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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 근대시대의 몸(The Body of the Modern Era) | ARTLECTURE

No.30 근대시대의 몸(The Body of the Modern Era)

-괴물의 몸, 근대의 욕망을 비추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Artlecture/
by Celest
No.30 근대시대의 몸(The Body of the Modern Era)
-괴물의 몸, 근대의 욕망을 비추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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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의 두 몸을 나란히 보면, 그것들이 공유하는 더 깊은 어긋남이 드러난다. 살아 있는 몸은 언제나 하나의 시간을 산다. 그것은 태어나 자라고 늙고 부패하며, 그 흐름 속에서 비로소 ‘나의 몸’으로 경험된다. 프랑켄슈타인의 몸과 드라큘라의 몸은 바로 이 시간을 어긋나게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조립된 몸은 서로 다른 죽음에서 떼어 온 시간들을 한 신체에 봉합해 놓은 것이고, 부패하지 않는 몸은 시간 자체가 한 지점에 봉인된 것이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뒤섞인 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멈춘 몸이지만, 둘 다 살아 있는 몸이 마땅히 따라야 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가 이 두 몸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그것들이 흉측해서가 아니라, 몸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따라야 할 시간을 잃었기 때문이다.

*괴물의 몸, 근대의 욕망을 비추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1930년대 영화 속에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획득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드라큘라(Dracula)는 단순히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만 볼 수 없다. 그들의 몸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마주하는 욕망과 불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결과이며, 이 불안의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의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1818)은 죽은 신체에 전기로 생명을 불어넣으려던 갈바니즘(Galvanism)의 상상력 위에서 쓰였다. 18세기 말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는 죽은 개구리의 다리에 전류를 흘려 경련을 일으켰고, 이 갈바니즘의 충격은 셸리 당대의 과학적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었다. 한편, 아일랜드 태생의 브람 스토커(Bram Stoker, 1847-1912)의 소설 <드라큘라(Dracula)>(1897)는 늙지 않는 육체에 대한 공포를 근대적 언어로 다시 불러냈다. 19세기 말은 수혈 의학이 시도되었고 세균학이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타인의 피로 생명을 유지하고 보이지 않는 감염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상상은 당시 사회에 널리 퍼진 담론거리였다. 그러나 이 두 몸이 누구에게나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형상으로 굳어진 것은 소설이 아니라 20세기의 영화에서였다. 19세기의 소설이 내재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두려움은 1931년 유니버설 픽처스(Universal Pictures)의 두 영화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얼굴과 윤곽을 얻게 된다. 두 괴물의 몸은 19세기가 상상하고 20세기가 시각화한 근대의 욕망과 불안이 융합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영화 <프랑켄슈타인> 포스터, 1931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kenstein_(1931_film)#/media/File:Frankenstein_poster_1931.jpg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 속의 괴물은 소설과 같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죽은 신체들로 만들어낸 존재이고, 신체의 조각들을 봉합한 그 형상은 영화가 구체화한 것이다. 대중에게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중요한 것은 통념상 프랑켄슈타인으로 불리는 괴물의 조립된 몸이 줄거리의 설정에 그치지 않고 화면 안에서 직접 보인다는 점이다. 분장사 잭 피어스(Jack Pierce)가 디자인한 괴물 역의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의 얼굴-위쪽이 평평하게 잘린 듯한 두개골, 목에 박힌 두 개의 전극, 무겁게 처진 눈꺼풀, 이마와 관자놀이에 남은 봉합 자국-은 그 몸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단시간 안에 전달한다. 즉 감상자는 설명을 듣기 전에 이미 그 얼굴에서 인위적으로 조립된 신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신의 영역으로 여겼던 인간에게 이러한 몸은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과학을 통해 생명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험이라고 느꼈다. 병든 신체를 고치고 죽음을 극복하며 육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구성하려는 욕망은 칼로프의 봉합된 얼굴로 구체화된 것이었다. 괴물의 몸은 과학기술 시대가 꿈꾸던 변형된 몸을 향한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셈이다.

 

 그림 2. 영화 <드라큘라> 포스터, 1931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racula_(1931_English-language_film)#/media/File:Dracula_(1931_film_poster_-_Style_F).jpg


 

영화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의 몸은 또 다른 욕망을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한다면, 드라큘라는 죽음을 거부하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이 차이는 드라큘라역의 벨라 루고시(Bela Lugosi)의 연기와 그를 담는 화면의 방식에서 드러난다. 루고시의 드라큘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정면을 향한 응시, 느린 동작, 창백한 얼굴, 뒤로 넘긴 검은 머리, 망토가 만들어내는 검은 실루엣-카메라는 그를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라기보다 시간이 멈춘 하나의 정물처럼 비춘다. 타인의 피로 끝없이 재생되는 그 육체는 불멸에 대한 인간의 오랜 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몸을 이상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죽음을 초월한 육체는 오히려 끝없는 갈증과 고독에 사로잡힌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의 영생하는 육체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수명을 늘리고 질병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지만, 시간을 멈춰 세운 드라큘라의 변형된 몸은 그 욕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불안을 비춘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의 두 몸을 나란히 보면, 그것들이 공유하는 더 깊은 어긋남이 드러난다. 살아 있는 몸은 언제나 하나의 시간을 산다. 그것은 태어나 자라고 늙고 부패하며, 그 흐름 속에서 비로소 나의 몸으로 경험된다. 프랑켄슈타인의 몸과 드라큘라의 몸은 바로 이 시간을 어긋나게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조립된 몸은 서로 다른 죽음에서 떼어 온 시간들을 한 신체에 봉합해 놓은 것이고, 부패하지 않는 몸은 시간 자체가 한 지점에 봉인된 것이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뒤섞인 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멈춘 몸이지만, 둘 다 살아 있는 몸이 마땅히 따라야 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가 이 두 몸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그것들이 흉측해서가 아니라, 몸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따라야 할 시간을 잃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몸이 생명을 창조하려는 욕망과 그 공포를 드러낸다면, 드라큘라의 몸은 죽음을 넘어서려는 욕망과 그 욕망이 부르는 불안을 보여준다. 하나는 죽은 부분들을 이어 붙여 변형한 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멈춰 변형한 몸이지만, 두 몸 모두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치르게 되는 대가를 형상으로 보여준다. 19세기의 소설이 문장으로 기록한 두려움을 20세기의 영화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얼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여전히 우리를 응시한다. 생명을 설계하고 죽음을 미루는 기술 앞에서 그 얼굴들은 묻는다. 우리가 변형하고 싶은 몸은 무엇이고, 두려워하는 몸은 무엇인지.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20세기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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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Celest_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며 예술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