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
영화, 댄서
영화는 무용수 세르게이 폴루닌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어느 한 인물의 역경과 고난을 다룬 실화이기에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자전적 다큐멘터리가 주는 일반적인 속성: 개인의 역사-흥망성쇠-감정의 기복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은 언제나 봐도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흥미를 가지고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특히 실화를 다룬 인물 다큐멘터리가), 스스로의 시간 속에 갇혀 살다보니 자신으로부터 일탈되는 이질적인 (실제의) 삶을 실제로 내 자신이 경험하기에는 대부분 주저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편, 사전에 일반적인 줄거리를 깊게 이해하지 않고 즉시 관람을 시작해도 좋지 않을 까 생각한다. 장르가 ‘춤’과 ‘신체’ 라는 육감적인 주제를 다루다보니 다큐멘터리가 주는 상황 하나하나에 몸을 맡기다보면 주제의 흐름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 무용수 세르게이 폴루닌이 밟아온 역사나 작품정도는 사전에 이해하고 보면 더욱 좋을지 모른다. 이유는 그가 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의 역경과 고난에 대한 환경적인 상황을 영화에서는 되도록 자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보다 세르게이 플루닌만의 감정내부의 흔들림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한 것에 초점이 뚜렷하다.
춤은 개개인의 무용수마다 오랜 시간 끝에 완성된 인격 그리고 그들 배경 뒤로 숨겨진 감정 상태로 드러나는 몸짓의 시그니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성공한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너무나 깊이 있고, 이러한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무용수 자신이나 관람객)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잠시 영화로 돌아가면 (영화의 초점이기도 하고) 세르게이 폴루닌에게는 전환점이 존재한다. 즉 꿈을 가지고 19세에 수석무용수가 된 그였지만, 무용단에서의 기계적인 삶으로 인하여 무용을 그만두는 부분이다. (그만두기보다 발레단을 탈퇴하며 장르를 전환하는 부분이다.) 즉 그에게는 전환점(피벗팅, pivoting)이 있었던 것이다. 특징적인 부분은 영화가 그의 예술적 기량을 논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삶의 동기부여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믿고 발견하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자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발레단에서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스스로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긴다. “(규칙을) 생각하지 않고 느끼는 대로 춤을 춘다.” 이 한마디가 주는 그만의 시그니쳐는 다큐멘터리 ‘댄서’의 분위기고 주요 흐름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몸치이지만 춤을 좋아하여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배우려고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모든 장르가 그럴 것이다. 배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익숙해져가는 그 흐름에 편승하여 나도 모르게 알아가고, 나의 것이 되는 게 더 중요했다는 것 말이다. 영화 ‘댄서’의 흐름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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