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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이지만 대치동이 아니다. | ARTLECTURE

대치동이지만 대치동이 아니다.

-현실의 장소와 이미지화된 장소의 경계에 서다.-

/Site-specific / Art-Space/
by 이경민
대치동이지만 대치동이 아니다.
-현실의 장소와 이미지화된 장소의 경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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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영화 <벌새>. 이 영화가 전하는 수많은 메시지 중 나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았던 것은 주인공의 감정에 따라 머무는 공간들이었다. 대화와 다툼 그리고 꾸짖음 같은 가족의 일상적 감정들이 오고 가는 거실과 부엌, 일탈을 공유하고 잠을 자며 누군가와 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은희(와 언니) 방이 있는 집의 공간. 단짝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서당, 문방구, 학교 옥상, 등굣길에 지나치는 재개발 대상지와 같은 밖의 공간. '1990년대의 대치동'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고 상상해보면 공간에 시대의 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복도식 아파트' , '재개발 현수막' , '거실과 부엌'


영화 <벌새>. 이 영화가 전하는 수많은 메시지 중 나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았던 것은 주인공의 감정에 따라 머무는 공간들이었다. 대화와 다툼 그리고 꾸짖음 같은 가족의 일상적 감정들이 오고 가는 거실과 부엌, 일탈을 공유하고 잠을 자며 누군가와 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은희(와 언니) 방이 있는 집의 공간. 단짝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서당, 문방구, 학교 옥상, 등굣길에 지나치는 재개발 대상지와 같은 밖의 공간. '1990년대의 대치동'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고 상상해보면 공간에 시대의 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벌새 리뷰: https://artlecture.com/article/1004

https://artlecture.com/article/962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화 속 재개발 지역은 도곡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복도식 아파트 - 집 안에서는 거실과 부엌 
학교 -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이에 산책로와 학교 가는 길에 재개발 구역 
아파트 상가 - 떡집 , 문방구 
서당 
새 서울병원 
봉봉이 설치되어 있던 곳
콜라텍
남자 친구와 100일이 되던 날 만났던 장소 
성수대교 / 성수대교 붕괴 위령자 탑



영화 속 촬영지

장소적 의미 찾기


영화 <벌새>의 촬영지들은 보통의 촬영지와는 다르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대치동>과의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치동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동네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재개발 구역>이 그런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로 보이는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만 이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영화에 등장했던 촬영지인 실제 장소에 대한 의미를 부여잡고 들여다보다 가능하다면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영화 <벌새>의 한 장면>



강남구 개포동 

개포택지개발지구가 본격적으로 조성된 시기는 1982~1984년이다. 정부가 강북 수요 분산과 서민 주거 안정 일환으로 택지지구를 개발, 강남을 대표하는 대표 아파트촌인 개포주공아파트(1~9단지·1만 6000여 가구)가 들어서게 됐다.




1980년대 개포주공아파트 단지 모습

*내용 출처:http://bitly.kr/kfu7wgkOu5




1) 개포주공아파트 (철거), 1982년 11월 준공

단짝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한 곳인 <청하 서당>




<영화 <벌새> 한 장면>



주인공 은희가 앉아 있는 계단과 서당이 있는 이곳의 실제 촬영지는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 단지 상가이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를 보면 반대 방향이긴 해도 영화 속 건물이 그대로 나온다.



<네이버 지도 거리 뷰>



또, 남자 친구와 100일이 된 기념으로 만났던 장소 또한 개포주공 아파트 단지 내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벌새> 한 장면>


<네이버 지도 거리뷰>



이 장면들에서 촬영 장소가 <개포주공아파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데에는 재건축 소식을 전해 듣고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더웠던 2018년 여름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파트를 떠났던 그때 이곳을 찾았다. 이주기간이 종료된 건 아니어서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빈집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람이 없는 빈자리를 채운 건 이삿짐센터 전단 스티커와 공가를 알리는 경고문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무색하게도 높이 뻗어 곧게 자란 나무들은 초록빛을 뽐냈고 더운 날 잠시 쉬어가라는 듯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싱그러움이 가득했던 그날의 여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2018년 8월, 개포주공아파트 단지 내  촬영 사진



아쉽게도 현재 개포주공아파트와 상가는 재건축으로 인해 철거되었고, 신축 아파트를 짓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아파트 바로 옆쪽엔 개포중학교가 위치해 있는데 공사의 영향인지 휴교 중이었다. 변화를 마주한 개포주공아파트와는 달리 멈춰버린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은희의 외로움과 설렘이 담겼던 장소 개포주공아파트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영화의 장면들이 촬영되고 완성되는 동안 촬영지였던 공간은 사라졌다. 1980년대 개발된 개포동. 영화의 배경 시기였던 1994년의 개포동은 어땠을까? 그 모습을 알기도 전에 또다시 변화를 맞았다.





<2020년 5월 1일, 개포주공(좌측) 단지>



송파구 문정동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송파구 문정동. 80년대 중반 올림픽 선수촌 건설을 계기로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는 듯싶던 이 지역 도시개발 사업은 1988년 돌연 중단되었다가 16년 만인 2004년에서야 재개되었다.


1959년 문정동 느티나무

*내용 출처: http://bitly.kr/oCd71AMaz




2) 올림픽 훼밀리아파트 (문정동), 1988년 12월 준공

은희네 부모님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한다. 바쁠 땐 온 가족이 손을 모아 함께 일을 한다. 이 떡집이 위치한 곳은 대치동이 배경이기에 당연히 대치동 내에 있는 아파트 상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문정동에 있는 올림픽 훼밀리 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떡집이었다. (현재 영업 중이다.)









올림픽 훼밀리 아파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림픽이 개최가 확정되면서 조성된 공간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88 올림픽에 참가한 외국인 선수단의 귀빈용 숙소로 지어졌다고 한다. (올림픽 이후에는 일반인들에게 분양되었다.) 단지를 둘러보다 보면 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의 그림과 '호돌이 공원', '호순이 공원' 같은 이름을 가진 공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림픽훼미리 상가 내 떡집 , 미용실 문에 가렸다>




감독이 의도를 두고 문정동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한 마음에 의미를 두었다. 강남구 대치동과 송파구 문정동. 애초에 구가 다른 데다가 개발 당시 목적이나 성격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장소적 의미를 두고자 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굳이 찾자면 강남구 대치동은 과거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었고, 송파구 문정동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문정리였다가 서울 행정구역의 확대로 편입된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부족했던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서울이 아니었던 지역을 편입시키고 미개발된 택지를 개발하여 그 자리에 아파트를 건설했다. 현재를 기준으로 따져 보면 30년을 넘긴 곳들이고, 이미 재건축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이 지점이 영화 속 장소들이 공통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내가 찾고자 하는 장소적 의미일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우연이었을까? 은희네 가족에 걸맞은 이름 훼밀리 상가다.



강남구 대치동

1976년에는 농경지였던 대치동이 1983년 아파트 단지의 확산 과정을 거쳐, 1995년에는 양재천과 탄천까지 아파트 단지로 채워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생활문화 조사자료 대치 동편 93page 문장 인용-




<1978년 대치동, 사진출처: 서울시>

<2020년 현재, 다음 지도>




3) 은희의 집으로 상징화된 대치동 은마아파트, 1979년 8월 준공 


영화 <벌새>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장소, 대치동 그리고 은마아파트. 교육열이 높은 강남의 유명한 동네라는 것만 알았지 실제로 어떤 동네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뜨문 뜨문 들려오는 대치동에 관한 이야기로는, 은마아파트도 오랜 세월을 맞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라는 것, 80% 이상이 세입자라는 것, 모두가 잘 사는 부자는 아니라는 것(이건 근데 대치동에 사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른 동네에 비해서 인 건지, 대치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건지 비교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이 있다.




<영화 벌새 한 장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영화 속 대치동은 장소적 의미를 배제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장면에서 물음을 던져 주곤 했다. 1970년 중반까지도 대치동 인근 지역은 대부분 논밭이었고 은마아파트를 기점으로 80년 - 9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 은희는 이곳에서 성장하고 부모님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떡집을 운영하며 고생을 감수한다. 첫째 아들이 서울대를 가길 바라고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대학생활의 꿈을 딸에게 간접적으로 투영하고, 공부를 못해서 강북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며 윽박지르는 장면 보고 있노라면 <대치동>은 장소적 의미를 뛰어넘어 1990년대 대한민국 사회의 한 단면을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상징성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화면 가득 채워서 임팩트를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포구 합정동 

합정동에 숨겨진 어두운 역사는 '합정(合井)'이란 지명에 남아있다. 합정은 원래 한자로 '蛤井'이라 쓰였다. 글자 그대로 '조개 우물'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망나니들이 칼춤을 추기 전에 물을 뿜기 위해 우물을 팠는데, 양화진 앞에 있는 곳이라 우물을 파다가 민물조개가 많이 나왔다 해 조개 우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개 우물 동네에서 오늘날 합정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조선시대 말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서대문구로 편입됐다가 이듬해 마포구로 관할이 이전됐고 
해방 직후인 1946년에 마포구 합정동이 됐다.

* 내용 출처: https://www.asiae.co.kr/article/2018011914584094204




<1967년 8월 1일, 택지로 개발한 합정동,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오마이 포토, by 한치규>

*사진출처: http://bitly.kr/pDaOLbbFM




5) 새 서울병원


영화에서 유일하게 한강 남쪽 지역이 아닌 한강 북쪽 마포구에 있는 새서울 의원. 하지만 지도 위치상 알 수 있듯이 한강과 가까운, 도심 기준으로 좌측으로 치우쳐진 위치 해 있다. 합정동이 서울에 편입된 시기는 비교적 빨랐지만 위치나 역할을 되새겨 보았을 때 외곽지로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현재도 동네의 변화는 비교적 느린 편이어서 도심에서 느끼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1972년 2월 3일 자 합정동 위성사진, 좌측 상단 사거리에 빨간색 네모박스 표기지점이 새서울의원이 위치한 곳>


과거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였던 양화나루가 있었지만 가까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동네.(근처에 절두산 순교성지가 있다. ) 그래서일까? 새 서울의원의 <새 서울>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합정동에서 <새 서울>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 벌새 속 장면>


<2011년 10월 로드뷰>


1966년 1월 8일 자 경향신문에 <새 서울 청사진>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1966년 1월 8일 자, 경향신문>




올해의 토지 구획 정지 사업은 신규사업인 뚝섬지구의 40여만 평과 지난해에 이미 사업에 착수한 성산, 서교, 수유, 불광, 면목 등 6개 지구. 이 6개 지구 중 성산지구만 67년도에 공사를 완전히 끝낼 예정이고 다른 5개 지구의 공사는 올해에 모두 끝난다. (중략.....) 서교 지구는 52만 평의 대상 구역 중 올해 1만 1천5평이 완전히 택지로 조성되어 주택이 이미 들어섰다. 서교 지구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의 대상지역은 동교동, 서교동, 합정동, 망원동, 상수동, 하수동, 당인동, 창천동의 일부 지역이다.  
<1966년 1월 8일 일자, 경향신문 >



연이어 9월에 발표된 '새 서울 백지계획'에 의하면 인구 100만 명 ~ 1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흥도시를 건설할 계획에서 '새 서울'이라 칭했다. 의원의 명칭을 <새 서울>이라고 한 데에는 여기서 출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5월, 새 서울의원>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버스정류장 명칭이 <새서울의원>이다. 동네에 버스정류장명이 정해지는 데는 아무래도 대표성이 있는 장소 위주로 선정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시장, 마트, 지하철역, 아파트 등등. 그만큼 <새서울의원>이 동네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블로그 알군의 여행 맛집 포스팅 글에 의하면 50년간 내과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당연할 수밖에. 현재로부터 50년이면 1970년대인데, 새서울 백지화 계획이 발표된 것이 1966년이다. 해당 주소로 건축물의 승인일자를 확인해보았는데 의료시설로서 승인된 일자가 1975년 7월 30일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정말로 이곳이 '새 서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었을 거라는 짐작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6) 성수대교


뉴스를 통해 어렴풋이 전해 들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엔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여러 매체에서 전달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것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사고가 일어 나서는 안될 사고였고, 그 원인에는 안일한 대처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억에서 희미해져 갈 때쯔음 - 영화 <벌새>에서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언급해주었다. 사고의 희생자가 항상 곁에 있던 가족이 될 뻔한 가슴 철렁한 순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의 유일한 조력자였던 선생님이 사고 희생자가 된 아쉬운 순간이 동시에 존재했다. 수많은 사고 중 하나라며 그냥 지날 칠 뻔했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 놓은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



사고 이후 은희의 언니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과 사고 현장을 찾아 끊어진 다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장면은 스쳐 지나갔던 영화 속 수많은 풍경들 속에서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어디선가 성수대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다고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걸음에 달려갔다. 위령비는 성수대교와 강변북로를 잇는 도로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차량 없이는 접근하기가 힘들다. 차량을 멈춰 세우고 지나가기에는 애매한 위치인 데다가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다리 아래로 추락한 버스 안에는 학교로 향하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기에 위령비 주변엔 해당 학교의 총동창회에서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매년 이곳에서 가족들은 위령제를 지낸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어떤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을 유가족회에서 걸어둔 현수막을 보니 더 분명해졌다. 오직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슬픔과 기억이다.



우리는 대치동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들은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어 사라진 공간, 과거에도 지금도 한 동네를 상징화하는 랜드마크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공간, 무너졌다가 어느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금 제 기능을 하는 공간. 모두 존재한다. 그와 동시에 대표성을 띠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교육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대치동,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도곡동, 1980년 개발 당시 강남을 대표하던 아파트 단지가 있던 개포동, 올림픽의 영향으로 일부 개발된 문정동, 새서울이 되길 바랬던 합정동,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던 성수대교.


공간의 존재와 사라짐은 1980년 - 1990년대의 대한민국 도시 개발사와 역사를 함께 한다. 그와 동시에 급증하는 인구의 변화로 인해 서울의 행정구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편입되면서 불가피하게 '도시'로서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논, 밭에서 농사를 하며 삶을 꾸려나가던 사람들이 삶의 터를 잃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도시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사라짐과 생성이 반복된다. 자연스럽게 단계를 거치며 동네의 이미지는 새로운 옷을 입고 어느 순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미지화 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시간들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함에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어느 한 동네를 이해할 때 한 가지 등식으로만 성립되는 것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발견하기 시작하면 해당 지역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장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 곳이 대치동이고, 그와 연관하여 촬영지였던 개포동, 도곡동, 문정동 같은 강남지역들이다. 그래서 영화 <벌새>와 함께 그 맥락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시간의 층이 쌓여 있는 대치동(및 기타 동네) 임에도 불구하고 외부로 보이는 이미지는 오직 '사교육의 중심'이라는 타이틀 하나뿐이다. 그래서인지 '대치동'하면 학원가가 몰려있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실제로 현장을 답사하며 살펴보니 5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는 오래된 옛 마을 동네도 있고, 2-3층 자리 다세대주택이나 빌라가 모여 있는 동네도 있었다. 또 실제로 행정구역상 대치동이지만 삼성역 가까이에 있는 동네들은 오피스 건물군의 영향을 받아서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중심'이라는 키워드도 한몫을 했다. 지리적 위치상으로 대치동은 한강 이남지역에서도 비교적 아래쪽에 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중심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는 그동안 현실의 장소와 이미지화된 장소의 경계에 서 있었을 뿐 대치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는 다른 동네도 마찬가지고. 지금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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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_좋아하는 것들을 연구/기획/탐색/탐구하는 탐험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