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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8 르네상스의 몸(The body of the Renaissance) | ARTLECTURE

No.18 르네상스의 몸(The body of the Renaissance)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Artlecture/
by Celest
No.18 르네상스의 몸(The body of the Renaissance)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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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중세 말기부터 인체 해부는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지만, 15세기 전반이 되고서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인체 해부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제국 시대의 고대 그리스 출신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199?)의 해부학적 지식의 맥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베살리우스는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해부를 시행하고 관찰하였다.

*르네상스의 미술과 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는 벨기에 출신의 의사로 근대 해부학의 길을 연 창시자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베살리우스보다 시대를 앞섰지만, 다빈치의 해부학 노트는 그의 시대에 출판되지 않았기에 대중에게 알려질 수 없었고, 베살리우스가 1543년 출판한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 fabrica libri septem)>>는 르네상스 시대를 넘어서는 매우 혁명적인 책이자 서양 근대 해부학의 시발점으로 간주된다(사진 1).



<사진1> 베살리우스,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 fabrica libri septem)>>, 154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e_Humani_Corporis_Fabrica_Libri_Septem



중세 말기부터 인체 해부는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지만, 15세기 전반이 되고서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인체 해부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제국 시대의 고대 그리스 출신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199?)의 해부학적 지식의 맥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베살리우스는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해부를 시행하고 관찰하였다. 베살리우스 시대에 해부를 위한 시체를 구하는 일은 매우 까다롭고 제한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와 그의 학생들은 무덤에서 시체를 훔치는 불법적인 일까지도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베살리우스는 파두아의 법정에서 사형수들의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받게 되었다. 그 당시 유럽 대학들의 전통적 해부방식은 교수, 조수, 이발사(집도의) 세 영역으로 구분되었는데, 베살리우스는 이를 거부하고 세 영역 모두를 담당하였다. 이를 통해 인체에 관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게 된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인체 해부학적 지식에 200개 이상의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갈레노스의 의견과는 다르게 인간과 원숭이의 골격이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갈레노스는 인체를 해부한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사진 2).



<사진 2> 베살리우스,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fabricalibriseptem)>>, 154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e_Humani_Corporis_Fabrica_Libri_Septem



의학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베살리우스의 <<인체 해부학 대계>>는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에 따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권. 뼈와 관절 -몸 전체를 지지하는 구조물들

2권. 근육 - 능동적인 운동에 관여하는 근육과 인대들

3권. 맥관계통 - 몸 전체에 분포하는 동맥과 정맥

4권. 신경계통 - 신경의 형태와 기능

5권. 배 안의 장기 - 소화기와 생식기

6권. 가슴 - 심장과 허파

7권. 뇌 - 영혼이 있고 감각을 느끼는 곳


목차의 내용을 살펴보면, 림프관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고 현대 해부학에서 나눈 항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이다. 인체 내부를 묘사한 모습을 보면, 상당히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인체 구조를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대의 인쇄술이 매우 진보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베살리우스는 의학자로서의 기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술가적 면모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의 공방에서 수학한 예술가들에게 인체의 이미지를 설명하여 일러스트를 그리도록 하였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목판화 및 구리 도판으로 <<인체 해부학 대계>>를 출판하였다. 또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인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 해부학 일러스트와 함께 저술된 문장의 관계성은 대중에게 단순한 해부학적인 지식을 넘어서 새로운 융합적 아이디어를 얻게 하는데 기여하였다(사진 2). 

 


<사진 3> 베살리우스,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fabricalibriseptem)>>, 154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e_Humani_Corporis_Fabrica_Libri_Septem



흥미로운 사실은 <<인체 해부학 대계>>의 2권 근육편에 묘사된 인체들을 보면(사진 3), 죽은 인간의 몸 같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몸과 같이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묘사된 인체들은 해부학적 지식을 담은 형체로 나타나지만, 그들의 자세 및 동작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심지어 묘사된 인체들의 배경은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풍경으로 표현되어 있고, 묘사된 인체들은 그곳에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 동작이다. 베살리우스는 어째서 해부학 이미지를 위해 해부실에 누워 있는 시체를 묘사하지 않고, 왜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하였을까?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베살리우스는 출판 뒤 그의 해부학 이미지를 보게 될 대중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부실에 누워 해체된 시체의 섬뜩한 이미지보다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체의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혐오와 충격을 우회하여 해부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책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 것에 성공하였지만, 여러 가지 비난은 면치 못하였으며, 이후 베살리우스는 대학을 떠나 왕실의 의사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그러나 베살리우스의 공헌에 힘입어 그 이후의 의학자들은 몸에 관한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에만 중점을 두고 연구하였고, 더 나아가 300여 년 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주장한 진화론도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에 기반을 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르네상스 시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번 칼럼의 일부 정보는 ‘베살리우스의 <<사람 몸의 구조>>, 2021’과 ‘홍덕선, 박규현의 <<몸과 문화>>, 2016’을 참고하였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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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Celest_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며 예술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