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미술과 몸; 중세인의 심장(상)
지난 칼럼의 중세의 머리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 칼럼에서는 중세의 심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중세인들에게 있어서 심장은 의학적으로 다른 기관에 비하여 연구가 덜 된 분야였다. 중세인들은 대체로 심장이 체온 유지에 중요한 기관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체계적으로 심장에 관하여 연구하려는 의지는 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심장이 두 개의 심실로 나누어져 있다던가 수축 및 이완 운동을 기반으로 혈액을 순환하게 한다는 중요한 기능적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장에 관한 과학적 접근보다 중세인들은 심장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심장이 몸 안의 물리적인 장기이지만 정신적 층위인 마음을 포함한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현대인의 언어에서도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용기(courage)’는 심장을 의미하는 중세 프랑스어 coeur에서 유래된 것이며, ‘우호적(cordial)’은 라틴어로 심장을 의미하는 cordis에 기원을 둔다. 중세인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심장에서 발현한다고 믿었다. 사랑과 관련하여 중세인의 심장이 상징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심장이 상징하는 ‘세속적 사랑’의 측면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사진 1. Coffret with the inside depicting Frau Minne, the German goddess of love, aiming and arrow at a young man>, 1350
출처: https://www.reddit.com/r/Medievalart/comments/1afju0h/coffret_minnek%C3%A4stchen_with_the_inside_depicting/?rdt=53322
사랑의 감정을 담은 심장을 표현하는 하트(♥) 모양은 어떠한 이유에서 사용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중세 후반의 인쇄물과 공예품 등에 장식된 이미지에 구체성을 가지고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심장과 세속적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가 표현된 작품을 들자면, 1350년경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독일 중세의 보석함의 뚜껑에 새겨진 장식화를 들 수 있다(사진 1). 왼편의 그림에서 한 여인이 젊은 청년의 심장 부분에 활을 겨누고 있으며, 오른편의 그림에서는 젊은 청년이 자신의 심장으로 보이는 것을 여인에게 건네주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청년의 심장은 하트(♥) 모양이며 여인이 쏜 세 개의 화살이 꽂혀 있다. 심장을 건네는 청년은 아마도 여인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청년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식화는 중세 유럽의 궁정 연애(Minnesang)를 표현한 것으로 이 그림에 나타난 여인은 낭만적 사랑의 여신이나 여왕을 대변하며 ‘프라우 미네(Frau Minn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사진 2).
<사진 2. possibly depicting Frau Minne as queen>, German chandelier sculpture, 1430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u_Minne
중세의 연애시와 시각예술 작품에서 등장하는 프라우 미네는 보통 매우 변덕스러우며 그녀의 젊은 연인의 육체와 마음을 애달프고 괴롭게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녀의 연인인 젊은 청년은 그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프라우 미네를 우상화하고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녀를 위한 기사도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들의 관계는 대체로 결혼한 귀족 여인과 미혼의 젊은 청년 간의 사랑에 기반한 관계인데, 중세 귀족들은 정치적 또는 사업적인 목적으로 결혼하였으므로 귀족 유부녀와 미혼 청년의 연애 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불순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정 연애를 의인화하여 대변하는 프라우 미네는 그녀의 연인의 마음, 즉 심장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문하는데, 1480년대 독일의 한 판화작품에 묘사된 장면은 이를 반증한다(사진 3).
<사진 3. The Power of Minne>
Broadsheet woodcut, 15th century by Master Casper von Regensburg, Berlin
출처: https://gynocentrism.com/2019/03/19/frau-minne-the-goddess-who-steals-mens-hearts-a-pictorial-excursion/
이 판화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면의 중앙에 여신과도 같아 보이는 프라우 미네가 서 있고 그녀를 둘러싼 19개의 하트(♥) 모양의 심장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문 또는 처형을 당하고 있다. 이는 중세시대에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이 고문 및 처형을 당했던 방식과도 유사하다. 19개의 심장들의 상황은 각기 다른 연인들의 심장들의 수난들을 표현할 것일 수 있고,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한 젊은 청년의 처절한 19번의 수난들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무릎 꿇은 젊은 청년은 프라우 미네를 향해 다음과 같이 삼행시를 읊고 있다.
아아, 아가씨, 어여쁘고 선량하신 그대!
저를 고통에서 놓아 주시고
부디 그대 품 안에 들이소서!
프라우 미네의 표정과 자세는 그의 간청을 진지하게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그를 자유롭게 놓아줄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는 그녀가 왼손으로 큰 칼을 들어 그의 심장을 꿰뚫어 자신의 옆에 고정하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큰 창으로 그의 심장을 매달아 그녀몸 가까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조성한 심장 형벌의 장(場)에서 그는 가엽게도 헤어나올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심장은 중세인의 세속적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쓰였으며, 주로 궁정식 연애를 하는 젊은 남성의 마음을 희화화하여 대변하는 상징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는 상반되게 심장은 종교적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였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서 진행하려 한다.
*이번 칼럼의 정보와 직접인용은 잭 하트넬의 <<중세 시대의 몸>>, 2023‘를 참고하였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중세의 미술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