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예술가라는 존재들은 결코 무리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건 개미들이나 그렇다. 싹을 틔우기 시작한 예술가에게는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들과 씨름할 특권이 주어져야 한다. 가끔은 고기 한 점도. 헨리 밀러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중 |
연작 ‘45144’는 처음으로 ‘만드는 사진’에서 벗어난 작업이다. ‘만드는 사진’은 전통적인 ‘찍는 사진’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어떤 특정한 주제 의식으로 이미지를 구성해 촬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영화에서의 미장센 개념과 비슷하다. 앤 셀린 제이거의 저서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접했다.
먼저 개념을 세우고, 이미지를 다듬으며 만드는 과정에 익숙했다. 대학 졸업까지 이러한 작업만 지속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스냅 사진들은 그저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말해주지 않으니까. 드러내고 있는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개념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쳐 지나가도 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하지 않는 사진에 나의 언어를 배치하고, 사진이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다. 말과 글을 먼저 쓰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나의 말’의 수명은 짧았고, 그 말이 지겨워 먼저 시선을 거뒀다. 배치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찾을 수 없는 분명한 이미지에 고개를 돌렸다.



이 작업은 두려움의 기로에 선 삶이 어떤 개념도 내뱉지 못할 때 시작됐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을 때, 찾은 것은 카메라였고, 사진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계기가 되었지만 흘러갈 방법도, 끝도 없는 촬영이었다. 이 사진은 도시의 부분이다. 도시 안에서도 벽과 색, 구조에 초점을 맞췄다. 예상했던 대로 이 사진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사물에서 반사된 색만 보여줄 뿐이다.
이미지 뭉치에 이름을 달아주는 일은, 의미를 더해주는 것은 글과 말이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쌓일수록 글은 절실해졌고, 말은 사라져갔다. 자아의 바깥에서 시작한 이미지의 개념을 안에서 찾으려고 하니 실패한 것일까. 글을 찾기 위해 사진 속 대상으로 시선을 돌리자 역사라는 글이 나왔다. 그리고 곁에는 도시를 이룬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 연작에는 인물이 없다. 시간과 계절도 드러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사진은 침묵한 채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드러난 대상이 하는 말을 카메라 든 이는 받아 적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말 필요했던 이야기를 만나고 있다.
벽과 모서리, 지나는 모든 것들이 지닌 글과 말을 다듬어 정리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미 3년을 살고, 더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이 도시의 조각을 계속 모아볼 것이다. 이방인의 도시를, 차별의 역사를, 오늘 날의 새로운 이방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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