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큐레이터
올해는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 만든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에서 2km씩 떨어진 공간으로 총길이는 248km, 155mile에 달합니다.)는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군인들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 후,남북 각각 10개소씩 감시초소(GP: Guard Post)를 폭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남과 북의 평화를 향한 움직임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고, 그 이후 북은 핵실험을 멈추지 않은 채 더욱더 고립되었습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1)는 남과 북의 경계와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현상을 동시대 예술의 시각으로 고민하고 DMZ의 장소성과 역사, 분단의 의미를 환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한국전쟁, 남북분단과 DMZ에 대한 고찰은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경계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현상과 트라우마를 예술가들이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자유롭고 열린 시선으로 DMZ에 접근하고, 경계를 넘나들며, 때로는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거나 추상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번 전시는 70년의 분단에서 비롯된 DMZ의 자연환경과 생태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시도하는 한편 분단에서 비롯된 군사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유보된 비무장지대인 DMZ는 인간의 움직임은 사라지고 동식물만이 활동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DMZ의 자연과 주위에 남겨진 군인들의 공간을 전시 장소로 사용함으로써 현재 남겨진 DMZ의 모습을 예술적 시각에서 조명하고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군인들의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전환합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경기도 파주의 민간인 통제 구역인 도라전망대와 미군기지였던 캠프그리브스 그리고 전쟁 중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방문했던 임진각에 있는 평화누리에서 열립니다. 이어서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의 민간인 통제 구역 마을에 있는 전시 공간인 연강갤러리와 생태공원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북으로 향하던 간이역인 신망리역, 대광리역, 신탄리역에서 전시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 장소들은 남북 분단 이전에 북으로 향하던 역, 북을 볼 수 있는 전망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캠프, 민간인 통제 구역 안의 마을 입구 등 70년간의 남북분단으로 인해 만들지거나 남겨진 장소들입니다.
김선정은 아트선재센터에서 수석 큐레이터 겸 부관장(1993-2004), 관장(2016-2017)을 지냈고, 현재 예술감독(2022-)이며,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 및 ICOM ASPAC(아시아태평양지역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2015년 아시아문화예술회관 ACC 아카이브&리서치 예술감독, 2017-2021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2011년부터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비무장지대(DMZ)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예술의 비판적 시각으로 탐구하고 분단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시작된 예술 및 연구 프로젝트인 리얼디엠지프로젝트의 설립자이며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도라전망대
평화관광 코스 중 하나인 도라전망대는 DMZ뿐 아니라 북의 기정동 선전마을과 개성까지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DMZ는 남과 북의 대치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군인들만 남아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도라전망대의 전시는 식물이나 자연으로 가득 찬 DMZ의 실제 풍경을 다루거나 이런 풍경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업으로 구성됩니다. 전망대 입구에 놓인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은 사라진 신체 부위에서 느끼는 환상통처럼 일상에서 사라진 부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DMZ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겨진 공간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동시에 완화되는 완충 지대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틈’과 같은 공간인 DMZ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입니다. 전망대 1층에서 볼 수 있는 이끼바위쿠르르의 그라피티 작업은 DMZ에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하여 식물이 잠식한 공간에 대한 기록이자 사라진 인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습니다. 만화에 나타나는 상징을 선택/편집한 옥승철의 〈녹색광선〉과 〈구름〉은 레이저 사격이나 폭발의 한 장면을 멈춰 놓은 듯한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옥승철은 적과 아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이미지를 편집함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일시 정지된 우리의 역사가 겹쳐 보이도록 합니다. 2004년, 2006년과 2015년에 파주와 철원의 DMZ 모습을 담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작업과 군 복무 경험을 텐트 이미지로 표현한 이재석의 회화 또한 전망대 1층에 전시됩니다. 김포에 위치한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선전마을의 모습을 그린 이우성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DMZ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인공적인 향으로 표현한 박보마의 작업과 DMZ에서 자라는 식물의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을 만든 성립의 작업이 DMZ 전망대 2층에 설치됩니다. 그리고 킴 웨스트팔의 DMZ에서 발견한 난초의 이미지를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만든 〈석곡, 다시 꿈꾸는 DMZ〉와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 도 전망대 2층에 설치됩니다.
캠프그리브스
미군의 군사 시설이었던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당시의 자료와 함께 미군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번 전시는 군인 막사들에 전시되어 있던 기존의 기록과 자료, 사진 사이에 작가들의 작업이 끼어들어 가는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군인 막사였던 ‘도큐멘타1’는 정전협정 관련 자료와 미군 사진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화장실 공간이었던 ‘도큐멘타2’에서는 위장 개념과 JSA의 배수구를 소재로 한 혜안폴권카잔더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미군의 군 생활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도큐멘타3’에는 동두천 미군클럽의 현재 모습을 다룬 최원준의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 연작이 소개되고, 미군이 살았던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에는 킴 웨스트팔의 레코드 작업 〈스파이시 메모리〉가 전시됩니다. 보존 막사에는 DMZ 안 민간인 마을인 ‘자유의 마을’에 대해 다룬 문경원 & 전준호의 비디오와 설치 작업이 소개됩니다. ‘도큐멘타4’에서는 DMZ를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나미라의 비디오 설치 작업 〈밤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체육관에는 DMZ의 역사성을 다룬 작업과 DMZ의 풍경을 개인적인 감상 혹은 만화적으로 접근한 작업이 평행하게 배치됩니다. 체육관 메인 공간에서는 남북의 갈등을 다룬 서용선의 남북의 갈등을 보이는 회화 두 점이 전시됩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 파동과 미사일 발사 및 핵 개발로 인해 남북한 긴장 관계가 최고조일 때 그린 〈뉴스와 사건〉과 2005년에 남과 북의 감시 체제와 DMZ의 공포와 긴장을 담은 〈시선〉이 소개됩니다. 또한, 군대의 계급을 표시하는 별들이 달린 군용 텐트와 어두운 벙커를 그린 이재석의 〈오성텐트〉와 〈쉘터_2〉, 개성 공단의 폐쇄로 한국 기업들이 집단 탈출했던 기록을 재해석한 함경아의 〈리프린트된 시차 17시와 17시30 분 사이, 예시 2-1〉 작업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군인들이 사용했던 36장의 군용 모포로 만들어진 임민욱의 설치 작업 〈커레히―홀로서서〉도2)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모포들의 앞면에는 간혹 군인들의 이름이나 물감이 배어 나온 흔적이 있고, 반대 면에는 형태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형상들이 떠올라 있습니다. 장수미의 현대무용 작업인 〈오블리끄 센세이션〉은 사용이 중지된 공간에 간헐적인 움직임으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체육관의 사우나실 공간에는 연천의 태풍전망대를 방문하고 그린 마키코 쿠도의 〈같은 추억〉, 초록이 우거진 DMZ의 땅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 박형진의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기다리는 이〉, 중단된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작업을 통해 멈추었던 시간을 단절이 아닌 모습으로 표현한 성시경의 〈여러 입구들〉과 〈오델로〉, DMZ의 마을과 역사 주변에서 발견한 석상과 동상을 그린 박노완의 〈석상과 거북이 장난감〉과 〈동상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연천과 파주를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으로서 무성한 풀로 나타낸 권혜성의 〈우리는 풀이 되어〉 등이 소개됩니다. 흐릿한 풍경을 통해 모호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써니킴의 회화 〈이곳에서〉, 〈벼랑〉, 〈선〉은 체육관의 교육실과 복도로 이어지고, 복도 공간에는 DMZ 안의 수풀, 철책, 지뢰 표지판 등을 포착해 접경지역의 풍광을 표현한 미카엘 레빈의 작업이 DMZ의 다층적인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야외 공간에는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는 다리 사이에는 여러 겹의 철조망으로 묶여 있는 이정훈의 조각 〈금지된 걸음〉이 놓입니다. 그 밖에도 조경진/조혜령이 연구한 DMZ의 식물들로 만들어진 조그만 정원 〈식물 평행세계〉가 조성됩니다. 이 정원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식물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 명절 때마다 고향을 그리며 방문하던 임진각이 이제는 평화누리로 확장되어 일반인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북의 침략에 대비한 방호벽은 70여 년간의 세월로 원래의 기능을 잃고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군사 시설과 위장한 모습을 담은 최원준의 사진 〈언더쿨드〉연작과 수풀과 철책, 그 위에 ‘지뢰’라고 쓰인 모습을 찍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지뢰 - DMZ I〉은 빌보드처럼 제작되어 평화광장 잔디에 놓입니다. 김홍석의 〈불완전한 질서 개발-회색 만남〉은 원래는 무겁고 단단한 재질의 조각인데 가벼운 재료로 바꿔 떠 있듯이 잔디밭에 설치됩니다. 가볍지만 무거운 의미를 지닌 이 거대한 조각은 집단적으로 형성된 체계나 동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70년간의 남북분단으로 생겨난 여러 장소를 연결하여 전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관람객이 각각의 장소들을 방문해 전시를 관람하면서 장소에 깃든 역사적 의미들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마치 게임에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여 특별한 아이템을 얻는 것처럼 분단이 만들어 낸 장소들을 방문해 다채로운 예술 작업들을 감상하면서 남북분단 70년의 세월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장소인 DMZ를 예술가의 또 다른 시각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지만 잊어버리고 있던 공간, 비무장지대지만 가장 무장화된 역설적인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시킵니다. DMZ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무거운 역사와 정치에 비해 어쩌면 감상적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이 가벼움 안에 여러 층위의 생각들과 상상력들이 담겨있어서 어느 곳으로든 날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싹 틔울 씨앗처럼 퍼져 나갈 것입니다.
각주
1) ‘체크포인트’는 점검과 검문을 위한 시설을 의미하며 접경지역에서는 보안을 위한 인적 사항과 방문목적을 확인하는 절차적 장소입니다. 비무장지대인 DMZ는 민간인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민간인 통제 구역만이 미리 허가를 받는 조건에서 일반인의 방문이 가능합니다.
2)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다. 이는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 2사단 506연대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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