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키스 해링展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키스해링, 전시포스터, DDP
2018년 11월 24일부터 3월 17일까지 서울 DDP에서 약 4개월간 키스 해링의 작품을 직접 관람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기회가 제공되었다고 표현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키스해링은 막연하지만 분명 어떠한 힘이 있다. 그 힘은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경외일수도 있고, "요절한 천재"라는 낭만적 수식어의 매력, 또는 '팝 아트의 앤디워홀'과 같은 이미지의 '친숙함'에서 오는 힘일 수도 있다. 키스해링의 그림 스타일, 즉 일러스트레이션으로서 키스해링의 이미지가 가지는 힘이 있다. 키스해링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더라도 일정한 굵기의 선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 스타일과 키스해링이라는 이름을 연결 짓기는 쉽다. 키스해링의 이미지를 이용한 산업이 한편에서는 흥행하기도 하고, 간혹 모텔처럼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이미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지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힘을 인정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편, 일러스트라는 기표 자체가 가지는 힘은 분명하지만 기표를 둘러싸고 있던 또는 기표의 기원이 되는 지점에 대한 사유는 누구의 몫인 것일까?

처음으로 마주한 키스해링의 작품은 그가 지하철 역사 내 광고가 아직 걸리지 않은 검정색 빈 화면에 하얀색 분필로 그려넣은 그림들을 벽 채로 뜯어서 액자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키스해링의 사회적 행위의 정초로서 거리미술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거리미술이 지니는 가치는 공간성이다. 어느 장소에 표현을 했느냐에 따라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나타내고자 하는 사회적 메세지가 더 명확해질 수 있다. 이는 현대미술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하는데, 정제된 화폭 안에 회화를 그려 넣고 이를 화이트 큐브 안에 정제되 빛과 함께 위치하는 것,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 전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벽에 그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유정(2018)은 구석기 시대에 등장하는 동굴벽화의 형식적 내용적 측면을 거리미술과 연계시키고 있다. 여기서 동굴이 이 시대의 "미술"의 지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거리 미술 또한 작가가 예술활동을 펼친 '거리'라는 공간 또한 이 미술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흔히 거리미술은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일상적인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행위이다.
'미술이 나에게 일상적인 경험인가?'
간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지하철 벽에 낙서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자체로 평범하지 않은 사태로서 인식될 것이며 누군가는 무관심한 행인으로, 누군가는 관객으로,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 사이 놓안 그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 지하철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형식이나 내용 어느면에서도 예사로울 수 없다. 이후 "성공한" 거리미술가들은 담론과 대중에 의해 저항 정신의 민중 예술가라는 승인을 받지만 사실 그 당시 공공 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한 그 당시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규범 파괴자로서 위치했을 것이다. 정부의 탄압과 그런 정부에 대한 대중의 야유, 그리고 민중의 편에 설 것을 약속하는 예술가의 언어가 삼박자를 이루면서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예술의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키스해링은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의 회화적 특성을 세상 곳곳에 심는 활동을 통해 그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유명해졌다.
키스해링 전시의 서문에는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라는 표어가 크게 적혀있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 해링이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붓고자 했던 궁극적 이유라고 가정해본다면, 대중화되고 상업화된 해링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어떠한 예술적 감화나 예술 향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지에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키스해링의 이미지는 단순한 일러스트로서의 이미지일뿐 그 이상의 어떤 사회적, 예술적 함의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해링은 상업화되는 자신의 그림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제동을 걸기 보다 'Absolut Haring' 처럼 브랜드와 자신의 이미지를 결탁하여 더욱 유명세를 탔다. 물론 '화이트 큐브 안에 있는 정제된 예술품의 이미지', 그리고 '이를 향유할 여유가 있는 소수를 위한 예술'에서 벗어나 대중을 지지하는 행위와 그 과정 안에서의 예술적 표현활동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미술에서 파격적으로 상업미술을 편입시킨 앤디워홀의 행보가 해링의 직전 세대에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는 키스해링의 작품을 통해 그의 공인된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 현재 남아 있는 키스 해링은 그의 이름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친숙함과 거장의 예술을 자유롭게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접근성 외에 어떤 예술적 감화의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대해서는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또한 우리는 큐브 안에 걸린, 결과물로서의 그림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림이 그려진 공간(의 의미)이 삭제되고 분필로 그려진 선만이 남았을 때, 즉 행위로서의 예술이 삭제되고 결과물로서의 액자만이 남았을 때 무언가는 소외된다. 작가의 정신이 소외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하고자했던 것이 "모두를 위한 예술"이었다는 점에서 관객인 우리가 소외된다. 사회운동 또는 그가 예술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저항, 이념, 세계관 그리고 그 예술을 재현하는 방법, 과정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결여되어있는 단순히 결과물로서의 그림에서는 "거장"만이 존재하게된다. 그 안에 관객의 위치는 참 애매하다.
마지막 날 방문한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해야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 데이트의 일환으로 보여지는 연인들, 친구 또는 엄마와 딸, 가끔 외국인까지 다양한 관람객이 줄을 지었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키스해링의 그림들을 마주했지만 과연 그 안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그려넣어 자신의 예술관을 전달하고자 했던 그 행위 안에서 어린 아이를 위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예술, 여성을 위한 예술, 노인을 위한 예술에 대해서, 반전쟁, 인종차별 철폐, 성소수자 해방을 요청한 키스해링의 작품에서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 앙데팡당, 모그, 20190529]

[참고]
김유정 (2018). 거리미술에서 발전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사례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24(2), 1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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