡선은 투박하지 않고 굴곡이 많지 않다. 작게 돌출된 가슴을 제외하면, 남성 몸의 전체적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목할 점은 그리스·로마 시대 비너스상의 성기는 감추어져 있거나 성기의 모양이 단순화되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사시대의 비너스의 성기가 과장되거나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상적 여인상인 비너스상은 성기가 부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숨어있으며, 나아가 숨겨야 할 존재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남신 조각상들은 그들의 성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부계 중심사회로 이행되면서 남성의 몸과 구분되는 여성 몸의 특성은 내세워서는 안 될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선사시대 모계 중심사회의 여성들은 그들 몸의 특성을 부각하고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적 특성은 새로운 생명을 담고 창출하기 위한 신성(神聖) 그 자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시인류는 극대화된 여성의 몸을 출산과 풍요를 염원하는 상징으로 조명(照明)하였고, 선사시대의 비너스들은 이러한 그들의 시대사상을 고스란히 반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는 고대의 반인반수의 형상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