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보 530점>
이것은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 제목이다. 작가는 가로 3m, 세로 1.8m의 패널 4개로 구성된 대형 화면에 국보 530점을 색연필로 그려 넣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보 1호 숭례문부터, 불국사 다보탑, 경주 첨성대와 같은 국보들을 말이다.


그런데 딱 한걸음만 더 가까이 다가가 작품을 들여다보자. 고개를 꺾어 왼쪽 맨 위를 올려다보면 국보 1호 ‘숭례문’이 제일 첫 번째로 그려져 있고 두 번째 자리엔 국보 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면 2호 자리엔 십층석탑 대신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3호가 있어야 할 3번째 자리에 우리가 찾는 십층석탑이 그려져 있다. 처음엔 국보 530점을 색연필로 그린 평범한 작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평범한 작품이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의 국보는 2023년 10월 기준 총 338점이다. 그러니깐 <국보 530점>이라는 숫자는 허구이다. 그렇다면 갈라 포라스-김이 세밀하게 묘사해 그려 넣은 이 530점의 유물들은 무엇일까.
사실 작가가 그린 530점은 대한민국만의 국보가 아니다. 남한과 북한의 국보를 합산한 수치이다. 그래서 국보 2호가 있어야할 자리에 그려져 있던 낯선 이미지는 북한의 국보 1호 ‘평양성’이었다. 이렇게 작가는 남한 국보 1호, 북한 국보 1호, 남한 국보 2호, 북한 국보 2호순으로 남과 북을 번갈아 총 530점의 국보를 한 화면에 그려 넣었다.
왜냐하면 '국보'라는 문화재 구분방식의 시초가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보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엔 '남과 북'이 아닌 '조선'의 문화유산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속해 있었음을 드러낸다.
국보.
단어만으로도 무게감을 드러내는 신성한 이것은 사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가볍다. 국보 1호, 2호와 같은 넘버링이 철저한 가치 평가를 통해 지정됐을 것 같지만, 일제 강점기때 조선 총독부 건물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부여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총독부 건물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된 것이다.
이렇게 갈라 포라스-김은 가려져 있던 것을 조용히 드러낸다. 국보를 현재 기준 338점이 아니라,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 조선이라는 시간대까지 올라가 530점을 그림으로써, 국보라는 관리 시스템의 가벼움을 드러낸다. 이것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든 이념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2. 작가는 가려져 있던 것을 드러내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갈라 포라스-김은 본래 모습, 본래 목적, 본래 기능에 주목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덧붙여진 현대인들의 이념, 제도 등을 걷어내고 그것이 갖고 있는 본래의 그 무엇 말이다. 고구려의 유물이었다가, 조선의 보물이었다가, 북한의 국보가 된 어떤 것도 원래의 기능으로 존재하길 염원한다. 누군가의 시선이 개입되어 덧입혀진 기능이 아닌, 본래 그것의 기능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조용히 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의 질문이 나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나의 본래 기능은 무엇일까.
나는 박물관에 박제되어 원래의 기능을 잃고 사는 소장품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나의 본래 기능은 무엇인 걸까…
+ [덧붙임] 이번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 《국보》는 기존 그녀의 전시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실제 국보 10점이 그녀의 작품 <국보 530점>과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시대의 국보부터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실제 미술관에 소장품으로 보존 전시되는 방식을 구경하며 그 국보들이 갈라 포라스-김에 의해 그려진 <국보 530점> 작품과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전시 공간을 거닐다 보면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어딘가 즈음에 존재하는 새로운 시간대에 있는 것 같은 묘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