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만을 위한 도슨트는 지난 2024년 제주 포도뮤지엄의 전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Perhaps Sunny Day>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술가의 시선과 공감을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 우리는 결국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당신을 보내고 나서야 그날의 전시를 당신 앞에 펼쳐 보입니다. 늦었어도 용서하세요. 지금부터 우리 둘만의 시간입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밀실 1>,1991,채색목재 천 금속 유리,210.82×243.84×274.32,글랜스톤 뮤지엄 소장
사방을 둘러 천천히 보시기 바랍니다. 벽에서 독립한 문들이 겹겹의 공간을 만들며 오히려 벽이 되어 서 있습니다. 공간은 마치 양파 껍질 속의 고갱이처럼 시간 뒤에 숨어 조용히 숨을 삼킵니다. 눈을 가늘게 세우고 틈새로 입김을 날리면, 허름한 철제 침대와 색이 바랜 베개, 환자용 소변기가 보입니다. 익숙하면서도 친숙하지는 않은, 이곳은 오랜 병病의 거주지입니다.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전적 서사를 예술 작업으로 풀어낸 작가입니다. 어머니의 오랜 병상 생활을 되뇌는 이 작품은 당당하고 다소 공격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다른 작업과 달리 어린 소녀가 바라본 고통과 외로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틈으로밖에 볼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대로 마주하면 안 될 것 같은, 너무 많이 알면 다칠 것 같은 기억 말입니다. 한번 마주하면 잊히지 않아 남은 시간 모두를 채워버릴 것 같은 강렬한 기억이라 어디에도 꺼내놓고 소리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온전하게 침묵 뒤로 숨겨두는 기억의 무덤, 바로 죽음에 대한 기억입니다. 입 밖에 꺼내는 순간 현실이 될 것 같아 입속에 꽁꽁 묶어두고 매 순간 상상하는 죽음.
어쩌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가장 많이 꿈꾼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요?
쉐릴 세인트 온지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2018~2020,디아섹,가변크기
늙음의 끝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노인의 천진함은 예의범절이나 격식 같은 것은 뒤로하고, 오로지 본능적인 즐거움에 집착합니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자신은 행복한, 순수하고 순결한 이기심을 닮았습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작품이 만들어지기 5년 전 혈관성 치매를 진단받았습니다. 관계의 매듭들이 풀어지고, 기억의 조각들이 시간의 그물 사이로 꼬리를 감춥니다. 당신의 행복과 나의 불행을 반드시 저울의 양편에 둘 필요는 없습니다. 조류관찰자이자 새를 조각하던 예술가였던 어머니에게서 작가는 새처럼 자유로운 빛을 마주합니다. 가볍고 밝은 기운의 빛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받아들여집니다. 유리그릇의 바닥까지 혀로 핥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가 본 적 없는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잊혀진 기억을 뫼비우스 띠 같은 시간 속에서 사이좋게 나눠 갖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것이 인연의 이유일지 모릅니다.

정연두 <수공기억>,2008,2채널 ,hd 비디오 사운드,54'17“
오래도록 앉아 있어야 할 겁니다. 누군가의 넋두리를 이렇게 경청하는 일은 예술이 시키는 일이 틀림 없습니다. 반복되고 부풀려지는 이야기, 귀 아프게 듣고 또 들어 과거 속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고장 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수취인불명의 잡음처럼 들립니다. 인지 저하증의 한 일면은 그렇게 반복되는 기억의 중얼거림 속에 있습니다. 가까운 기억보다 멀고 오래된 기억을 붙들고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다집니다. 그리고 휙- 어디론가 내던져져 누군가의 이마를 깨기도 합니다.
이미 어떤 성적인 능력은 상실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야한 농담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애처롭습니다. 숫자의 부풀림은 당연하고 그날의 감정마저도 태산처럼 웅장해집니다. 허풍과 허세, 과시와 과장이 난무하는 이야기를 작가 정연두는 ‘진심으로’ 복원합니다. 화자의 말 그대로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재연합니다. 기억이, 그 순순한 복원이, 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 사실이기는 한 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말과 생각이 시각적으로 얼마나 다른 구조로 되어 있는지, 기억이 과장되는 과정의 어느 한순간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이토록 정성껏 복원하니 시간을 들여 반드시 봐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꺼이 무엇이든 들어주는 일뿐일 지도 모릅니다.
시오타 치하루 <끝없는 선>,2024,로프 종이 책상 의자,포도뮤지엄 커미션으로 제작
실을 이어 우리 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짜는 시오타 치하루 작가는 책상과 활자를 공중으로 이어 올리는 설치 작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합되어 의미가 있는 한글이 아니라 분리되어 독립적인 알파벳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활자와 책상이 마치 악기의 현絃처럼 맞닿아 있습니다. 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 보세요. 나만의 음색이 공중에 떠다닐 것만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길어 올리고 싶은 작가와, 모든 지식과 지혜를 쟁여두고픈 현자에게 이처럼 활자와 바로 닿는 순간은 얼마나 짜릿할까요? 지금, 이 순간 활자는 날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매달려 당겨지고 있을까요?
시간과 기억은 하나가 쌓이면 다른 하나는 날아가 버린다고 합니다. 시간이 쌓이면 기억은 날아가 얄팍해지고, 기억이 쌓여 단단해지면 시간은 쏜살같이 가벼워져 마지막을 향해 손을 뻗으며 날아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점점 늘어져 가는 현絃 위의 아슬아슬한 기억들이 아닐까요?
로버트 테리엔 <무제(패널룸)>,2017,나무 및 혼합매체,355.6×473.7×356.2,로버트 테리엔 재단 소장
주변이 조용합니다.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고, 누구도 곁에서 함께 할 수 없는, 결국 우리는 홀로 남게 될 겁니다. 한때 열심히 짤랑거리던 탬버린도 잦아들고 기척 하나 없이 깨끗이 비워진 방에 우리는 한 톨의 먼지로 남게 될지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데, 자꾸만 어디선가 이명耳鳴처럼 울리는 소리는 먼 과거의 기억 탓이겠지요. 이 방을 가득 채웠을 지인들과, 그들과 함께했던 무수한 음식들과, 끊기지 않던 웃음과 울음, 때론 비명을, 때론 환호성을 지르며 삶의 충만함으로 가득 찼던 순간의 이명들 말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견고했던 벽은 한낱 무대 위의 얇은 널빤지였을지 모릅니다.
테마공간 <forget me not>,2024,8채널 영상 프로젝션맵핑 채집된 사운드와 작곡 음원,8',배롱나무,가변크기
여기는 전시의 마지막 공간입니다. 인간의 삶보다 긴 삶을 살았던 배롱나무 위로 자연의 기억들이 스쳐 갑니다. 시간의 궤적을 그린 계절들과 나날의 날씨, 기후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까지 잃고 싶지 않은 인간의 기억들이 펼쳐집니다. 저는 바로 이 순간에 가슴이 느꺼워져 눈두덩이가 뜨끈해졌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은 기이하게도 닮아 있었습니다. 자식이 태어나 처음 마주한 순간, 첫걸음을 떼던 순간, 첫 소리를 내고 웃던 모든 순간. 나무 주위로 세상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빽빽하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단 하나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홀로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요?
병은 우연이기에 죄스러울 필요가 없고 죽음은 필연이기에 욕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누구든 언젠가 흙을 덮고 누울 텐데, 그 순서가 무슨 상관이냐고 냉소적으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추측을 끼워 넣고, 혀끝을 맴도는 어휘를 찾기 위해 스무고개도 했습니다. 단어를 잃고 말의 시간을 잊은 당신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래도 마주하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럴 일도 사라졌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그대로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남겨졌습니다. 나를 호명해 줄, 어떤 이름을 내게 줄 사람을 나는 보냈습니다. 먼저 달려간 세상에서 당신은 잘 지내십니까?
어쩌면 아름다웠을 어느 날을 기억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