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mm. 일 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이 매끈한 디스플레이는, 가지 않아도 보게하며 여기 있어도 눈을 가린채, 이전을 기억하고 지금을 착란하며 앞날을 땡겨보게 한다. 오늘날의 휴대형 스마트기기는 첨단 기술력의 집약체인 동시에 기술의 네트워크적 확장을 의미 한다. 시간과 공간을 재편하는 이 첨단 기기가 보편의 기술이 된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문화, 사회적 깊이 앞에 놓인다.
전시 제목 <얕은 물 깊은 물고기>는 “깊은 물에 많은 물고기가 산다”는 격언에서 출발한다.
깊은 물에 물고기가 많이 산다는 통념과 달리, 오늘날 스마트기기는 얇아질 수록 고도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애플 매장의 깔끔한 마감과 적절한 조도, 디스플레이된 스마트기기의 매끈한 질감과 아찔한 베젤이 자아내는 미감, 이거야 말로 2023년 버전 화이트큐브와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아닐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인류에게 주어진 스스로 빛을 내는 이 물질은 무엇인가.
전시는 제품이 판매되는 쇼룸이자 작품이 전시되는 복합문화공간 “모티포룸”에,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기반으로 설치된다. 그러나 본 전시가 주목하는 건 얕아진 물도, 그 물 안에 살아가는 물고기도 아니다. 바로 얕은 물을 손에 쥔 채 살아가는 오늘날의 물고기들이 생성하는 확장된 스펙트럼이다.
여기 신형 스마트기기 (아이폰 14 pro) 를 손에 쥔 여섯의 작가가 있다. 삶의 어느 순간 스마트폰을 맞닥뜨린 이들은 스마트한 동시에 아날로그의 기억을 지닌다. 물에 들어가기도, 손을 때기도 하며, 저마다 다른 지점 에서 첨단의 기술을 유희한다. 그들의 깊은 유희 속에 이 아름다운 발광체는, 소리를 내는 빛나는 화면이 되기도 하며, 기억을 담보하는 저장소, 매서운 공격력을 지닌 무기, 비가시 영역으로 치부된 것들의 목도자, 혹 그저 늙고 스러질 물질이 된다.
김영경은 아이폰에 탑재 된 라이다 스캔 기능의 조용한 작용과 오늘날 기업의 빅데이터 마케팅 사이에 유사성을 느끼고 그들의 은밀한 작동법을 전용한다. 작가는 라이더 스캐닝으로 소리 소문 없이 타인의 초상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 정보값을 기반으로 아이템을 만들어 전시장에 전시하고 판매하며, AR로 정보값을 재구성 한다. 초당 수백만개의 레이저 펄스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대상을 스캔하는 라이더의 정보값은, 레이저와 물질의 촉각적 만남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결과물 이다. 관객은 촉각적 정보값을 기반으로 구현된 물리적 오브제와 AR의 재현을 보게된다.
김진주는 동시대의 급변하는 속도가 낳는 붕괴와, 그것을 디지털 이미지로 유포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사회적 사건을 대하는 디지털 매체의 태도가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갖는다. 작가는 모두가 첨단의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서로 찍고 찍히며 살아가는 오늘날, 이미지를 형성 혹은 소비하는 것과 동시에 소각, 소멸 될 권리는 공존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본 전시에서 관객은 자신의 스마트 기기로 전시장 내 사진을 촬영하며 동시에 지울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소셜 네트워크 상에 개제 할 수 있다. 관객이 이미지의 소비자이자 유발자인 동시에, 소각자 이며, 유포자가 되는 이 여정 속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이미지가 생성 될 수 있을까.
박소현이는 ‘빨래’를 하다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러곤 그녀의 시간이 여전히 지속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후 작가는 세가지의 축으로 부재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추적한다. 먼저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는 사진들을 수집한 후 그 위에 아이패드로 드로잉을 하며 인덱스에 물리적 개입을 시도한다. 드로잉의 과정은 화면 녹화 기능으로 보여지며, 정지된 인덱스는 곧 실시간적 물질로 전환된다. 두번째로 작가는 물리적 움직임을 데이터화 하는 아이폰의 기억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빨래’에 대한 기억을 추적하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구술로 재현되는 기억이 병치된다. 각 화면은 각기 다른 시간으로 전개되다, 이따금 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다시 환원 되어 켜켜이 겹쳐 쌓인다.
신석호는 라이더 센서가 감지하고 구현하는 거울 이미지를 통해 화이트큐브 속 오브제의 정지된 시간을 뚫고 엔트로피의 증가를 꾀한다. 레이저가 대상에 부딪힌 후 돌아오는 시간을 기반으로 대상을 복제하는 라이더 센서는, 평면인 거울을 무한 깊이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명확히 스캔해내지 못한다. 라이더가 수집한 대상의 질감, 모양, 행위의 데이터는 난잡하게 흩어져 일그러지고 늘어난 공간으로 구현된다. 이 왜곡된 이미지는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실재와 다르지만, 어쩌면 이는 라이더가 감지한 것의 충실한 복사이자, 비가시의 영역이나 분명히 존재하는 에너지 운동의 시각적 재현이다.
조승호는 다른 최신의 기계로 대체되어 잊혀진 음향 기계들이, 물리적 시간의 흔적에 의해 갖게 되는 고유한 소리에 주목해 왔다. 작가에게 스러진 기계는 역사성을 지닌채 살아가는 고현학적 대상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아직 쓸만하나 구식이 돼 버려 이만원에 팔린 아이패드를 해체한다.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할 법한 이 보조기기의 내부는 아날로그적 기계와 달리 정밀하게 디자인 되었고 부품 마다 코드명이 새겨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이전에 이 부품을 만졌을, 이 기계를 생산한 이들의 손길을 상상한다. 어쩌면 최적의 생산을 위해 최상의 부품이 되어야 하는, 이들의 손길을 이 구식이 된 그러나 아직 쓸만한 아이패드는 담고 있을지 모른다.
Danny Choi 는 언어가 내포하는 바이러스적 침투성을 이야기 한다. 작가 자신의 신체와 언어적 규정 사이에 간극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점차 세포들을 변형 하듯 작가의 몸을 잠식해 왔다. 침투하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적 텍스트는, 보여지지만 인지되지 않는 픽셀들, 들리지만 흩어지는 소리로 치환된다. 작가는 원하는 목소리를 작품에 담기 위해 물을 마시고 러닝을 하며 각고의 ’연습’을 한다. 이로써 발설 된 목소리, 디지털 신호로 찍어진 비트, 픽셀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오롯이 직관적 감각에 의해 직조된다. 작품은 곧 작가 자신의 몸에 쌓여 왔던 바이러스적 언어들의 분출이자, 소화의 결과물로 관객의 고막을 자극하며 오만한 입을 막고, 픽셀의 발광은 그들의 몸을 밝힌다.
글. 박소현이
전시공간: 모티포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15안길 8 1층)
전시일시: 2월25일 - 3월2일
전시시간: 매일 12:00-19:00
(3월2일에는 보다 일찍 마감됩니다. 방문 일정 참조해주세요.)
오프닝프로그램: 2월25일 오후 5:00-6:30.
☆Do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