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전시 리뷰는 전시를 준비한 기획자이자 전시의 첫 번째 관객 입장에서 쓴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2020년 5월, 코로나가 시작되고 침체되었던 미술계의 큰 이슈 중에 하나는 국내 생존작가인 김보희작가의 개인전에 길게 늘어선 입장객 줄이었다. ‘한국의 호크니’라 불리며 20대에서 70대를 아우르는 관람객층을 동원한 김보희작가의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구상작품으로 현대미술의 난해함 속에서 어려움을 겪던 일반 관람객의 갈증을 해소해 준 것이라 평가됐다. 그런 김보희작가의 개인전이 1년 만에 캔 파운데이션에서 다시 진행되었다.

조그만 한옥공간과 2층으로 나누어진 화이트 큐브 형태의 스페이스 캔 두곳에서 진행되는 이번 김보희작가의 전시는 미공개 작품과 함께 5m가 넘는 작가의 신작이 함께 공개되었다. 김보희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생각되는 강렬한 색감과 대비되는 와 시리즈는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가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먹과 한지로만 이루어진 수묵화이다. 제주도에 완전히 정착하기 이전인 2000년도 중반 남해 여행 중 배를 타고 바라본 섬의 형상을 작가의 방식으로 표현한 큐브형태의 작품들은 섬을 바라본 작가의 다면적 시선을 위, 아래, 좌, 우로 담아냈다. 버려지고 소외된 사물이나 풍경에 집중하는 작가는 물안개 낀 바다위의 섬들이 홀로 외로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말한다.

블랙과 화이트의 수묵화를 지나 만나는 김보희작가의 바다시리즈는 어느덧 제주도 이주 20주년을 바라보는 작가의 제주 사랑이 돋보인다. 계절과 지형, 작가 스스로 나이듬에 따라 다르게 비추어내는 제주 바다의 색을 작가는 꼼꼼히도 꾸준히 작품으로 담아냈다. 바다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유화나 아크릴로 두껍게 쌓아 올리는 서양화와는 달리 캔버스나 한지에 분채와 물, 아교를 섞어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차곡차곡 색을 쌓아 올리는 한국화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작가는 색을 바르고 말려 다시 칠하는 수 없이 반복되는 과정이 색의 깊이로 표현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신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하늘과 바다에 대한 기도라고 이야기한다.

장소를 이동해 스페이스 캔으로 이동하면 작품에서 작가의 시선의 변화를 가장 먼저 확인 할 수 있다. 계단과 계단 사이, 위로 높이 솟은 긴 벽면을 따라 놓인 작품은 달을 바라봤을 작가의 높이에서의 시선을 표현했다. 달이 머리위로 떠오르는 밤,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달은 수평선 위에 놓인 작은 섬, 깊고 푸른 바다와 같이 지평선을 기준으로 머무른 작가의 시선이 어느새 머리위로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변화된 또 하나의 작품 특징이다.
작가의 작업에 주는 많은 영향 중 김보희작가는 거주지 이전과 작업실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2000년 중반을 기점으로 김보희작가의 작업에는 제주의 풍경과 함께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시선의 내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이스 캔 2층 전면을 메우는 신작 역시 그런 시선의 내부화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려낸 작품은 정원에 피어난 식물들과 함께 지금까지는 작가가 잘 표현하지 않던 하늘의 구름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화가로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과 작품을 감상하는 대중이 그때의 작가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작가는 더이상 작품 소재로의 대상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작품의 대상을 발견한다. 비슷한 듯 하지만 큰 차이를 갖는 이 같은 작업 태도는 일상이 작품의 소재가 되므로 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의 확장성을 가져온다. 이번 작가의 신작에 등장하는 구름이 그 증표가 된다. 작품의 대상으로서 풍경을 한정했다면 작품 속 구름은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맞지 않아 자체 검열됐을 존재였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낀 감정의 표현으로서 등장한 구름은 대지의 시작을 알리는 5월,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여린 잎의 사이로 몽글하게 피어남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안겨준다. 이번 전시명이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인 이유도 바로 작가가 바라본 감성과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사이의 간극이 한 곳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 감성을 전달하는 것. 우리가 미술을 볼 때 잊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김보희작가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