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한 사진가의 수업 | ARTLECTURE

한 사진가의 수업


/People & Artist/
한 사진가의 수업
VIEW 59

루이지 기리는 1943년, 이탈리아 북부 레조 에밀리아(Reggio Emilia) 지방의 소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많은 사진을 남겼습니다. 기리는 1970년대에 사진을 시작해서 주로 일상 속 평범한 순간을 채집했는데, 풍경과 건축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1982년 쾰른에서 열린 포토키나(Photokina)에서는 세계의 주요 사진가 20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조금 이른 나이인 마흔아홉 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어요. 대표작인 『코다크롬』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풍경』, 『폴라로이드: 1979-1983』 등의 사진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사후에 그의 작업을 눈여겨 본 이들을 통해 2010년대 이후 뉴욕, 로마, 도쿄 등지에서 대형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사진을 매우 아름답게 읽는 글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Geoff Dyer)의 책 『See/Saw』가 있습니다. 이 책에 루이지 기리의 사진에 관한 글도 한 편 실려 있는데요. 그는 기리의 사진이 보여 주는 세상을 'a Ghirri-esque world view' - '기리풍의 세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한 사진가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단어가 기리의 사진이 보여 주는 고유한 가치를 잘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Modena, Italy. 1971. © Luigi Ghirri




기리는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가 있습니다. 기리가 레조 에밀리아의 프로제토 대학교(Università del Progetto)에서 강의를 했는데, 1989년 초부터 1990년 여름까지 진행한 당시 수업이 녹취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녹취본을 정리해서 이탈리아에서 『Lezioni di fotografia(레찌오니 디 포토그라피아)』라는 책이 나왔고, 한국에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열화당, 2020)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이 되었습니다.


기리가 수업의 첫 번째 주제로 가져온 이야기는 "아마추어적인 열정"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지에 깊게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사진에 대한 관심, 그리고 ***순수하게 아마추어적인 열정*** 을 꼽았습니다. 관습이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아마추어적인 정신, 세상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서 다른 것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아무거나 마음 가는 대로 찍어 보며 시작하라는 조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익숙한 이미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이 닿는 대로 솔직하게 렌즈를 향하고 셔터를 누르는 겁니다.


기리가 말한 순수한 열정은 제가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세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흥분과 설렘의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도 처음으로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처음 사진이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어떠했었나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Paris, France. 1972. © Luigi Ghirri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열정"과 자유롭게 세상을 "탐색"하는 시선에 이어 나온 수업 주제는 자기 자신을 잊기 였습니다. 기리는 사진을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미지에는 사진가의 개인적인 시각과 실재의 세상이 동시에 담긴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연금술' 같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연성하려는 마법에 가까운 사진 찍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사진가의 내면과 외부 세계와의 균형점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그렇게 두 존재가 공존하는 한 지점, 평형을 이루는 한 지점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사진가와 세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셔터를 누르는 찰나에 순간적으로 무아지경의 차원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셔터가 넘어가는 짧은 순간, 사진가와 세상이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스며들고, 주위 모든 것이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길을 걷던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칵 소리가 들리고, 화면은 그가 찍은 프레임 안에서 정지합니다. 셔터음 이후로 세상이 멈추는 찰나, 그래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연성하는 연금술인가 싶기도 합니다. 



Bologna, Italy. 1973. © Luigi Ghirri



카메라 옵스쿠라에서부터 출발하는 사진의 역사와 다게르의 탕플 대로 사진, 카메라를 처음 쓰는 사람이 익혀야 할 노출과 자연스러운 프레이밍 같은 주제 또한 수업의 일부였습니다. 기리는 기본적인 조리개와 노출을 익힐 수 있는 수동 카메라를 쓰면서 사진술의 기본을 익히라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기술적인 이해보다 카메라라는 대상을 통해 **빛으로 글을 쓰고 읽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진술이 물리학과 광학의 영역에 들어가긴 하지만,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드는 건 이론과 논리로 움직이는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 창조와 상상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기리는 사진이 "내가 본 것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내가 본 것의 재해석"이기도 하며, "근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사진가의 인식"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조금 곱씹어 볼까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진, 모든 이미지는 그것을 만들어 낸 '사진가'의 시선이 담긴 하나의 주관적 주장입니다. 사진은 사진가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언어"이며 그들의 눈으로 뱉어내는 "발화"입니다. 


이미지가 셀 수 없이 넘쳐흐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오직 자기만의 고유성을 간직한 사진,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한 사진가가 '선택한' 프레임, 그가 선택한 '보여줘야 할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함께 담긴 프레임을 통해 우리는 70억분이 1이 바라 본 유일한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Ill-Rouse. 1976. © Luigi Ghirri



마지막으로 오늘  본 사진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사진들 대부분은 기리의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Kodachrome(코다크롬) 시리즈에서 가져 왔습니다. 기리는 이 시리즈를 만들면서 포토몽타주의 메커니즘을 따랐다고 했는데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 하나의 포토몽타주처럼 보이는 순간에 주목했습니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던 또 다른 이미지를 통해 일상에서 이미지가 지니는 의미와 동시대성을 파악하고, 삶 전체에서 이미지와 일상이 맺는 관계를 해석해 보려 했습니다. 개별적인 사진으로  구축하기보다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하려고 했습니다. 기리는 코다크롬 시리즈가 일종의 사회학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사진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대상에 더 집중하여 이야기하려 한 것도 이러한 관계의 해석과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제목을 코다크롬으로 붙인 이유는 당시 널리 보급 된 필름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리는 사진가의 작업 과정은 결코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뚫으며 하나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것이 작업의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진가와 세상이 평형을 이루는 미묘한 균형을 찾는 과정, 이러한 믿음이 코다크롬 시리즈에 담겨 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많겠지만, 삼청동의 뮤지엄한미에서 루이지 기리의 회고전 Infinite Landscapes》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기리의 대형 전시인데요. "이미지를 관찰하고 읽는 시간은 독서를 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했던 기리의 말처럼, 전시장에서 다시 한번 천천히 그의 사진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전시는 오는 3 15일까지 열립니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최다운은 이미지를 만나며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보고 읽는데 더 큰 흥미를 갖고 있으며, 뉴욕에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탐방기인 『뉴욕, 사진, 갤러리』(2021)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