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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THER SIDE | ARTLECTURE

THE OTHER SIDE


/Art & Preview/
by 쇼코는왜
THE OTHE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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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다양한 이야기와 서사가 교차하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그림 하나하나가 정교한 테크닉으로 그려진다. 즉흥성이란 말이 무색하게 잘 짜인 그림의 구조 속에서 관객은 그 자체로 그림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된다. 그간 봐왔던 정적인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다. 김정기 작가의 기억 속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섬세한 관찰 능력과 방대한 사전 지식에 놀라게 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작가의 말을 듣다 보면 그림에서 관심도 없던 부분이 눈에 띄게 되고 또 한 번 펜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펜을 덧칠할 때면 숨겨진 상황이 떠오르기도 한다.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은 분명 이런 데에 있다.

백지 공포증, 글쓰기 혹은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얀 종이 위에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을 때 오는 심리적 압박감,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선 하나, 첫 줄을 쓰기까지 몇 시간이고 고민하기도 한다. 나도 글을 쓰면서 어쩌면 숙명이라 생각했던 이 증상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는 김정기 작가의 말은 충격이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종이의 한편에서부터 시작해 거침없이 뻗어가는 일명 라이브 드로잉은 동판화를 손으로 찍어내는 것만 같았다. 시작이 어디든 결국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손길이 나를 전시장으로 이끌었다. 김정기 작가의 첫 개인전 <The Other Side>이다.

 


<김정기, But We Will March Out, 2011>

 



김정기 작가는 필자에게 네이버 웹툰으로 더 익숙하다. 그리 대중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나름의 마니아층이 있었던 TLT는 내가 본 김정기 작가의 첫인상이었다. 그 웹툰이 연재한 지도 10년이나 지났을까? 전시에서 본 김정기 작가의 모습은 사뭇 남달랐다. 과장된 표현 아래 사실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고, 그러면서도 그림의 주제를 한정 짓지 않았다. 샤프하면서도 날카로웠던 웹툰의 그림체는 그저 그의 일부분이었다.

 


<김정기, Movie Inspirations Saving Private Ryan, 1998>

<김정기, Self, 2009-2020>

 


때로는 동물을 주제로 한번은 오토바이, 군인, 역사, 일상, 영화, 게임 등 끊임없는 관찰과 탐구로 그려낸 드로잉은 사실적이라기보다 위트를 가미한 만화적인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작가의 말에서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는데 작가는 어떤 새로운 대상을 그릴 때 단순히 그것을 보고 그리기보다는 뉴스나 평소 이미지로 봐왔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그린다고 한다. 가령 방직 공장의 기계를 그릴 때 작가는 방직 공장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얻어온 이미지를 재조합해 그럴싸한 기계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대상을 시각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수천 장에 달하는 드로잉 연습 그리고 지금까지도 매일 쓰고 있는 그림일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김정기, Heading towards a Future Somewhere, 2016>


<김정기 라이브 드로잉>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정기 작가 개인전의 하이라이트는 작가가 직접 와서 그리는 라이브 드로잉이다. 흰 종이 위에서 자유롭게, 하지만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그려내는 퍼포먼스는 전시의 모든 내용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었다. 완성된 그림이 있었으나 그건 이미 라이브라는 개념과는 멀어져 있고, 라이브 드로잉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놓은 건 생동감이 없다. 라이브 드로잉하는 과정을 얼핏 보면 그리고 싶은 걸 그냥 그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미 시작하면서부터 70% 이상의 구도는 이미 구상한 채 진행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먼저 그려진 그림과 뒤이어 그려진 그림이 엇갈리거나 서로를 관통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고, 마치 복사기처럼 작가의 손에서 빠르게 프린팅된다.

 



<김정기, Parasite, 2019>

 


다양한 이야기와 서사가 교차하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그림 하나하나가 정교한 테크닉으로 그려진다. 즉흥성이란 말이 무색하게 잘 짜인 그림의 구조 속에서 관객은 그 자체로 그림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된다. 그간 봐왔던 정적인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다. 김정기 작가의 기억 속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섬세한 관찰 능력과 방대한 사전 지식에 놀라게 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작가의 말을 듣다 보면 그림에서 관심도 없던 부분이 눈에 띄게 되고 또 한 번 펜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펜을 덧칠할 때면 숨겨진 상황이 떠오르기도 한다.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은 분명 이런 데에 있다.

 

완성된 그림을 보는 행위를 전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된다. 이미 실험적인 미디어아트와 보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전시를 많이 봐왔지만, 이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어쩌면 전시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직접 와서 그리는 그림은 매일,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의 경외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전시정보: https://artlecture.com/project/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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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쇼코는왜.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