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알베르토 자코메티》展 | ARTLECTURE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알베르토 자코메티》展

-시대가 원하는 조각을 거부하고, 자신이 깨달은 인간의 형상을 빚어낸 작가-

/Art & Preview/
by 정미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알베르토 자코메티》展
-시대가 원하는 조각을 거부하고, 자신이 깨달은 인간의 형상을 빚어낸 작가-
VIEW 2878

HIGHLIGHT


그는 미술계가 말하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 대신, 숱한 전쟁과 폭력을 겪으며 마주했던 인간을 덤덤히 조각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가 생각했던 인간의 형상을 빚어내고자 했습니다.... 자코메티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면, 제 자신이 세상의 기준에 잘 맞추어져 가고 있는지 묻기보다, 나 자신이 그 기준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지금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저 기준들에 참으로 동의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들이 서울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루이비통이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의 개관을 기념하며 평소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재단의 미공개 컬렉션들을 삼 개월 정도 전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새로 개관한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의 모습. © Fondation Louis Vuitton




대학에서 교양 미술사라도 들어보셨다면, 자코메티라는 이름은 꽤나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필자에게 자코메티는 오랫동안 현대 미술사 교과서 속 숱한 작가들 중 한 명이었을 뿐, 크게 관심을 끄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학부 때 배웠던 미술의 역사는 곧 회화의 역사였기 때문에 조각을 다루는 작가들은 주변부로 밀리기 십상이었죠.



Alberto Giacometti (1901.10.10-1966.01.11)




자코메티가 제게 다가온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학부를 막 졸업하고, 독일에서 수학 중이던 언니를 만나기 위하여 유럽여행을 할 때의 일입니다. 저는 미술사 수업 ppt를 통해서만 보았던 작품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힘닿는 대로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들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미술관을 다녔기 때문일까요, 여행의 중반부에 이르러는 여러 번 접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은 휙휙 지나칠 정도로 작품에 대한 감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위스의 한 미술관에서 자코메티가 제작한 흉상을 마주했고, 마음이 시원하게 환기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자코메티가 빚어낸 인간의 모습을 보며,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작업을 보고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점차 사그라들고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간에 잃어버렸던 예술 작품들에 대한 흥미가 되살아났습니다.



개인 작업식에 있는 자코메티의 모습. Photo by Ernst Scheidegger. © Giacometti Institute Paris




자코메티의 조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코메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껏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작품 앞에 선 저는 단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작품은 익숙한 인간의 모습도 혹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재현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코메티가 만든 인간들은 기존의 조각과 전혀 다릅니다. 자코메티의 조각을 기존의 조각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자코메티의 조각이 조각 특유의 “볼륨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볼륨은 조각을 회화와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코메티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선들로 인간을 표현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이상적인 비례나 조화에 기반한 아름답고 강인한 인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하고 가느다란 인간들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입니다.

 




자코메티의 조각들. 2009년 스위스 전시 당시 모습.




이번 루이비통의 소장품전은 자코메티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쓰러지는 남자(Homme qui chavire)>(1950)는 단순히 서있는 것조차 위태롭게 보이는 모습의 인체상입니다. 단순히 한걸음 내딛기 위하여 생의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균형을 잃고 곧 쓰러질 듯 한 인간의 모습은 어딘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가 만든 인간의 모습은 그저 매일 생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지 않은 날이 없는,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곧 균형을 잃고 쓰러져버릴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쓰러지는 남자 (homme qui chavire)>(1950), Painted bronze, 59.1 x 26.5 x 27.5 cm © Fondation Louis Vuitton




<장대위의 두상>(1952)은 우리에게 익숙한 비너스나 아그리파의 두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자코메티의 두상은 좌대 위에 웅장하게 전시되지 않습니다. 그의 두상은 장대 위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습니다. 풍성한 볼륨감, 굳게 다문 입술, 엄숙한 시선은 온 데 간데없습니다. 이 작업은 머리가 반쯤 잘려나간 채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가까스로 숨을 쉬는 듯한 애처로운 두상입니다. 자코메티는 슬픔과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상태로 생을 유지하는 아슬아슬한 인간의 모습을 자주 만들었습니다.



<장대 위의 두상(Tête sur tige)>(1947), Bronze with dark brown patina Plaster base ©Fondation Louis Vuitton



자코메티는 당시 미술계가 말하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 대신, 숱한 전쟁과 폭력을 겪으며 마주했던 인간을 덤덤히 조각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가 생각했던 인간의 형상을 빚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코메티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면, 제 자신이 세상의 기준에 잘 맞추어져 가고 있는지 묻기보다, 나 자신이 그 기준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지금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저 기준들에 참으로 동의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남자 흉상 (Buste d'homme assis) (Lotar III)> (1964-1965), Bronze.  © Fondation Louis Vuitton>



자코메티의 조각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보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나타냅니다. 그는 당대가 말하는 “잘 된 조각”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그 자신이 삶을 살아가며 깨닫게 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이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나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아무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예술가로서 그의 삶을 마감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내던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글을 쓸 때면, 다른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집니다. 미술계에서는 주로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압도적인 견해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자꾸만 마음과 생각을 뒤 흔듭니다. 그러나 정말 작품과 공명하고 싶다면, 남들의 의견과 권위적인 지식이 아니라, 제 자신이 작품에 대하여 느끼는 바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가 살아온 삶과 이 작품이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그리고 작품이 저에게만 하는 말은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게 된 글들은 언제나 흡족할만한 결과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삶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사회가 말하는 기준과 어울리지 않고, 인정받을만하지 않더라도 그냥 나만이 살아갈 수 있는 이 삶을 묵묵히 산다면, 돌아보아도 후회와 억울함이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코메티의 조각들처럼 삶도 누군가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요.


--------------------------


*전시는 올해 1월 19일까지 계속됩니다. 미리 예약하면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展,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소장품 전

2019.10.31-2020.01.19.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454,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정미_학부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예술학을 전공했습니다. 주로 예술과 마음에 관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