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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더미 | ARTLECTURE

창과 더미

-정재호(Jaeho Jung) 개인전-

/News, Issue & Events/
by 김성희
창과 더미
-정재호(Jaeho Jung)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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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정재호가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산업화에 가려진 서민들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애환이 담겨 있다. 신화와 같은 고도의 성장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진 건물과 풍경들은 무명으로 존재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작가는 이러한 현상들을 포착했다....

상업화랑은 2020년을 마감하는 전시로 정재호(Jaeho Jung, b. 1971)창과 더미를 개최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도시의 오래된 아파트와 건축물을 대상화하는 작업으로 지난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올해의 작가전시로 익숙한 작가이다. 작가는 도시의 낡은 건축물과 아파트가 폐허처럼 남겨진 풍경에서 한국 현대사의 파편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왔다. 정재호가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산업화에 가려진 서민들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애환이 담겨 있다. 신화와 같은 고도의 성장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진 건물과 풍경들은 무명으로 존재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작가는 이러한 현상들을 포착했다. 이번에 상업화랑에서 소개하는 24점의 신작들은 세운상가를 가운데에 두고 종로에서 청계천을 거쳐 을지로에 이르는 풍경으로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재개발로 세운 몇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되어 급하게 헐려 나간 지역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밀집해 있던 집들은 지붕이 걷어내 지는가 싶더니 벽이 뜯기고 이내 작은 언덕들이 되었다. 세운 3구역이 완전히 철거되고 공터가 된 것은 2019년 겨울로 작가는 이 모습들을 유화를 사용하여 표현했다.





 

지금까지 정재호의 작품은 동양화로 분류되어, 한지 위에 물감으로 그렸다면 이번 상업화랑 개인전에서는 유화와 캔버스를 사용하여 이전과는 다른 건물과 풍경의 색과 질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재료가 바뀌니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전과 다르다며 장지에 물감을 쌓는 과정이 전체에서 부분들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었다면, 유화는 부분의 집적을 통해 전체를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동양화가 실루엣을 잡아 나가는 상태에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대상을 표현한다면, 유화는 붓질 하나하나가 즉시 어떤 물질이 되어 벽돌 혹은 시멘트의 질감을 조금 더 와닿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라고 설명한다. 상업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 소개되는 4호에서 100호에 이르는 24점의 크고 작은 캔버스에 구성된 유화 페인팅은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기록들로 곧 사라져버릴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김학량 작가는 정재호 작가를 20세기 한국 수묵화(지필묵 그림)의 역사를 통틀어 1950년대의 이응노 다음으로 지필묵이라는 전통회화의 매체를 쓰면서도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제 안에서 동시대 예술가로서 감각을 익히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통해 도시와 도시 삶이라는 늪에 뛰어든 첫 화가라고 극찬했다.(1) 아마도, 정재호가 회화라는 매체에 의해 전환되는 분위기, 아우라, 메세지와 같은 요소들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현재 동시대에 유행하는 담론이나 동시대성에 호소하며, 동시대성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어떠한 특정 논의들을 쫓아가지도 않고, 그저, ‘회화성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2) 특히, 이번에 신작들을 그려내며 작가는 회화라는 것과 미술이라는 것을 괄호 안에 넣어두고 풍경 속의 것들을 듣고, 보고, 만지려는 태도로 그려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물체들에 형태와 색, 질감을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풍경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흡사 건축의 과정과 닮아있으며 풍경과의 거리감을 해체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건축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마음으로 사물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말한다.




 

가시적인 대상, 건물과 풍경을 충실히 그리며 그 대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은 그가 꾸준히 고수해온 태도이다. 작가는 대상을 충실하게 그려내기 위해 화가의 주체적 관점을 배제하고, 정면의 구도로 건물을 그려오는 것을 고수했다. 정면성은 화가(주체)의 시선에서 대상을 파악하고, 그 대상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마주하기 위해 선택한 구도이다. 정면성에는 정재호 작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그 의지는 초기 작업에서부터 꾸준히 지켜온 것인데, 대상을 파악하는 화가의 시점보다는 대상의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다. 이번 상업화랑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대상의 정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상의 현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옮겨간다.

 

전시의 제목인창과 더미는 전시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풍경은 세운상가에서 망원렌즈로 을지로 뒤편을 찍은 사진을 잘라내어 편집한 장면이다. 앞부분에 있는 각목과 그 뒤에 있는 옥상 난간(더미가 있는 부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건물 사이는 몇 십 미터씩 떨어져 있지만, 풍경을 당겨 찍다 보니 한 장면에 뭉쳐져 나오게 되었고 작가는 사진을 자르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각목이 사선으로 사진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져 그림으로 그리다가 뒷부분에 있는 더미들을 발견했다. 작가는 이 그림의 가장 결정적인 두 가지 요소는 저 각목과 더미다.”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문득 뾰족하게 잘라져 있는 각목의 끝을 보며 을 연상했고, 그렇게 그림 제목이 <창과 더미>로 지어졌다.


이 그림 제목이 전시 제목이 된것은 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다. 철거가 이루어지면서 슬레이트 지붕이 헐리면 나무 골조 같은 것들이 드러나고, 부러지면서 굉장히 날카로운 풍경이 드러내는데, 작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저항의 의미로 다가왔다. 또한, 철거 과정에서는 수많은 더미들이 생기게 되는데 작가는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건물이 헐리면 낮은 언덕 같은 것들로 쌓아 놓게 되는 모습을 보며 더미의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정재호의 신작들은 헐어지고, 부서지며,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기 시작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풍경을 전장의 주검으로 이미지를 해석한다.


서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청계천 일대의 철거와 개발은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마도, 현재에 우리가 간직한 서울에 대한 이야기가 축소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워질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렇게 변해가는 청계천 일대와 을지로를 포착했다.


상업화랑 전시장 입구에는 <붉은 벽돌 허리가 있는 집,(A house with a Red Brick Waist)>(2020)을 시작으로 전시장의 특징인 날것 그대로의 합판벽면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와 풍경의 그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장 위층에서는 앞서 설명한 <창과 더미(Spears and heap)> 시리즈를 관람할 수 있다. 작가가 마주한 철거의 풍경 속에는 버려진 더미들과 철거된 건물에 남아있는 각목들이 처럼 위로 솟아 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을지로의 옛 건물에 위치한 상업화랑 공간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조금은 쓸쓸한 모습을 자아내며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2020년의 풍경과도 닮아 있다.






 (1)김학량, 「지필묵, 근대, 몸」, 2018

 (2)심소미(독립큐레이터),「녹슨 세계의 리얼리티 : 동시대와 겨루는 그리기」,2018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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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희_현재상업화랑 을지로 문래에서 전시기획을하며 사회현상과 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소소한 글을 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