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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2 중세의 몸(The body of the middle ages) -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ARTLECTURE

No.12 중세의 몸(The body of the middle ages) -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Artlecture/
by Celest
No.12 중세의 몸(The body of the middle ages) -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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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지난 칼럼에서 중세의 기독교와 몸 그리고 머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았다. 이를 통해서 중세인들이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머리라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14세기 잉글랜드 백과사전의 머리 삽화를 통해 중세인들이 뇌와 뇌의 기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칼럼에서는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의 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중세의 미술과 몸중세인의 머리() 


<사진1 Baptism of Jesus by St. John the Baptist>

The baptism of Jesus by St. John the Baptist in the Jordan River; from an Armenian illuminated manuscript of the Gospel, 1268

사진출처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esus


 

세례 요한은 기원전 1세기 후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수(Jesus)가 세상에 재림할 것이라는 예언과 설교를 하던 인물이다성경과 유대인의 역사에서 세례 요한은 매우 비중 있는 존재이며그 이유는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사진 1). 고대와 중세의 성인은 민중의 수호자로 대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세례 요한은 그중 한 명이었다성경의 마가복음에 따르면세례 요한은 그의 시대 왕이었던 헤롯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의 행실에 대하여 도덕적인 비판을 하였는데이를 빌미로 헤로디아의 농간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세례 요한의 죽음의 배경에는 민중들의 큰 지지를 받았던 그의 명성이 왕의 지위를 압박할 것이 두려워 헤롯에 의해 참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반대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의붓딸이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와의 내기에 져서 어쩔 수 없이 참수했다는 설도 있다사진 2).

 


<사진2 Salome with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By Caravaggio, 1607~1610

사진출처https://en.wikipedia.org/wiki/Beheading_of_John_the_Baptist

 


세례 요한과 살로메의 이야기가 있는 마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로데(헤롯)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http://www.cbck.or.kr/)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들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들이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53)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작품들을 포함해서 오늘날 까지 많이 남아있다. 카라바지오가 그린 <살로메와 세례 요한의 머리>의 한 작품을 보면(사진 2)사형수가 세례 요한 머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살로메가 든 쟁반에 놓고 있으며살로메는 직접 요한의 머리를 보지 않고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두고 있다심지어 그녀는 흰색 천으로 쟁반을 부분적으로 감싸 요한의 머리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데살로메 옆 그녀의 시녀로 보이는 여자는 상황을 자세히 지켜보며 살로메에게 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는 듯하다살로메의 표정은 경직된 듯 보이나 크게 당혹스러워 보이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이는 살로메가 상황을 공모하였으나 직접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자신에게 잘못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어쨌든 카라바지오는 살로메보다는 세례 요한의 편에서 서서 이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3 The Beheading of John the Baptist (detail)>

possibly by Tomasino da Vimercate, 1410(?)

사진출처https://www.stephenmorrisauthor.com/beading-of-john-the-baptist/


 

세례 요한이 처형당한 방식은 참수형(Beheading)으로 머리 뒤에서 목이 잘리는 방식이었다 (사진 3). 참수형은 고대나 중세시대에 서양의 역사에서 비교적 온건한 처형방식에 해당한다예를 들면십자가형살가죽 벗기기화형이나 목이 매달려 죽는 교수형 등은 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고통의 과정이 따른다참수형은 그에 비하면 단시간 안에 죽는 것이 가능했으므로 주로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형벌이었다그러나 참수형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다는 점에서 매우 가혹하고 잔인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개인적으로 참수형을 당한 자에게는 사회적 제재의 결과였으며사회적으로는 군중과 시민들에게 보내는 사회적 경고였다.

 


<사진4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가 놓인 접시>

limestone with traces of polychromy, Germany, 1480~1520

사진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ad_of_St._John_the_Baptist_on_a_Platter,_Rhineland,_c._1480-1520,_limestone_with_traces_of_polychromy_-_Museum_Schn%C3%BCtgen_-_Cologne,_Germany_-_DSC00127.jpg

 


참수형 뒤 세례 요한의 머리는 커다란 접시에 올려져 전시되었다고 전해진다. 15세기의 독일의 세례 요한 머리 조각상을 보면(사진 4)방금 참수를 당한 것처럼 얼굴의 표정이 매우 적나라하다엄청난 괴로움을 느꼈을 세례 요한의 찌푸린 얼굴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만든다게다가 세례 요한의 잘린 목뼈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상황의 참상을 그대로 반영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이를 보는 사람들은 공포와 경각심 그리고 세례 요한을 향한 경외감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중세시대에 세례 요한의 머리는 진실하고 독실한 신앙의 상징물이었고이 때문에 중세시대에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교회들이 많았다실제로 어느 교회든 그의 머리를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중세시대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 또는 세례 요한 머리의 조각상과 교류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세례 요한의 머리를 매개로 한 교류를 통해 깊은 신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중요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비록 모형 작품이라고는 하지만세례 요한 머리 조각상들은 머리에 대한 중세시대의 문화적 상징성과 도덕 관념 및 종교적 관념 등 무수한 사상과 사유들을 총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다시 말해세례 요한의 머리를 통해 머리가 몸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잔인한 그리고 신성한이렇게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표출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칼럼의 정보는 잭 하트넬의 <<중세 시대의 몸>>, 2023‘과 자크 르 고프의 <<중세 몸의 역사>>, 2009’를 참고하였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중세의 미술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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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Celest_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며 예술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