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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의 재현의 문제 | ARTLECTURE

예술에서의 재현의 문제


/Insight/
by 손현지
Tag : #뮤지컬, #연극, #재현
예술에서의 재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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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재현 논쟁’에서 유미주의는 사실상 우회로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유미주의의 채택은 논쟁을 회피하는 손쉬운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섣불리 유미주의의 손을 들어주기에 앞서,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하루를 거시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24년,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충격적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들을 변호하던 변호사가 법정에서 한 말이다. 단지 ‘완전범죄에 성공하기 위해’ 아이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리차드 로엡과 네이슨 레오폴드. 그들은 거물급 변호사인 클라렌스 대로우의 변호로 사형을 면하고 종신+99년형에 처한다. 로엡과 레오폴드가 17살에 대학을 졸업하는 등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였음이 알려지면서 그들의 범죄는 많은 창작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스테판 돌기노프의 뮤지컬 <쓰릴 미>다.



뮤지컬 <쓰릴 미> 포스터.




문제는 이러한 범죄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적절하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실제 사건의 재현’은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대체성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한 사건을 예술로 재현함에 따라 그 사건은 제2의 이미지로 대체된다. 엄연히 실존했던 공간과 상황, 참혹한 순간들이 아예 다른 -특히 허구의- 이미지로 대체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홀로코스트 사건을 다룬 수많은 영화/연극들이 도마에 오르게 된다.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수용소가 실존하고 피해자들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다른 하나의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반대의 관점도 있는데, 실존하는 사건을 예술 작품으로 재현하는 일은 후대인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입장이 가진 설득력은 다소 한정적인데, 바로 작품이 사건을 ‘적절한’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뮤지컬 <쓰릴 미>의 경우에는 이러한 주장의 변호를 받을 수 없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할 뿐, 이 사건에 대한 일말의 경계심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쯤 오면 자연스럽게 유미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예술은 예술일 뿐, 사회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 바로 유미주의다. 유미주의의 입장에 선다면 그 어떤 작품도 윤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일 수 없다. 그저 예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현 논쟁’에서 유미주의는 사실상 우회로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유미주의의 채택은 논쟁을 회피하는 손쉬운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섣불리 유미주의의 손을 들어주기에 앞서,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하루를 거시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한 뒤 100년 전 누군가가 무참히 살해된 사건을 재현한 장면으로 유흥을 즐긴 뒤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정말 괜찮은가 하는 것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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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