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시대의 미술과 몸; 심신이원론적 사유와 기계
근세 시대(the Early Modern era)는 중세(the Middle Age)와 근대(Modern era) 사이의 과도기적 시기이며, 일반적으로 르네상스(14-16세기) 이후부터 프랑스 혁명(1789) 이전까지의 시기를 지칭한다. 근세 시대 철학자인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근세 시기 몸에 대한 이원론적 사유의 틀을 확고하게 다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표 언급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현재도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몸의 이원론(dualism of body and mind)을 주장하였는데, 이원론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o, B.C.427-B.C.347)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B.C.322) 이후 이어 내려져 왔으며, 근세에 이르러 데카르트에 의해 인식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영혼’을 제시하며, 영혼이 지성과 지혜를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파악한다고 보았지만, 데카르트는 이데아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영혼을 사고하는 ‘마음’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였다. 이 맥락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의 몸을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로 간주하였는데, 이러한 관념은 서구사회에 깊숙이 내면화되면서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의 발명을 촉진하는 기반이 되었다.

사진 1. 보캉송, <기계 플루트연주자(Mechanical Flutist)>, 1737
출처: https://flutealmanac.com/mechanical-flutists-history-automaton-musicians/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 1709–1782)은 프랑스 출신의 발명가이자 예술가이며, 세계 최초로 자동화된 베틀을 발명하였다. 그는 일찍이 해부학과 기계 기술을 습득하였는데, 18세 의 보캉송은 식사 때 식탁을 차리고 식사 후에는 정리하는 일을 맡을 인조인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당시 정부 관리들에게 불경한 행위로 여겨져, 결국 그의 작업장은 철거되고 말았다. 보캉송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1737년 <기계 플루트연주자>를 만들어 발표했는데(사진 1),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인간 크기의 인간형 기계인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기계인형은 실제로 작은 북과 피리로 12곡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했다. 보캉송 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기계인형들은 대부분 작은 장난감 크기였고, 보캉송이 제작한 인간 크기의 기계인형은 매우 혁명적인 것으로 인정받았다. 보캉송이 만든 <기계 플루트연주자>는 인간 연주자의 호흡 작용을 정밀하게 모방하여 관(管)과 숨겨진 장치를 이용해 플루트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기계 플루트연주자>의 입술과 손가락은 복잡한 캠(cam), 지렛대(levers), 연결봉(rods) 시스템에 의해 조화롭게 움직였으며, 실제 인간 연주자가 연주할 때와 거의 동일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 기계인형은 인간 연주자가 내는 미묘한 음의 분절(articulation)과 강약(dynamics)까지 재현할 정도로 정교했는데, 이와 같은 수준의 기술적 정밀함은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으며 보캉송의 작품은 기계공학과 자동장치의 역사에서 혁신적인 도약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2. 자케-드로, <기계인형들>, 18세기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aquet-Droz_automata
보캉송보다 약간 뒷 세대인 자케-드로(Pierre Jaquet-Droz, 1721-1790)는 스위스의 시계 장인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자동인형(automaton)를 제작한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자케-드로는 어린 시절 시계 제작자로서 훈련을 받았으나, 그것을 기반으로 자동인형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작가(The Writer)>, <화가(The Draughtsman)>, <연주자(The Musician)>가 있다(사진 2). <연주자>는 미니어처 오르간을 실제로 연주할 수 있었고,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다른 자동인형들은 극도로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찬사를 받았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연주자>는 연주 중에도 숨을 쉬고 고개를 움직이며 눈을 깜박이는 섬세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자동인형들은 현재 스위스 뇌샤텔 미술사박물관(Neuchâtel Museum of Art and History)에 소장되어 지금도 실제로 작동이 가능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사진 3. 만제티, <오토마톤 플루트연주자(The Automaton Flutist)>, 1849
출처: https://flutealmanac.com/mechanical-flutists-history-automaton-musicians/
보캉송과 자케-드로 이후 주목할 만한 발명가는 이탈리아 출신의 만제티(Innocenzo Manzetti, 1826–1877)라는 인물이며, 초기 전화기, 증기 자동차, <플루티스트 자동인형(Automaton Flutist)> 등을 고안하였다. 그의 발명은 평생에 걸쳐 이어져, 수력 장치에서부터 음악 자동인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재정적 이유로 많은 발명품을 특허로 등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역사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남았다. 1849년, 만제티는 대표작인 플루티스트 자동인형을 완성했다. 이 인형은 실물 크기의 인체를 본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제작되었으며, 압축 공기 장치와 기계식 손가락 시스템을 이용해 실제로 플루트를 연주하였다. 보캉송의 <기계 플루트연주자>와 마찬가지로, 만제티의 자동인형 역시 정해진 곡목(repertoire)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 내부 구조는 복잡한 지렛대(levers), 연결봉(rods), 관(tubes)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 장치들이 인형의 입술과 손가락을 조정하여 플루트의 키를 정밀하게 조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만제티의 <플루티스트 자동인형>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나중에 추가한 혁신적인 장치 덕분에 자동인형이 오르간과 함께 더 복잡한 연주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르간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면 <플루티스트 자동인형>은 그 음을 모방해, 인간과 기계가 완벽히 조율된 이중 연주(synchronized performance)를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플루티스트 자동인형>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1877년 만제티가 세상을 떠난 뒤 행방이 전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살펴본 데카르트에서 보캉송, 자케-드로, 만제티로 이어지는 흐름은 근세 이후 서구에서 ‘몸을 기계로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기술적 실험을 거쳐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는 근대 서구가 지녔던 ‘인간은 정교한 기계(mechanistic human)’라는 세계관이 실제 기술적 시도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강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가 제시한 이원론은 이후 자동기계 제작자들의 작업 속에서 구체적 기계-신체 모델로 구현되었고, 이는 오늘날 로봇공학·사이버네틱스·AI가 전제하는 신체 개념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17-19세기에 걸친 자동기계 발전사는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서구 철학의 오랜 질문이 기계적 실천 속에서 물질화되고 가시화된 순간들의 기록인 것이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근세 시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칼럼의 일부 정보는 ‘홍덕선, 박규현의 <<몸과 문화>>를 참고하였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