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표면의 약 71퍼센트는 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물은 생명의 중요한 원천이며, 문명과 도시가 발전하는 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물일 것이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런던은 템즈강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중국 문명은 황하를 중심으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발전했다. 물은 수 많은 이야기들의 발생지 이기도 하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피어났다.
필자의 이야기를 하자면, 2003년 여름에 시작되었던 청계천 복원을 기억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청계천은 청계고가도로로 덮여 있었다. 고가도로를 지을 당시 물길 위에 뚜껑을 덮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노후화된 청계고가는, 오염물질들이 쌓이면서 내부에 메탄 가스가 가득 차 터질 위험이 있었던 곳이었다.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여러 방편이 나오고 있었던 때 청계천 복원이 결정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을 두고 인공 하천, 난개발이라는 비판도 많이 나왔지만, 20대 초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나에게 기억나는 것은 조금 더 소소한 것들이다. 복원된 청계천을 거닐다가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더운 여름날 알딸딸한 정신으로 물고기를 사냥하는 왜가리를 지켜봤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던 하천이 다시 돌아왔을 때, 과거와의 기묘하고 설명할 수 없는 연결감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한참 후 영국에 살며 런던에서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줄기들이 덮이거나, 다른곳으로 방향이 틀어지거나,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강과 함께 잊혀진 이야기들의 귀함을 인지하는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강을 복원하거나 예술적 투자를 이뤄내었고, ‘잊혀진 물’도 그 중 하나이다. 런던 뱅크 지역에 위치했으나 없어진 강줄기 중 하나인 월브룩(Walbrook)은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도시 증축을 위해 덮어버려 지금은 지하로 흐르고있다*. 스페인 작가인 크리스티나 이글레시아스 (Christina Iglesias)는 ‘잊혀진 물 (2017)’ 이라는 공공미술 작업을 통해 월브룩 강의 조각을 복원했다 (실질적인 의미의 복원은 아니며 은유적 해석이지만). 실제 월브룩 강의 경로에 가까운 위치에 설치된 이 작업은 강의 역사적 의미를 활성화한다. 청동으로 주조된 작업은 해안선과 다양한 물 흐름, 웅덩이 등을 형성하는 층을 만들어 내는데, 시각적으로도 훌륭하며 역사적 가치 또한 높다.
'Forgotten Streams' by Cristina Iglesias, Bloomberg HQ, Cannon Street. Copyright: Loz Pycock
크리스티나의 작업이 사라진 물을 다시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초대했다면, 템즈강의 런던 동남쪽 지류를 따라 만들어진 ‘더 라인 (The Line)’은 런던 최초 공공예술 산책길로써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강과 지역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강을 따라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을 설치했고, 더불어 그 지역과 강에 연관된 역사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지역의 야생 동물과 지역 유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강가 곳곳에 곁들여진 길이다. 2014년에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었으며,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통해 8주동안 14만 파운드 (한화 약 2억3천만원) 이상을 모금했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의 염원이 반영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런던의 가장 전략적인 재개발 지역 두 곳을 강변 길과 예술을 통해 연결하여 지역 방문 활성화를 꾀한 프로젝트로, 초대 프로젝트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 토마스 프라이스(Thomas Price)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현재 더 라인의 프로그래밍은 큐레이션 고문인 아트와이즈의 지원을 받아 내부적으로 기획되고 있다고 한다*).

'A Slice of Reality' by Richard Wilson
한강이 없는 서울이나 템즈강이 없는 런던을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에 살 때도, 그리고 지금도 중요한 생각을 가다듬을 때면 강가를 거닐면서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곤 한다. 물은 항상 고고하다. 도시개발등을 이유로 막히고 물길이 틀어져도 불평없이 조용히 다른 곳으로 흐르면 그 뿐이다. 바쁜 삶에서 필요에 의해 강을 잊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강을 다시 찾는다.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근처의 강이나 바다를 거닐었으면 좋겠다. 흐르는 물을 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다. 위에 소개한 작업들처럼 물과 관련된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