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홍영인 신작 리뷰, 《올해의 작가상 2019 시리즈 2편》 | ARTLECTURE

#홍영인 신작 리뷰, 《올해의 작가상 2019 시리즈 2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올해의 작가상 2019》리뷰 #2 홍영인 작가-

/People & Artist/
by 정미

#홍영인 신작 리뷰, 《올해의 작가상 2019 시리즈 2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올해의 작가상 2019》리뷰 #2 홍영인 작가-
VIEW 3467

HIGHLIGHT


홍영인은 ‘동등성’이라는 개념을 미술 안에서 구현하고자 합니다...“지켜보고 있다”는 말은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응시란 그 자체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권력적 위계를 상정하기 때문입니다. 홍영인은 이 작품을 통하여 관람객들이 ‘응시자-응시의 대상’ 이라는 권력의 위계가 전복되는 순간 느껴지는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올해의 작가상 20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9.10.12-2020.03.01.


지난 글은 박혜수 작가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박혜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극단을 표방하는 ‘가족 아웃소싱’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하여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링크: #박혜수  신작 리뷰, 《올해의 작가상 2019 시리즈 1편》

이번 글에서는 홍영인 작가를 다룹니다. 작가는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에 기반을 두고 활동해왔으며, 퍼포먼스와 섬유 작업을 통하여 주로 주변부에 위치한 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홍영인은 ‘동등성’이라는 개념을 미술 안에서 구현하고자 합니다. 



홍영인 작가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새 초상을 그리려면>(2019)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은 철창과 새소리, 나뭇가지로 구성된 새장입니다. 작가는 전시실에 들어오는 인간을 철장 안에 갇힌 존재로 형상화합니다. 전시실에는 새소리가 끊임없이 울립니다. 그러나 새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어디서 인간을 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철망 구조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관람객들은 새장 속에 갇힌 인간이 되고, 보이지 않는 새들은 대상이 된 인간을 응시합니다. 

      

흔히들 재미로 말하는 “지켜보고 있다”는 말은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응시란 그 자체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권력적 위계를 상정하기 때문입니다. 홍영인은 이 작품을 통하여 관람객들이 ‘응시자-응시의 대상’ 이라는 권력의 위계가 전복되는 순간 느껴지는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즉 ‘주체-타자’의 관계 속에 기입된 권력에 대한 사유를 촉발합니다. 작품 속을 거닐며 관람자들은 권력의 위계가 전복되는 순간 ‘바라보는 자’ 인 '우리'가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였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인간-동물의 관계가 불균형한 권력관계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우리는 평등에 관한 사유로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홍영인, <새 초상을 그리려면>(2019), 사진제공: 뉴시스

    



이어지는 작가의 작업은 영상 및 사운드 작업입니다. 거대한 새장을 빠져나오면 <하얀 가면(The White Mask)>(2019)과 <비-분열증(Un-Splitting>(2019)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얀 가면>은 런던의 클럽 이네갈(Club Inégales)의 협업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영상 속 팀원들은 '동물되기'를 모색하는 즉흥연주를 선보입니다. 클럽 이네갈의 멤버들은 자신이 동물이 되었다는 가정 하에, 동물이 되는 과정, 혹은 동물이 된 상태를 음악을 통하여 표현합니다. 동물들이 울부짖는 듯한 몸짓과 그것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악기의 소리는 어딘가 기이하고 낯선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홍영인,  <하얀 가면(The White Mask)> (2019), 3채널 비디오 설치, 65인치 모니터, 31'50", 클럽 이네갈(런던)과 협업.

   

<비-분열증>은 여성들의 저임금 노동과 동물들의 몸짓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 작업입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노동, 즉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하등하게 여겨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작품 속 퍼포머들은 수공업 노동을 떠오르게 하는 움직임과 동물들의 몸짓을 혼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수공업 노동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몸'을 통한 '여성들의 노동' 규정되어 온 영역입니다. 퍼포먼스 속 신체는 ‘남성의 몸’과 비견하여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치부되어 온 ‘여성의 몸’과 주체인 ‘인간’과 대척점에 있는 ‘동물’이 혼재된 '타자로서의 신체'를 상징합니다. 두 작품 모두 ‘혼종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경멸스럽고 저급하게 여겨지는 타자와의 혼종을 통하여 타자에 대한 불편한 사유를 시작하기를 독려합니다. 



홍영인, <비-분열증>(2019), 15명의 그룹 퍼포먼스, 스테파니 슈벡과 협업.

  


  ‘동등성’에 관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홍영인의 작업은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인 필자에게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중들이 이 작업을 어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이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새 초상을 그리려면> 의 경우는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대부분 관람객들은 본인이 철장안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관람자가 새장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관람자들은 도리어 자신이 새장 밖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가정 하며, 새장 속 새는 어디에 있는 것일지 생각하다가 새장 밖을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응시자의 시선'만을 견지하다가 감상이 끝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퍼포먼스 작업의 경우는 대중에게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는데서 그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어딘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오는 퍼포머들의 몸짓이 타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 그리하여 이 작품이 퍼포머들이나 관람자들로 하여금 ‘타자-되기’를 가능케 하고 있는지 역시 미지수입니다. 그럼에도 홍영인의 작품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 땅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관람자들의 사유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타자들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일상 속에서 불편스럽게만 다가오는 '타자성'에 대한 사유에 최적화된 장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 불편한 사유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글은 3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 참조

국립현대 미술관 홈페이지.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정미_학부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예술학을 전공했습니다. 주로 예술과 마음에 관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