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 ‘부캐릭터(Sub-Character)’의 줄임말입니다. 부캐릭터 현상은 개그맨보다, 연예인보다, 예술가가 먼저였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전시 《부캐 시대》는 금기시되어왔던 예술가들의 경제활동과 작품활동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고물수집업 하는 설치작가, 냉면집 운영하는 회화작가, 파킨슨병동에서 일하는 사진작가, 유학시절 베이글을 만들던 조각작가, 그리고 패션유튜버 회화작가까지. 생계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다큐 영상으로 공개하고, 작품세계와 연결한 신작을 선보입니다.
참여작가 소개
김민주초원 Ghim MinzouChowon (사진작가+파킨슨병동 사진사)
김민주초원 작가는 일상의 감정을 동화 같은 상황과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하는 사진작가다. 그리고 현재까지 6년째 대학병원 파킨슨병동에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간의 작업 중 〈Childhood Area〉(2006~)연작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기쁨과 아픔의 감정을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신작은 전작의 틀 위에 작가가 병원일을 하며 느낀 생각들을 담아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기록사진을 촬영하며 병마와 시련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병원이라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환자들에게는 전문가처럼 보여야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 있다. 정직원만 입을 수 있는 흰 가운, 추가로 내야하는 식당의 밥값, 백신대상 제외 등 사소한 차별을 아기자기한 사물로 상징화 했다. 밝고 따듯한 색채와 여유롭고 편안한 풍경 같지만 그 안에 내제된 특유의 우울감과 쓸쓸함이 대비된다. 사진작가와 대학병원이라는 두 가지 삶의 무게는 사진촬영 지식으로 경제활동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사진가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김지윤 Colorver (회화작가+패션유튜버)
김지윤(Colorver) 작가는 자신만의 의미가 담긴 공간을 모노톤의 회화로 그려왔다. 육체와 정신, 긍정과 부정, 행복과 고통을 담아낸 장소를 공간의 형태로 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공간 밖’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변신한다. ‘컬러버(Colorver)’라는 예명으로 패션, 메이크업, 아트 퍼포먼스 활동을 도전 중이다. 자체 제작한 의상을 서울패션위크에 선보인바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상황에서 〈방구석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통해 회화가 단지 평면과 전시라는 체계 안에서만 인정받기보다 패션과 접목되어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고요하고 정적인 모노톤의 회화작가와 컬러풀하고 활동적인 패셔니스타, 유튜버, 셀럽으로서 상반된 정체성과 개성을 볼 수 만날 수 있다. 김지윤 작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를 모토로 삶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박철호 Park Chulho (설치작가+고물수집업)
박철호 작가는 연극적 상황을 오브제, 영상, 키네틱으로 연출하는 ‘설치극’ 형태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고물수집업을 병행중이다. 일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그리고 고물로 들어오는 갖가지 물건들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는다. 주로 가상의 인물과 스토리를 설정하고 무대를 직접 제작하는 방식이다.
본 전시에서는 자신의 작품활동과 경제활동에 대한 고백을 무대화 하였다. ‘왜 나는 버려진 물건에서 판타지를 찾는가?’ 라는 질문은 게임기의 부품 일부에서 떠오른 유년시절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집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어린시절의 작가는 반나절짜리 소심한 가출에서 무한 반복되는 오락실의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게임 속 주인공들, 도중에 끊어지는 데모영상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던 그때. 어쩌면 지금 다루는 사물들 또한 현실과 다른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물이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 일곱 번째 직업인 고물 수집업을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 웃으며 말하는 작가는 타 작가들에게도 재료를 공급해주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판타지를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는 두 캐릭터를 긴밀하게 연계하며 삶의 긍정성을 찾는다.
백승현 Baek Seunghyun (조각작가+유학시절의 생존기)
백승현 작가의 주요한 작업주제는 작가로서 생존하기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힘든 삶을 감내하는데, 그 힘든 삶의 경험이 다시 작업이 된다. 자본주의라는 성과사회 안에서 생계를 위한 노동과 작업 노동을 병행한다는 것. 그 둘 사이의 괴리. 그리고 작가의 고백이 담겨있다. 그러나 결코 자책이나 절망 혹은 염세주의는 아니다. 그저 고단한 작가의 삶을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서술한다. 본 전시에서는 독일 유학시절 도넛공장을 비롯해 생존을 위해 일했던 기억과 상황을 조각과 사진으로 표현하였다.
구작 〈무제〉는 독일 유학시절 베를린의 빵공장에서 다루던 제빵 기계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촬영한 사진이다. 백색의 배경에 백색의 기계를 세워 감정을 없앴다. 신작 〈손 끝의 뇌〉는 세라믹으로 제작된 예술가의 손이다. 노동하는 자아와 예술하는 자아 사이의 괴리,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깨닫는 순간을 은유적으로 포착하였다. 잘린 손가락에서는 피와 뼈가 아닌 뇌가 나온다. 어쩌면 노동자일 때 손은 뇌보다 중요한 기관일지 모른다. 작가는 7년간의 독일 유학시절에 대해 고민과 아이디어가 작품화 되는 임계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부풀었다가 푸욱 꺼져버리던 빵 반죽 같던 시기로 비유했다. 그 시간들을 묵묵히 감내하듯 작품과 공간은 백색의 모노톤으로 꾸며졌다. 타국에서 생계노동과 창작노동을 겸하며 갈등하고 고민했을 유학파 작가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원삼 Shin Wonsam (회화작가+냉면집 운영)
신원삼 작가는 몰 개성화된 현대인의 욕망을 벌거벗은 몸으로 그려왔다. 익명의 푸른 몸들은 도시의 거대한 구조 속에 갇힌 존재다. 현대사회의 특성을 회화로 풀어낸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전업 작가로의 지속적 활동은 여전히 어려웠다. 결국 생존을 위해 가업인 냉면집 운영을 병행하게 된다. 이후 식당의 지하창고 한켠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브레이크 타임과 퇴근이후에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최근엔 가정을 꾸리면서 작업에 할당된 시간은 더욱 줄어 만 간다.
본 전시에서는 구작과 함께 드로잉 신작 〈은수월드〉를 선보인다. 은수는 태어난 지 두돌 된 작가의 딸이다. 작가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예정되면서 이사를 앞두고, 작가의 가족은 집안의 모든 벽면을 도화지로 활용하게 된다. 곧 허물어질 건물의 벽면에 딸이 낙서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 위에 작가의 부부가 그림으로 응답한다. 그림이라는 행위를 통해 예술가이자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힘든 삶 속의 즐거움을 찾고 서로 의지하고자 한 것이다. 〈은수월드〉는 벽을 채운 딸의 그림을 작가가 캔버스에 재해석한 작품이다. 푸른 인간들로 비정하게 도시를 바라본 작가가 가족을 통해 사랑이 깃든 따듯한 작품으로 변화된 과정을 볼 수 있다.
참여작가: 김민주초원, 김지윤, 박철호, 백승현, 신원삼
기획: 최재혁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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