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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https://www.koreafilm.or.kr/kofa/publication/dvds/PB_0000000083
0. 들어가며
영화 <병정님>은 우람한 근육의 상반신을 드러낸 남성 동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상 위로 이 영화가‘조선군보도부 작품’임이 명시가 되고, 이후 굵고 강한 서체로 영화 제목 ‘병정님’이 화면을 꽉 채워 떠오른다. 시청각적으로 용맹스럽고 강인한 남성성을 부각하는 첫 화면은 본격적인 서사에 들어가기전부터 노골적이고 전면적이다. 영화는 텍스트로 친절히 설명해주기까지 한다: ‘이 작품의 목적은 군생활에 충만한 대범한 여유와 성실한 인간성을 통해 엄격한 훈련과 가정적인 내무생활을 함께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병정님>의 광고 (<경성일보> 6월 20일자 광고) “부디 이 영화를 통해 군대의 지식을 얻어주세요!” 문구가 직접적으로 말해주듯이[1], 이 영화는 군대라는 미지의 집단과 질서, 공간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지식’이라는 말로 가장한 ‘환상’을 심어주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잠재적 병력인 조선인 청년만을 프로파간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청년들을 군대로 보내는데 협력해야 할 가족 역시 이들에게 중요한 대상이었으며, 그중 청년의 ‘어머니’는 이 영화가 가장 공들인 주체였다. 본 발제문은 영화<병정님>을 총동원체제 하에 제국이 호명하는 ‘어머니’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여기에는 식민제국이 피식민지인들의 ‘국민됨’을 꾀할 때 차등화되는 성별 구분과 그로 인해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표상의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
1. 불안의 주체 / 설득의 대상
<병정님>의 서사는 군대에 입대하는 조선인 집에 발송된 편지를 받아보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 ‘놀라운’ 편지는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보낸 것이다. 그런데 편지의 수신인은 입대하게 되는 청년도, 가장인 부친도 아닌 바로 아들들의 어머니이다. 편지를 받아본 어머니들은 놀라움과 함께 불안이 점철된 얼굴로 이를 받아 든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드디어 아들과 형제를 폐하의 병사로 입대시키게 되는 귀 가문의 영예에 본인은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금번에 입대하여 엄격한 규율 하에 훈련을 받아서 입대 전과는 현격하게 다른 훌륭한 병사로 거듭나기 위해 부모들은 … (편지를 읽던 젠키의 여동생은 읽기를 멈추고 엄마를 잠시 바라본다)* …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누이의 따뜻한 격려가 떠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사를 건 순간 용사의 눈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는 세 여자)*[2]
편지의 본문을 관객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는 인물들은 첫번째로 소개되는 히라마쓰 젠키의 가족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자개장과 서양식 테이블과 전축 등을 갖춘 이들은 한눈에도 경성의 부유한 가문임을 알 수 있다. 편지는 어머니의 안방에서 어머니와 젠키의 연인 사이준, 여동생이 둘러 앉은 상황에서 여동생이 읽는다. 어머니는 총독의 편지를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여기지만, 편지가 상기시키는 군입대와 전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또한 느낀다. 편지를 읽다 말고 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숙연해진다. 젠키의 어머니는 인사를 올리는 아들 앞에서만은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에이치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야스모토 에이치는 농촌 가문의 장남이다. 에이치의 어머니는 아들이 패어놓은 장작을 땔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다. 입대하는 아들에게 약을 챙겨주려 서랍을 뒤지는 그녀는 걱정 말라는 아들의 말에도 ‘몸조심하고 아프지 말아라’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본다. 가끔씩 소식을 알려달라는 말을 건넬 때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다.
영화 <병정님>에서 어머니는 군입대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감을 느끼는 유일한 주체이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에이치)와 큰형(젠키), 입대 당사자인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군입대를 선택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이자 ‘영광’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성적인 판단과 별개로 고된 훈련에 대한 걱정과 이별의 슬픔, 참전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소유하고 표현하는 정동적 주체들은 군인의 ‘어머니’인 것이다. 실제로 지원병 제도가 시작될 당시 조선 여성들이 아들의 입대를 강하게 거부하거나, 입대를 한 아들을 보려고 훈련소 앞을 지키고 서 아들의 이름을 불러 대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들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3] 따라서 영화의 첫 사건으로 총독의 편지가 발송되고 편지의 수신자가 조선의 어머니라는 설정은 철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어머니는 편지를 통해, 영화 밖 어머니들은 바로 이 영화를 통해 ‘조선의 어머니’로 호명되게 된다. 총독의 편지가 조선의 아들이 제국의 훌륭한 병사로 거듭나기 위해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가 중요하다고 말로써 호소했다면, 영화 <병정님>은 편안하고 행복한 병영 생활을 사실적으로 (라고 믿게끔) 보여줌으로써 설득시키는 것이다.
2. 프로파간다 영화: 단순한 서사와 사실적 연출
영화 <병정님>은 철저한 프로파간다 영화이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통제를 받는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발족하고, 자매회사인 조선영화배급사와 통합하여 1944년 조선영화사로 재탄생 하는데, 방한준은 이곳 소속으로 조선군보도부에서 제작한 <병정님>의 연출을 맡는다. <병정님>은 조선군보도부가 <너와 나>(1941) 이후 제작한 두번째 장편 극 영화로, 조선영화사 스탭과 배우들을 제작중대로 편성하여 제작했다. 1944년은 일본의 총력전이 시작되면서 식민지인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징병제가 시행되었던 때로, 조선인들의 불안과 거부감을 해소하고 입대 지원을 활성화해야 할 필요가 나날이 증대하고 있었다. 영화 각본은 니시키 모토사다에 의해 쓰여졌으며 조선인이었던 방한준이 연출을 맡았지만 각본의 대사와 지문이 거의 충실하게 옮겨졌다.[4] 이는 조선군보도부의 기획 하에 엄격한 심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각본으로 그들의 목표와 의도가 온전히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영화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다. <병정님>은 히라마쓰 젠키와 야스모토 에이치를 중심으로 학도 지원병에 입소하여 지내는 병영생활을 보여준다. 이들의 가족이 총독의 편지를 받고 이별의 소회를 나눈 후 영화는 군악대의 뒤를 따라 입대하는 조선 청년들의 다부진 행진을 보여준다. 거리 양편으로 일장기를 흔들며 이들의 ‘군인됨’을 축하하는 인파들이 있다. 요시무라 부대에 입소한 그들은 신체 검사를 받고, 내무반에 입사해 관급품을 배포받으며 빳빳한 새 군복을 입게 된다. 군복으로 환복한 이들은 그 순간부터 ‘황군의 병사’가 되었다고 말해지고 일렬로 정렬한 병사들에게 부대장은 “군대는 제군들과 농촌 청년들을 동등하게 폐하의 적자로서 맞을 것이며 둘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고 훈시한다. 군대는 “진정한 국민으로 제군들을 연성하는 최고의 장소”이다.
영화는 문자 그대로 군부대를 “최고의 장소”로 보여준다. 규율과 훈련이 존재하는 군대일 지라도 후한 복지와 인자한 반장, 따뜻한 전우애가 있는 곳이다. 주인공이 속한 제3내무반의 반장 사와라 하사는 홀어머니가 있거나 출산을 앞둔 등의 이등병 개개인의 가정사를 걱정해주고, ‘집에선 이렇게 못 먹는’ 훌륭한 식사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라’고 염려한다. 요리를 하는 주방, 물품판매소, 면회실, 목욕탕 등 군대 내 모든 시설은 청결하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된다. 부대의 전경은 경쾌한 음악과 배치되면서 근대적이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이미지화된다. 그곳에 속한 조선인 군인들은 선진화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제국에 걸맞는 교양과 정신을 갖춰가는 듯 그려진다. 병영이 마치 훈육이 이루어지는 제2의 유사 가정이 되는 것이다. 이화진은 <병정님>의 병영이 군인의 가정으로 자리매김하며 가정과 국가가 결속하는 장소로 설정된다고 분석했다[5].
철저히 기획된 각본에 충실하게 제작된 영화라 할 지라도 여기에는 연출가의 스타일이 공모한 바 또한 있다. 연출가였던 방한준 감독에 대한 분석은 그의 작품세계를 조선의 로컬적 특징을 살린 1930년대 작품-<살수차>(1935), <한강>(1938), <성황당>(1939)-과 일본 국책에 협력하면서 만든 1940년대 작품-<승리의 뜰>(1940), <풍년가>(1942), <거경전>(1944), <병정님>(1944)-으로 구분한다. ‘잔잔하고 관조적인 인물의 대상화 및 자연 풍경 속 인간의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이미지화’는 30년대 작품에 나타나는 그의 두드러진 연출 스타일이다.[6] 그러나 이 리얼리즘의 스타일은 <병정님>에서도 구현되며, 오히려 고도로 정치화된 영화의 목적과 결탁하여 새로운 효과를 창출해내는 듯 보여진다. 이 영화는 ‘세미다큐멘터리(semi-documentary)’로 일컬어진다. 반기록영화로도 불리우는 이 장르는 2차 대전 중 부상한 장르로, 실제적 사건과 상황에 기반하되 극적인 연출이나 허구적 서사를 부여하여 다큐멘터리적 성격과 극영화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그러나 촬영에서 기록과 연출을 명쾌하게 구분 짓기 어려운 것처럼 그 결과물의 사실성과 허구성 또한 애매모호하게 중첩되어 있다. <병정님>의 경우 조선인 징병제와 훈련소라는 커다란 설정만이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데, 빈약한 사실적 디테일들은 연출 기법의 효과로 보완된 듯 하다.
쇼트의 단절 없이 롱테이크로 찍는 긴 호흡과 카메라의 침착함은 병영 생활이 극적 연출의 대상이라기보다 사실에 가까운 기록으로 여겨지게 한다. 훈련 중인 모습을 담은 장면에는 부대와 인접한 인가와 산의 전경을 포함함으로써, 그곳이 물리적으로 고립되지 않았고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담아내는 미장센과 차분하고 여유로운 카메라의 이동과 편집 기법은 프로파간다 영화에서 더 특별하게 작동되었다. 특히 연출의 서정성은 반장을 만나러 에이치의 부모가 부대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르는 듯 보이는데, 부대 내 핀 벚꽃에 감탄하고 그 아래를 거닐며 쉬는 모습에서는 훈련을 위한 부대가 아닌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명소처럼 비춰진다. 이 장면에서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은 상대적으로 짧고 많은 쇼트 분할로 공연의 활기와 에너지를 담고 있어, 군복을 입은 장병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장면은 지역의 흥겨운 축제처럼 착각할 정도이다. 위문공연 장면에는 당시 동아시아의 유명 스타들이 총동원되었는데-조선의 손꼽히는 소프라노 마금희, 일본의 유명 테너 히라마 분주, 아이돌 리샹란, 무용수 조택원 등-, 이는 조선군보도부의 첫번째 국책영화 <그대와 나>와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프로파간다를 제작하는 방식이었다.[7]
3. 영화 속 어머니의 표상
영화가 말하려는 ‘군대는 좋은 곳’이라는 메시지는 어머니를 중요한 수신자로 삼고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영화에서는 여성/어머니에 대한 차별적인 배치가 드러난다. 에이치의 입대를 축하하는 마을의 성대한 환송회에는 모두 남성만이 앉아있다. 여성들은 이들이 모여 앉은 상에 음식을 나르고 수발을 드는 행위로써 이 장면에 등장할 뿐이다. 마을의 한 어른은 그렇게 음식을 나르는 에이치의 어머니에게 ‘총독의 편지를 받았다면서요?’하고 말을 건네지만 남편이 그 편지에 ‘아버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다며 발언을 빼앗는다. 또한 아버지의 문안 겸 고향을 방문한 에이치가 예비 장병들의 ‘부모’를 다 모아달라고 한 설명회에서도 청중 속에 ‘어머니’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은연 중에 제국의 군인과 국민되기의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영광/축복을 누릴만한 자격으로 ‘남성’만을 상정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자 어머니는 합리적인 설명으로 납득시킬 수 있는 설명회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문화적인 서술과 감정적 자극으로 호소하는 영화의 관객으로만 상상 되었다는 것을 은연 중에 폭로한 셈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근대 총력전 속에 이루어진 ‘국민화 프로젝트’의 목표가 국가의 전역화에 있었고 이는 사회와 가정의 ‘국가화’를 추동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분리형 젠더 전략에 기반하여 남녀가 차별화된 영역에서 국민화가 이루어진다. 남성은 국가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되어 전방으로 나가고 여성은 후방에서 출산(재생산)과 노동(생산)에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는 집 안과 밖으로 나뉘었던 성별의 역할 분업이 총력전 속에서 국가 차원으로까지 확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을 위해 전근대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근대적이고 능동적인 국민으로 호명된 여성들은 실상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정박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국가가 관리하는 가정과 모성의 ‘신성성’은 암묵적으로 정조의 관리도 연루되어 있었고, 모성의 반대극에는 위안부의 ‘창부성’이 있었다고 우에노는 지적하고 있다. 병력과 노동력의 부족으로 총동원 체제하의 여성 정책은 미묘한 변화를 거쳤지만, 본질적으로 전쟁과 노동, 가정 영역에서의 젠더 분리는 유지되었으며, 무엇보다 ‘병사의 남성으로서의 자기 정의’를 수호하는 한계 내에서 실시되었다. 우에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시 국내외 사회주의, 페미니즘, 종교 단체 등 다양한 사상들이 계급과 국가의 한계적 정의를 초월했을 지라도 ‘젠더’는 초월해지 못했음을 <<내셔널리즘과 젠더>>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같이 <병정님>에서는 군인으로 병력화 될 조선 남성을 지원하는 모성으로써의 어머니가 그려질 뿐이다. 이전 수업에서 다룬 <지원병>, <군용열차>, <조선해협> 영화에서는 미혼 남녀의 연애가 이야기의 주요 맥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전통과 여성성을 담지한 표상으로서의 여성 인물이나 일본의 근대와 주체성을 선망화한 인물들도 형태만 다를 뿐 납작하게 대상화되었다. 백문임은 식민지 말기 선전 극영화에 그려진 조선 여성들이 ‘제국의 호명’에 불화하고 상징체계 외부에서 조선 남성의 주체화 과정에서 배제된 가치와 그로 인한 불안과 동요를 표상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8]. <병정님>에서는 젠키와 사이준이 호감을 가진 관계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사이준은 젠키의 가족-여동생-의 적극적인 매개에 의해서만 함께하게 된다. 이는 그녀를 근대적 자유연애의 주체라기보다 가족의 장으로 포섭될 예비적 가족 구성원처럼 수동적인 행위자로 그려낸다. 이전 영화들에서 조선 여성이 침묵하거나 탈육체화된 목소리들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면 <병정님>은 조선 여성을 오로지 어머니로 설정하거나 어머니로 수렴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여성을 억압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구분에서 나아가 이 영화는 젠더 내 계급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9]. 영화 첫 장면에서 편지를 받아 들고 아들과 이별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젠키와 에이치의 어머니의 간극은 영화 내내 변주되는 듯 보인다. 이는 에이치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는데, 아버지의 병환으로 에이치가 고향집에 내려가는 장면과 에이치의 부모가 아들에게 임시휴가를 내어준 반장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부대에 방문하는 장면이다. 에이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편지로 이 사실을 알린다. 걱정이 돼 찾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며 등을 돌린다. 남편은 아내에게는 쓸데 없는 짓을 했다며 노여워하고 어머니는 난처해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대견하고 반가워하는 기색을 숨길 수가 없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계기로 아들 에이치는 변모하게 되는데[10], 바로 마을 내 징병검사 전의 장병들과 부모들을 모아 군생활에 대한 홍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계몽가가 되어 ‘중대장님이 아버지, 준위님이 어머니, 소장님이 형, 반장님이 누나’라고 하며 가족적인 군대 분위기를 강조하고, 입대 전 인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뒤 닦는 법까지’ 배웠다며 군대가 근대적 군인이자 시민으로 거듭나는 공간이자 집단임을 설명한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뿐 만 아니라 영화 밖 관객들에게까지 그는 ‘영예로이 입대하고 부모님들도 안심하시고 소중한 아드님을 군대로 보내세요’라고 직접적으로 권유한다.
두번째 사건인 부대 방문에서 에이치의 어머니는 반장만 만나서 감사를 전하면 아들은 보지 않아도 서운할 거 없다는 남편과는 달리 아들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하며 두리번거린다. 병영 내 만발한 벚꽃과 위문공연에 ‘오길 잘 했다’며 감탄하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순박한 농촌 여성으로 보여진다. 반장의 배려로 에이치는 부모를 만나 부대를 구경시켜 드린다. 이들이 벤치에 앉아 쉬는 장면에서 어머니는 시골에서부터 싸온 보따리를 풀어 과일을 깎고 아들에게 먹으라고 쥐어주며 뿌듯해한다. 에이치의 아버지는 병영의 시설과 문화를 직접 확인했기에 ‘돌아가면 젊은이들에게 [군대에 지원하라고] 잘 얘기할 테다’라고 다짐하며, 아내에게 ‘안그래, 임자?’라고 되묻는다. 이때 카메라는 질문을 받은 어머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녀는 남편의 물음에 즉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앞에 늠름하게 서 있는 아들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는데, 그 눈빛은 하나의 감정으로 일원화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서린 듯 느껴진다. 그 순간, 그녀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한국어 자막은 앞서 ‘그래요’라고 떠오른다.[11] 인물의 음성 대답보다 선행하는 자막의 대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영화의 기술적 문제를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복합적인 어머니의 감정이 영화 상에서 이미 ‘그래요’라는 긍정의 대답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의 기묘한 어긋남이 일깨워준다. 제국은 피식민의 어머니상을 만들어놓았다. 식민제국의 부름에 응해야 할 어머니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대답은 그들의 계획보다 조금 지연될지언정, 결국 어머니에 의해 말해지거나 침묵하는 어머니들의 위로 덧씌워질 것이다. 에이치의 어머니가 명확한 ‘はい’가 아니라 마치 앓는 신음처럼 ‘에… 에…’ 라고 냈던 소리가 ‘그래요’라는 앞선 자막으로 의미가 확정되었던 것처럼. 그녀의 서글프고 애잔한 표정이 한순간 자랑스럽고 기특한 기색으로 변환된 것처럼.
4. 나가며
젠키와 에이치, 그리고 감초 역할의 마고토는 상급병으로 진급을 하며 기쁜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이들이 쓴 편지는 그 편지를 받아 읽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건강하고 편안한 병영생활을 알리는 이들의 편지는 총독의 편지에 이어 다시금 ‘조선의 어머니’를 설득하는 직접적인 목소리가 된다. 실전 훈련을 완수하고 ‘훌륭하고 어엿한’ 군인으로 인정받는 부대원들 중 일부는 야전으로 나가게 된다. 야전병으로 선발된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길게 행진하며 나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전장에 나가기 전 집으로 인사를 온 젠키에게 큰형이 전장에 나가 용감히 싸우는 것이 ‘제일 큰 효도’라고 하는 장면이나 어머니가 총독님이 보낸 편지를 ‘몇 백년을 살아도 만나지기 어려운 인연’이라고 말하는 장면, 이에 젠키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고 답하는 장면까지, 영화는 전선에 나가는 직전까지도 군인의 용맹과 이를 지지하는 모성을 찬양한다.
<병정님>은 식민제국의 기획 속에서 가정이 어떻게 ‘국가화’되는지, 또한 동시에 국가가 ‘가정’의 상징을 어떻게 전유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가정 속 어머니가 남성(남편/아들)과 국가라는 관계항들 속에서 요청되는 역할과 규율화되는 양상을 확인시켜준다. 이들을 ‘제국의 어머니’로 부르는 명명에는 일종의 결여가 있는게 아닐까. 우에노 치즈코가 지적했듯 제국 내에서 여성을 신화화된 모성으로 호명하는 기획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이 제국이 아닌 ‘피식민 조선의 어머니’로 호명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민감하여야 하지 않을까. 식민 본국이 남성성을 위해 차별적으로 여성성을 동원하고 설정했다면, 피식민의 여성성은 차별적 피라미드 저 하위에 놓여있을 테니 말이다. 이것이 발제자가 최정희의 <야국초>를 분석하며 최경희가 썼던 ‘제국의 어머니’ 대신 애써 ‘조선의 어머니’로 글을 시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자료영상(일부)
[1] 이화진(한국영화사 연구자)의<병정님> 작품해설: “식민지 청년은 어떻게 병사로 훈육되는가” (한국영상자료원 발굴된영화 <병정님> DVD 해설집) 참고.
[2] 이 장면에서 젠키의 여동생 데이키는 다소 기묘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신이 나서 총독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읽어주는 역할을 자처하나 부모의 격려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잠시 멈춰 어머니를 응시한다. 그녀는 또 편지를 끝까지 다 읽지 않고 ‘나중에 혼자서 읽어보세요’하며 어머니에게 건넨다. 여동생은 젠키의 아내이자 향후 어머니가 될, 수동적인 모습의 사이준과 대비되는 활기가 넘치고 능동적인 캐릭터이다. 이에발제자는 ‘조선의 어머니’로 호명하는 편지 읽기를 도중에중단하는 행위, 그 순간에 어머니를 응시하는 시선, 끝까지읽지않고 어머니에게 넘기는 일련의 모습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 다카시 후지타니, 이경훈 역 <<총력전제국의 인종주의>>(2019) 참고.
[4] 정종화. “극영화 <병정님> 발굴과정과 작품 소개” (한국영상자료원 발굴된 영화 <병정님> DVD 해설집)참고.
[5] 위 이화진 글 참고.
[6] 함충범, <방한준 감독의 영화 미학적 특징 연구: 1930년대 연출 작품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통해>, <<인문과학>>, (2013) 참고.
[7] 이혜진, <<제국의 아이돌:제국의 시대를 살아간 네 명의 여성 예술가>>(2020) 참고.
[8] 백문임, <“군인이 되세요”: 식민지말기 선전 극영화의 조선 여성들>, (2009) 참고.
[9] 영화에서 조선인 남성 내 계급의 문제도 드러난다. 가령, 젠키의 집은 경성이기 때문에 주말 외출마다 집을 방문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나, 농촌에서 부유한 집안이기 때문에 에이치의 가족이 마을에서 환송회나 설명회를 열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비해 시골 촌뜨기로 그려지는 마고토는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능력은 떨어지는 캐릭터이다. 그의 가족은 한번도 등장하지 못하며, 아내가 출산을 했는데도 그는서신으로나마 뒤늦게 소식을 접할 뿐이다. 다양한 출신의 조선인이 군입대를 하고 이들이 표면적으로는 동등한대우를 받았음은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겠지만, 시골 하층민들의 지원율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이들을 계몽하고훈련시켜야 하는 문제가 군대 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던 만큼 영화는 그들이 선호하는 지식층의 조신인을 중심인물로 설정했을 지 모른다.
[10] 이에 대한 해석은 상이할 수 있다. <병정님> 해설집에 수록된 ‘극영화 <병정님> 발굴과정과 작품 소개’에서 정종화(한국영상자료자료원 연구원)는 ‘그에게는술을 끊어 병이 난 아버지를 문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 국가에 봉사하는 지원병으로서그의 속 깊은 행동은 병영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설파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상에서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근심에 빠진 에이치와 그런 에이치에게 반장이 먼저 문안을 권유하여가게 되는 상황만을 보여줌으로써 에이치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닌 고향 방문이 어떤 목적으로 추동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선명하게보여주고 있지 않다.
[11] 한국영상자료원 발굴된 과거 세번째 DVD인 ‘병정님’(2009)으로 시청했음.
☆Donation:
글.송혜림_독립출판으로 두권의 책을 냈고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는 중. 우리에게 쉬이 들려지지 않는 목소리들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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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ght female artists who channel spirituality into their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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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llie Bly Makes the News: Watch an Animated Documentary About the Pioneering Journalist & Feminist Icon Nellie 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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