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평은 창조적 행위다: 메타비평의 의미와 필요성
메타비평의 사전적 의미는 “비평에 관한 비평”으로, 비평 이론이나 특정한 비평가 혹은 비평 비평 상의 논의에 대한 연구를 지칭한다. 비평 상의 해석과 판단의 기저를 이루는 원리에 대한 고찰을 가리키는 메타비평의 근본적인 성찰의 대상은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1)
메타비평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에서 발생한 상호텍스트적 글쓰기와 텍스트에 대한 사유를 통해 비평이 특정 대상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닌 창조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견지할 때 가능하다.(2) 후기구조주의에서 텍스트는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닌 재현의 불확실성과 의미 연관의 공백을 인정하고, 그 공백 때문에 생겨나는 의미 생산의 다성성을 지향”한다.(3) 기존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어진 것과 발견된 것이 예술 텍스트를 구성하고, 옮겨 쓰기, 따라 쓰기, 다시 쓰기 등과 같은 미메시스적 행위가 글쓰기에 제외될 수 없다는 포스트모던적인 태도는 비평 자체를 텍스트로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비평은 (특히 예술비평의 경우) “만일 우리가 다루어야 할 비평적 언급이 없다면 우리는 미학을 할 수 없다. 미학은 마치 그 비평 그 자체가 예술작품과 관계하듯이 비평의 본성과 원리에 관계한다.”라는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 1915-1985)의 언급처럼 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비어즐리에 따르면 비평의 원리는 미적 규범들이 예술작품과 어떤 방식으로 호응하는가를 밝히는 문제로 귀결되며, 이는 미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4) 이처럼 비평이 창조적 행위가 되었을 때 이러한 텍스트를 비평하는 행위인 메타비평은 텍스트의 의미 생산에 기여하며 또 다른 텍스트가 되고, 이에 대한 비평을 발생시킨다.
메타비평은 기성의 제도화된 범주, 문화권력으로 작동하는 비판적 사유를 문제 삼으며 그 자체를 전복적으로 성찰하고, 탈주하고자 한다. 비평이 비평가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메타비평은 비평가가 텍스트 속에서 생산한 비평 대상을 향한 해석과 판단, 검열의 흔적을 밝혀낸다. 비평 자체에 대한 성찰과 완벽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헤게모니를 비평하며 고정된 의미에 물음을 던지는 메타비평은 비평 무용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된다.(5)
2. 미술에서의 메타비평 사례: 김홍희의 미술사론 해체하기
박소현과 조혜옥은 김홍희의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의 미술사론 형성과정과 내용을 살피고 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한 바 있다.(6) 박소현은 김홍희가 90년대에 개최한 일련의 여성미술전시와 2000년대에 이르러 선보인 1990년대 한국미술을 조망한 전시들을 되짚어 보는 방식을 통해 그의 미술사는 ‘통사로서의 양식사’라는 문법을 답습했음을 드러냈다. 김홍희가 세대 구분에 기반한 미술사 서술을 이행하게 된 바탕에는 당대의 미술사 일반을 구성했던 지배적 담론과 연관이 있다고 바라본 조혜옥은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론의 형성과정을 살핀 후 김홍희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미술론은 목적론적인 모더니즘 역사관에 머물고 있음을 밝혔다. 박소현과 조혜옥에 따르면 1세대 페미니즘 미술 연구자이자 1세대 독립큐레이터인 김홍희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주도적으로 구축해온 인물이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는 기획자, 미술사학자, 평론가, 미술행정가로서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에 의해 통사로서 조망되기 시작했고, 후대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에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7)
두 연구자는 김홍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페미니즘 발현을 위한 조건으로 설정한 지점과 남성적 병폐라고 지적한 민중미술과 모더니즘 계열의 양분 구도에 속하는 1980년대까지의 여성주의미술과 모더니스트 여성작가는 온전한 페미니즘 미술이 되지 못한다고 서술한 점을 지적한다.(8) 그가 ‘신세대 미술’이라고 지칭하는 1990년대 한국미술이 양식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한 포스트모던 아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바라본 지점 또한 두 연구자가 문제시하는 부분이다.(9) 김홍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성을 포함한 비주류와 주변의 존재를 인정한 최초의 열림 담론”이며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함으로써 국지적인 여성운동에 머물지 않고 서구 문명의 대전제들을 검증하는 비판적 과업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90년대에 이르러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을 통해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으로 거듭났으며 “여성만의 해방으로부터 남녀 공동의 인간해방, 주체성의 해방운동으로 전환”되었다는 김홍희의 주장은 페미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현상으로서 규정해버린다. 그에 따르면 1950년대까지 여성 미술가들은 1970/80년대 페미니즘 미술의 전사이며, 1970/80년대 페미니즘 미술은 1990년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10)
박소현에 따르면 이러한 김홍희의 미술사론은 그가 주도적으로 기획하거나 기획에 참여한 전시들 《여성, 그 다름과 힘》(1994), 《'95한국 여성미술제》(1995), 《팥쥐들의 행진》(1999),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악동들 지금/여기》(2009-2010), 《X: 1990년대 한국미술》(2016)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여성, 그 다름과 힘》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더니즘 어법으로 여성주의 미술을 수행하는 작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주제, 소재, 작업 방식 상 여성적인 작업을 하는 모더니즘 계열 작가,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을 보여주는 신세대 페미니스트 등으로 나뉘며 남성 중심적인 미술사 분류 방식에 속하게 되었으며, 《'95한국 여성미술제》와 《팥쥐들의 행진》에서 신세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은 김홍희가 형이상학적 전통의 이분법을 탈피하려는 비판적 문화 현상이자 시대정신인 ‘문명비판적인 인식활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전 세대인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계열 여성작가들과는 달리 1990년대 여성미술의 부흥기를 이끈 주체로 평가되었다.(11) 한국현대미술이 1970년대 모더니즘에서 1980년대라는 과도기를 거치며 1990년대에 본격적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발전했다는 김홍희의 역사관을 따라 작품을 평가한다면 내용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해체’에 가까울수록, 형식적으로는 평면 회화를 지양하고 탈 장르에 가까울수록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한 진취적인 작품이 된다고 조혜옥은 밝힌다.(12)
김홍희는 이불을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작업에 활용해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천하는 신세대 페미니스트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로 호명한다. 그러나 김홍희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 서술에 힘을 쏟게 되면서 이불은 ‘뮤지엄’ 그룹에 속한 신세대 미술가로서 재 범주화된다. 김홍희는 뮤지엄을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지는 않지만, 1990년대의 ‘포스트 신세대’ 미술의 등장을 예비한 그룹으로 평가했다. 두 연구자는 페미니즘 미술과 관련할 때는 신세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작가로 분류되어 1990년대라는 현대성을 대표하던 작가로, 포스트모던 미술사로 범주화될 때는 포스트 신세대 미술의 등장을 준비한 과도기적 작가로 여겨지는 이불의 위상 변화를 김홍희의 미술사가 지닌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로 바라본다. 박소현은 김홍희의 포스트모던 미술사는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구분되기에, 1987년 첫 그룹전을 개최하며 활동을 시작한 뮤지엄을 신세대 미술에 속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악동들 지금/여기》에서도 뮤지엄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잇는 교각 역할이 더 큰 것으로 여겨져 전시에서 제외되었다고 덧붙인다.(13)
그리고 두 연구자는 과연 이불이 김홍희가 말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분류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불이 양식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극복하고 종합적인 발전을 이루는 신세대 미술 작가라면, 그의 작업은 이 대립들을 초월하는 새로운 매체 실험을 시도여야 할 것이라고 조혜옥은 말한다. 더 나아가 하지만 이불의 작업 세계는 그러한 해석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그의 대표적 초기작인 <장엄한 광채>(1997)에 대한 김홍희의 비평과 이불의 발언을 비교한다. 김홍희는 이불이 종종 사용한 도미가 왕의 유혹을 받자 자결로 순결을 지켰다는 설화 등장하는 여인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지적하며, 작품이 여성의 순결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반문하고 순결한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오염시킨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띤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생선에 수놓아진 시퀸과 비즈 같은 장식은 “사회적 현실의 요소를 작품에 삽입”하려는 의도로 사용했다는 이불의 발언은 작품의 재료가 “여성들이 수행하는 값싼 수공 노동에 기반을 둔 국가 경제발전 계획에 관련된 계급, 소비, 생산의 역할을 상징하는 기표들”이었음을 일깨우며 작품을 당시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었음을 인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4)
이불, 장엄한 광채, 1997
박소현도 성완경의 평론에서 이불이 “1980년대 중후반과 1990년대 초의 근대적이고 도시화된 한국의 문화·사회적 현상을 다루어온 신세대 예술가”로 언급된 부분과 MOMA에서 열린 전시 《Projects 57: Bul Lee / Chie Matsue》의 팸플릿에 실린 바바라 런던(Barbara London)의 글에 이불이 반체제 인사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점과 <장엄한 광채>와 ‘화엄 광주’를 연결 지어 서술한 내용을 인용하며 이불이 한국 사회 및 미술 제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실천하는 작가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15)
3. 나가며: 모순에서 벗어나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홍희의 미술사는 모더니즘-탈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행되는 계보를 만들고, 1980년대 이전을 모더니즘, 1990년대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범주화한다. 이러한 미술사 서술은 모순적이게도 그가 지향하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반대로 차이와 배제를 발생시킨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은 이불의 이중적인 역사적 위상과 신세대 미술가들의 작업에는 사회·정치적 발언이 아닌 탈이데올로기 감수성이 담겨있을 거라는 평가, 비와 반 모더니즘에 속한 것으로 분류되는 1970-80년대 ‘표현그룹’과 신표현주의 여성 작가와 80년대 후반 민중미술 계열의 리얼리즘 여성 작가의 작업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미술로 규정되는 현상 등이다.(16)
모더니즘적 역사관에 머물고, 스스로 남성적 병폐라고 명시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대립이라는 양분 구도를 반복한 김홍희의 미술사에 조혜옥은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에 대한 80년대의 정치적 ‘여성미술’과 90년대의 ‘신세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를 단절된 독립체가 아닌 동시성과 연속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 시대를 넘어 공유하는 동시대성과 세대 간을 이어 흐르며 변화해 온 연속성 그리고 각 시대의 조건과 서로 다른 작가들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의식과 표현 방식에서 오는 차이를 다차원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라는 그의 제안은 모더니즘 역사관에서 주변화되고 보이지 않는 타자를 생산하는 ‘차이’를 타자를 다시 가시화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변화시킨다.(17)
김홍희는 최근 출간한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에서 시대나 세대가 아닌 몸, 퀴어 정치학,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컬렉티브 등과 같은 “현대 페미니즘이 직시하고 있는 화두 열다섯 가지”를 선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작가를 배치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니어 작가와 주니어 작가, 생각을 공유하는 동년배 작가 두세 명 정도를 한 화두에 분포시켜 다차원적인 의미를 가시화하는 ‘차이’를 느끼게 했다.(18) 책 앞머리에 배치된 「한국 현대 페미니즘 미술의 흐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1970년대 비모더니즘, 1980년대 반모더니즘, 1990년대 탈모더니즘”에 이어 “1990년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등장과 신세대의 활약”에 서술하고, 2000년대 후기신세대와 2010년대 ‘넷페미’의 등장이라는 내용을 더하며 그동안 구축해온 미술사에 살을 덧붙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이피, 이미래와 함께 「몸의 미술」이라는 화두(장)에 소개된 이불에 대한 해석은 기존보다 다채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김홍희는 인간을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되는 의미화의 산물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던 인간학에서 출발한 후기신체 담론이 현대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의 주요 화두로 부각되었고, 몸이 정치학에서 정체성의 문제가 섹스와 젠더의 문제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이불ㅇ느 이를 일찍이 깨닫고 자신의 몸을 작업의 매체이자 주제로 삼은 작가로 언급되었으며, 그의 <낙태>(1989)와 <아토일렛 Ⅱ>(1990),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1990) 등이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부계적 폭력과 억압적 권력 구조를 고발한” 작업으로 책에 명시되었다.(19) <장엄한 광채>는 다산과 여성의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 값싼 여성 노동력의 대명사인 수공예와 연결되어 페미니즘적인 동시에 인간 신체가 아닌 날생선이라는 대리 신체를 활용한 작업으로 서술되었다.(20) 이는 김홍희의 목적론적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에서는 포착되지 못하는, 비가시적인 타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던 해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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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민주식, 「기획심포지엄 메타비평, 그 현대적 과제와 실천 : 메타비평으로서의 미학」, 『미학예술학연구』 32권(2010), 6쪽. 송희복, 『비평사와 동시대의 쟁점 : 송희복 메타 비평집』(서울:월인, 1999), 25쪽. 2) 서대정, 「예술비평과 메타비평 그리고 권력의 변증법」, 『민족미학』 12권 1호(2013), 138, 157쪽. 3) 서대정, 위의 논문, 157쪽. 4) 서대정, 위의 논몬, 137-138쪽. 5) 송희복, 위의 책, 34쪽. 서대정, 위의 논문, 157-159쪽. 6) 여기서 언급하는 연구는 박소현, 「김홍희의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과 이불의 역사적 위상」,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0집(2020)과 조혜옥, 「이불의 ‘전력으로 달아나는’ 예술,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미술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1집(2021)임. 7) 박소현, 「김홍희의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과 이불의 역사적 위상」,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0집(2020), 419쪽. 조혜옥, 「이불의 ‘전력으로 달아나는’ 예술,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미술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1집(2021), 219쪽. 8) 박소현, 위의 논문, 421, 428쪽. 9) 박소현, 위의 논문, 423, 432쪽. 조혜옥, 위의 논문, 225쪽. 10) 박소현, 위의 논문, 426-427쪽. 11) 박소현, 앞의 논문, 423-426쪽. 12) 박소현, 위의 논문, 225쪽. 13) 박소현, 위의 논문, 428-433쪽. 14) 조혜옥, 앞의 논문, 229, 236-237쪽. 15) 박소현, 앞의 논문, 436쪽. 16) 박소현, 위의 논문, 437-438쪽. 조혜옥, 앞의 논문, 226-228, 232쪽. 17) 조혜옥, 위의 논문, 234-236쪽. 18) 김홍희, 『페미니즘 미술 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서울:열화당, 2024), 11-12쪽. 19) 김홍희, 위의 책, 47-49쪽. 20) 김홍희, 앞의 책, 51쪽. |
참고문헌 단행본 송희복, 『비평사와 동시대의 쟁점 : 송희복 메타 비평집』(서울:월인, 1999). 김홍희, 『페미니즘 미술 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서울:열화당, 2024). 논문 민주식, 「기획심포지엄 메타비평, 그 현대적 과제와 실천 : 메타비평으로서의 미학」, 『미학예술학연구』 32권(2010). 서대정, 「예술비평과 메타비평 그리고 권력의 변증법」, 『민족미학』 12권 1호(2013). 박소현, 「김홍희의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과 이불의 역사적 위상」,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0집(2020). 조혜옥, 「이불의 ‘전력으로 달아나는’ 예술,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미술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1집(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