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손 안의 작은 카메라,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selfie라고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사진을 만날 수 있는가,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셀피의 시대가 오기까지 사진은 어떻게 발명, 발전되었으며 오늘날의 사진은 어떠한지 몇 개의 글에 나누어 다뤄보고자 한다.

사진은 1839년 프랑스 사람 다게르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1839년 갑자기 사진이 짠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진의 원리는 규명되어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바로 오늘날 사용하는 카메라의 조상이자, 사진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원리이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가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었다. 즉 광선이 핀홀을 지나면 이미지를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 카메라 옵스큐라는 실제 사용가치가 부여된 것이 아닌 논증의 도구였다. “두 개의 직선이 교차하면 교차되는 두 직선이 만들어내는 각은 같다”라는 기하학적 사실을 논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카메라 옵스쿠라는 화가들에 의해 사생의 도구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그림은 사람의 손으로 그려낸 것이었지만 이미지 자체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의한 것이었다. 화가들에 의해 이것이 사용된 데에는 원근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그림은 선 원근법을 활용해 그리는 일이 많았는데 원근법적으로 외부의 사물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은 상당히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카메라를 이용하면 원근법 구현이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화가들에 의해 사용가치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18세기가 되며 크기가 커 사람이 직접 안에 들어가서 사용하던 카메라 옵스쿠라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더 작아지고 이동이 용이하게 되었다. 작은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 휴대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핀홀은 작게 뚫을수록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을 경우 상이 맺히지 않는다. 반대로 핀홀을 크게 뚫으면 빛이 충분히 들어오지만 흐릿하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며 핀홀 대신 렌즈를 사용하게 되고 이러한 딜레마가 해결되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화가와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은 대상의 재현력, 표현력, 색상의 사용의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수많은 천재적인 화가들이 등장하고 그 이전시기와 비교가 안 되게 대상 표현력이 증가한다. 이때부터 과학이 발전해서 광학 도구, 대표적으로 카메라를 사용했기에 이러한 천재적인 화가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베르메르의 작품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보면 가운데 여인이 우유를 따르고 있고 테이블에는 다양한 음식과 소품들이 놓여 있다. 그림은 마치 사진을 보듯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그림 역시 카메라 옵스쿠라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하면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형상 왜곡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좌측 위의 바구니를 보면 약간의 왜곡이 보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조선시대에도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자로 번역된 과학서적인 '원경설'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광학적 원리와 이미지 형성 원리가 쓰여 있었다. 게다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쓰인 '칠실관화설(漆室觀火說)'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구체적으로 실험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칠실파려안'은 어두운 유리 눈을 의미하며 카메라 옵스큐라를 지칭한다.
“방 안을 칠흑같이 깜깜하게 해 놓고, 다만 구멍 하나만 남겨둔다. 돋보기 하나를 가져다가 구멍에 맞춰놓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돋보기에서 몇 자 거리를 두어 비치는 빛을 받는다. 그러면 물가와 묏부리의 아름다움과 대와 나무와 꽃과 바위의 무더기, 누각과 울타리의 둘러친 모습이 모두 종이판 위에 내리비친다. … 구성이 조밀하고 위치가 가지런해서 절로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하지만 카메라 옵스쿠라의 이미지를 사람 손으로 따라 그리지 않고, 광학적이고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17세기 초반에 온 화합물이 광선에 의해 검게 변한다는 것이 관찰되었지만 어떻게 이 효과를 중지시켜 이미지가 완전히 검게 되는 것을 막을지가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