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인가?
완벽한 집 S.O.S.(Smallest Occupiable Shelter,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 2024
아트선재센터 더 그라운드 공간에 들어서면, 벽면에 가득한 서도호의 메모를 마주한다. 발명가의 아이디어 노트처럼 그림과 글자가 빼곡히 들어선 메모를 한참 들여다보다, 뒤편의 영상물로 시선을 돌린다. 영상 속 서도호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보이는 남성은 구형 기구 안에서 생활하며 각종 드라마틱한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는다. 영상은 ‘완벽한 집’이라는 서도호의 가상 공간 중 하나를 그린다.
서도호는 반투명한 색색깔의 직물을 이용해 한국, 뉴욕, 런던 등에서 실제로 거주했던 건물을 1:1 크기로 재현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집’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영상,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현되며,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공간이 상호작용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한다. 서도호는 왜 ‘집’에 주목하는가?
처음엔 제일 작은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옷입니다. 사람 몸이 빠져나간 옷이 바로 그 사람을 정의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걸 확대시키다 보면 건축이 됩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침실 등 친밀한 공간에서 출발하다 보면 집 전체를 다루게 됩니다. 권근영, 『나는 예술가다』, 세미콜론 (2011), 181. 1)
서도호는 사람의 피부에 가장 밀접한 옷에서 시작해 그 틈새를 점차 벌린다. 그렇게 옷은 방이, 건물이, 사회가 된다. 나아가 그는 불교의 수행과 자신의 작업을 연결한다.
불교에서 참선하는 궁극의 목적은 자신의 본 모습을 찾는 거라 했습니다. 거기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마음의 거울을 닦아라’입니다. ‘거울이 깨끗이 닦이면 너의 참모습이 보일 거다.’ 그게 수행정진입니다. 재미있는 건 거울을 열심히 닦으면 보이는 건 제 자신이 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접니다. 권근영, 『나는 예술가다』, 세미콜론 (2011), 186-187. 2)
나의 진정한 모습, ‘나’라는 정체성은 독자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는 내가 관계 맺는 공동체, 사회, 공간과 더불어 형성된다. 그리고 서도호는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이 남기는 삶의 흔적들을 포착한다.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 2018, 28분 34초
스페이스 2에서는 두 영상 작업,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와 <동인아파트>(2022)를 상영한다. 영상은 철거 직전의 아파트 건물 속 입주민들의 집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담았다. 각기 다른 인테리어를 통해 입주민의 다양한 취향, 문화, 삶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으며, ‘집’은 마치 사람과 관계 맺으며 개성과 생명을 가지게 된 유기체처럼 그려진다. 입주민이 떠난 자리, 삶의 흔적만을 가득 품은 집은 철거라는 쓸쓸한 죽음을 앞두고 있다. ‘집(home)’의 개념은 다른 보금자리에서 반복되겠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과 기억은 주체가 부재한 공간에 남아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고 소멸한다.
연결하는 집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 2024
서도호는 1994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낯선 문화를 접했던 이주의 경험을 ‘문화 전이(Cultural Displacement)’라고 설명했는데, 자신에게 있어 한국과 타문화의 만남이 급격한 충돌보다는 서서히 이루어진 전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연결하는 집, 런던>(2018)은 이러한 문화 전이의 과정을 다루었다. 이는 런던 웜우드 스트리트(Wormwood Street) 육교에 한옥이 박힌 형태의 공공 설치 작업으로, 2018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유지되었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2024)은 실제 설치 작품을 축소한 3D 모형이다. 서도호는 자신이 겪은 개인적인 이주의 경험을 투영하는 한편, 한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과 런던의 현대 도시의 부딪힘을 형상화해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과 시간의 축이 접목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서도호의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거나, 특정 장소를 내세워 사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면을 지닌다.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온 관람객들과 조우하며 변화하게 된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에서 관람객이 서도호의 사색적 작업을 통해, 마찬가지로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관계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아트선재센터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리플렛 권근영, 『나는 예술가다』, 세미콜론 (2011), 181. 권근영, 『나는 예술가다』, 세미콜론 (2011), 186-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