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의 미술과 몸; 산해경(山海經)을 통해서 본 반인반수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산해경(山海經)은 고대 중국 및 그를 둘러싼 고대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리 및 신화 등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저서이며, 고조선과 발해 등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산해경에 등장하는 고조선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 하늘[天]이 그 사람들을 길렀고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 (산해경)
정재서(2019)에 의하면, 위의 언급에서 ‘하늘’은 단군신화(檀君神話)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늘과 천신을 숭배하는 고대 한국의 종교적 특성의 표출이다. 단군신화에서 하늘[天] 신의 아들인 환웅(桓雄)은 곰에서 여자로 변신한 웅녀(熊女)와 결합하여 단군을 낳고, 단군은 고조선 최초의 왕이 된다. 이러한 단군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언급이 산해경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다시 동쪽으로 150리를 가면 웅산이라는 곳이다. 이곳에 굴이 있는데 곰굴로서 늘 신인이 드나든다. 여름에는 열리고 겨울이면 닫히는데 이 굴이 겨울에 열리면 반드시 전쟁이 난다. (산해경)
이 이야기가 단군신화와 연관된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풍백(風伯, 바람의 신), 우사(雨師, 비의 신), 운사(雲師, 구름의 신) 3인의 신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들이 산해경에서도 등장하는 신들인 것으로 보아 산해경의 기록의 일부분은 고대 한국에 관한 기록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산해경에서 풍백과 우사는 전쟁의 신 치우(蚩尤)의 편이 되어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산해경과 고대 한국문화와 접점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가 이에 응룡으로 하여금 기주야에서 그를 공격하게 했다. 응룡이 물을 모아 둔 것을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로 거침없이 쏟아지게 했다. 황제가 이에 천녀인 발을 내려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산해경)
<중국 한나라의 치우 형상, 붉은악마 심볼, 통일신라의 귀면와>
사진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B9%98%EC%9A%B0 (좌)
https://namu.wiki/w/%EB%B6%89%EC%9D%80%20%EC%95%85%EB%A7%88 (중)
https://gyeongju.museum.go.kr/kor/html/sub04/0401.html?mode=V&id=PS0100100200100014300000&cate_code=&cate_gubun= (우)
치우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기도 하고, 건축물 지붕의 와당(瓦當, 지붕의 기와 끝부분을 막는 건축재)의 표면을 치우의 얼굴로 장식하는 것이 고구려 시대의 유행이기도 했다. 치우의 외모에 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여덟 개의 팔과 다리에 두 개 이상의 머리를 지녔다는 설,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소의 뿔과 발굽이 있으며 머리는 구리와 쇠로 된 몸을 가진 존재라는 설 등이다. 이렇게 치우가 인간의 몸에서 변형된 형태의 몸을 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예사롭지 않은 존재이며, 인간을 뛰어넘는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는 앞선 칼럼들에서 살펴본 다른 문화권에서의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의 특징이기도 하다. 치우와 전쟁하던 황제가 천녀를 보내 미인계를 써서 간신히 치우를 물리쳤다는 산해경의 기록은 치우의 힘이 매우 막강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치우를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고대 한국문화의 일부를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2002년 월드컵 한국대표팀을 지지하는 붉은악마 서포터즈의 심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사진 1). 그러나 붉은 악마 심볼은 신라시대의 도깨비 형상의 귀면와(鬼面瓦)에서 참고한 도안이기 때문에, 산해경에 등장하는 치우 및 고구려 와당의 치우 형상과는 차이가 있다.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의 만세(萬歲), 산해경의 주(鴸)>
사진출처: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levelId=kk.d_0002_0090_0040_0020
산해경과 한국의 고대문명의 접점을 기반으로 고대 한국미술에서의 반인반수의 형상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인간의 변형된 몸을 가진 여러 가지 존재들이 표현되었는데, 그중 인면조(人面鳥)인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는 산해경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사진 2). 인면조는 신화나 전설에서 언급되는 상상 속의 새로 주로 머리가 사람의 것이고 몸은 새의 형태를 하고 있다. 산해경에 등장하는 인면조는 올빼미의 몸에 사람의 손을 가진 귀양살이를 예고하는 주(鴸), 사람의 얼굴에 다리가 세 개인 새의 몸을 한 구여(瞿如), 올빼미의 몸을 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가뭄을 알리는 옹(顒), 수탉같이 생겼으나 사람의 얼굴을 한 전쟁을 알리는 부혜(鳧徯) 등이 있다. 산해경에서 주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어떤 새는 생김새가 올빼미 같은데 사람과 같은 손을 갖고 있고 그 소리는 마치 암메추리의 울음과도 같다. 이름을 주(鴸)라고 하는데 제 이름을 스스로 불러 대며, 이것이 나타나면 그 고을에 귀양 가는 선비가 많아진다. (산해경)
위의 인용과 같이, 산해경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인면조들은 불길한 징조를 예견하고 이를 알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와는 다른 양상으로 고구려 벽화의 천추와 만세는 그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 사는 능력이 강조된다. 중국 동진(東晉)의 갈홍(葛洪, 283∼34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에 “천추의 새와 만세의 짐승은 모두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으로 수명 역시 그 이름과 같다”라는 언급이 있다. 또한, 덕흥리 고분의 만세의 머리를 보면, 불사(不死)인 도교의 선인들이 한 머리 장식과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만세가 장수를 상징하고 그 염원을 표출하는 존재라는 증거가 된다(사진 2).
<백제 금동대향로>
사진출처: https://namu.wiki/w/%EB%B0%B1%EC%A0%9C%EA%B8%88%EB%8F%99%EB%8C%80%ED%96%A5%EB%A1%9C
한국의 고대문명에서 인면조는 백제와 신라의 미술품에도 나타난다. 백제의 경우 금동대향로에 네 마리의 인면조가 조각되어 있고(사진 3), 무령왕릉에서 나온 동탁 은잔에도 인면조가 있다. 신라의 경우 경주 식리총에서 나온 금동 식리(飾履, 장식신발)의 발바닥 부분에 인면조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불교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극락에 깃들어 산다고 알려진 인면조인 ‘가릉빈가(迦陵頻伽)’가 새겨진 수막새 또는 와당이 발견된다(사진 4). 가릉빈가 수막새는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건축물에서 상당수가 발견되었다.
<가릉빈가 무늬 수막새>, 통일신라시대
사진출처: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3086
이처럼 고대 한국국가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인면조는 산해경에서 불길한 징조를 알려주는 인면조와는 다르게 신성하며 긍정적 신(神)의 이미지에 가깝다. 만세와 천추처럼 영원함과 불사를 상징하기도 하고, 가릉빈가처럼 천국의 기운과 소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면조의 얼굴이 사람과 같은 것은 인면조가 땅에 관련된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인면조의 몸이 새와 같은 것은 하늘과 관련된 존재라는 암시를 준다. 하늘과 땅 모두와 연결되어있는 인면조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서로운 존재이다. 산해경의 인면조가 ‘불길함을 부르는 흉조’라고 한다면 고대 한국의 인면조는 ‘신성한 길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두 인면조의 공통점은 인간은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을 보거나 하늘의 이치 또는 신의 이치를 자각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신적 능력을 사용해 인간세계에 개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인면조는 인간 몸의 능력을 초월한 인간과 신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존재이다.
<리키아(Lycia)의 하피(Harpy)>, 그리스 문명, 480 B.C.~470 B.C.
사진출처: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G_1848-1020-1
인면조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하르피이아 또는 하피(Harpy)라고 불린다(사진 5). 하피는 ‘약탈하는 여성’이라는 의미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어린아이나 죽은 영혼을 낚아채 약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의 하피 자매는 바다의 신 타우마스와 인간 공주인 엘렉트라의 딸들이다. 이처럼 하피는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이며, 고대 한국과 산해경의 인면조와 같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이며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간자이다. 그러나 동양의 인면조가 인간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하피는 위협적이고 공격적 존재이다. 하피의 약탈행위는 그들의 본능을 따른다기 보다는 신들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선하거나 신성하기보다는 괴수에 가깝다. 간혹 그들의 얼굴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그들의 능력은 인간에게 직접적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투루판 지역 고분의 복희와 여와, 고구려 오회분 묘실의 해신과 달신(6세기)>
사진출처 :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435 (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801/72817069/1 (우)
이러한 반인반수이자 괴수인 하피와는 상반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은 대부분 완전한 신(神)이거나 신적 존재이다. 중국 길림성에 있는 오회분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반인반수인 해신과 달신이 등장한다(사진 6, 우측사진). 해와 달을 각각 두 손으로 머리에 올린 여신과 남신은 영락없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며,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뱀 또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의 몸 형상의 근원을 산해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종산(鐘山)의 신은 이름을 촉음(燭陰)이라고 한다.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된다. 입김을 세게 내불면 겨울이 되고 천천히 내쉬면 여름이 된다. 마시지도 먹지도 않으며 숨도 쉬지 않는데 숨을 쉬면 바람이 된다. 몸 길이가 1000리이고 무계의 동쪽에 있다. 그 생김새는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붉은 빛이며 종산의 기슭에 산다. (산해경)
위의 인용 외에도 산해경에서 사람의 머리와 뱀 또는 용의 몸체를 한 반인반수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러한 맥락의 존재들은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나오는 남매이자 부부인 창조신 복희(伏羲)와 여와(女媧)와 관련이 있다. 복희와 여와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고분벽화와 유적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중국 고대 소수 민족의 유물에서도 발견된다. 투루판 지역의 고분에서 발견된 복희와 여와의 모습은 산해경에서 언급된 촉음처럼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사진 6, 좌측사진). 여기서 복희와 여와는 ‘원형을 그리는 쇠[規]’와 ‘구부러진 자[曲尺]’를 들고 있으며, 이는 고구려 벽화의 해신과 달신이 하늘을 대변하는 해와 달을 들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사진 6, 우측사진). 또한, 고구려 벽화의 해신과 달신은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날개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신화의 복희 및 여와의 모습과는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다. 고구려 벽화의 해신과 달신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묘사한 듯한 몸 형태와 그들 주변에 그려진 배경 묘사를 함께 보면, 그들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러한 묘사는 반인반수의 몸 형상을 통해 인간을 초월한 특수한 능력, 즉 해와 달을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몸의 변형을 부가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날개옷을 통해 또 다른 특수한 능력, 즉 날 수 있는 능력을 그들이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삼국시대 미술에서 발견된 반인반수인 인면조와 해신 및 달신의 몸의 형체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연결하려는 근본적 사유가 기저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인간형 얼굴과 뱀의 몸은 땅의 성향을 반영하고, 그들의 날개와 날개옷은 하늘의 성향을 반영하며, 더불어 그들의 인간 얼굴은 그들이 인간의 능력으로 세계를 보고 들으며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재한다. 인간의 변형된 몸을 가진 반인반수인 그들은 하늘과 땅을 아우르며 인간과 연결되는 초자연적 존재였으며, 괴수 또는 해악을 끼치는 강탈자가 아닌 긍정적이며 신성한 영물(靈物) 또는 신의 존재였다. 앞서 단군신화와 관련하여 언급한 하늘을 숭배했던 고대 한국의 종교적 믿음은 삼국시대의 인면조와 해신, 달신의 반인반수의 몸 형태에 어떠한 연결성을 가지고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칼럼에서 고대 한국의 미술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 글을 위해서 주요 참고문헌은 ‘정재서, <산해경과 한국문화>, 서울: 민음사, 2019.’, ‘산해경, 정재서 역주, 서울: 민음사, 2021.’를 사용하였으며, 산해경 번역 또한 정재서의 번역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