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또한 나의 이론적 발전의 산물로, 나는 점점 더 나의 예술 개념이 사물이나 사건을 만드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작품의 미학적이지 않은 요소 모두를 인정하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전통적 책과 이티스트 북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책은 여러 명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티스트 북은 한 명이 전체 제작에 대해 책임을 진다. 내용과 형식 그 모든 것들을 말이다. 당신은 그것을 예술과 비교할 수 있다. 전통적 예술에는 예술가와 갤러리 주인, 비평가 등과 같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여기서 예술가는 이 모든 요소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나에게 아카이브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시도이다. 나는 아카이브를 작업으로 간주하지만 그 작업은 공간이자 공적인 기관을 의미한다. 이것은 타인의 작업이고, 나의 사회적 기능이다. 여기에는 시간적 제한이 없다. 아카이브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 한계도 없으며, 꾸준히 성장하며, 아직도 살아있다..”
『아티스트 북을 향한 책 (Van Boek tot Kunstenaarsboek)』 1981 |

울리세스 카리온(Ulises Carrión)은 1972년 인아웃센터(in-out center)를 암스테르담에 설립하면서 네덜란드 문화예술계에 등장했다. 인아웃센터는 랄 마로킨(Ral Marroquin), 피터 몰(Pieter Mol), 흐레이든 프리드핀손(Hreinn Fridfinsson)이 카리온과 함께 미첼 카르데나(Michel Cardena)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이 장소는 1972년부터 1975까지 작가들이 본인이나 초청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기능했다. 카리온은 이곳에서 전시를 하고 인아웃프로덕션이라는 이름으로 3권의 책을 출판했다.

1975년 4월 인아웃 센터가 문을 닫자 그는 암스테르담의 헤렌그라크트 227번지에 아더 북스 앤 소(Other Books and So)라는 이름의 갤러리 상점을 열었다. 이곳은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예술가들이 만든 책과 다양한 형식의 문서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서점이자 갤러리였다. ‘아더 북스’는 새로운 장르의 책을 지칭하는데, 더 이상 문학적이지 않고 예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예술이 된 책을 이야기한다. ‘앤 소’는 처음 출현했을 때 예술계에서 인식할 수 없었고 분류할 수 없었던 출판물 모두를 포함한다. 이곳에서는 예술가가 발행한 작업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회성 문서들, 엽서, 그래픽 작업, 음반, 카세트 등 모두를 예술출판물로 다루었다. 아더 북스 앤 소가 운영되었던 3년 동안 이곳에서는 50회 이상의 전시, 상영회, 퍼포먼스와 공연이 조직되었다.

카리온은 1980년 아더 북스 앤 소 서점 활동을 접고, 블룸그라흐트 121번지에 아카이브를 설립하였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었던 이 아카이브는 얼마 못 가 작업을 위한 시간적 여유 확보와 경제적 어려움의 이유로 카리온이 거주하고 있는 텐 카테스트라트(Ten Katestraat)로 장소를 옮겨야했다.
카리온은 개념미술가이자, 에세이스트, 책 기획자, 비디오 제작자, 갤러리-상점인 ‘아더 북스 앤소’의 설립자이자 잡지 이퍼메라(Ephemera)의 편집자,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의 기획자였으며 수집가로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그가 걸어간 모든 행보들이 하나의 예술적 작업의 구조를 갖도록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OL9ZL8sbyU
그의 사운드 작업<Hamlet for Tow Voices>는 LP의 형태로 발표된 <The Poet’s Tongue>에 수록된 작업중 하나이다. 이 사운드에서는 14분 54초 동안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로 번갈아가며 나열한다. 하나의 사운드 작업에서 고전문학을 새로운 매체로 재해석하여 성별과 언어, 문학, 예술, 권력과 정체성 등 다양한 층위의 고민 녹여낸 작업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이 작업은 추후에 비디오로 만들어진 오디오 작품이며, 이름과 주소가 포함된 책과 비디오, 오디오 작품과 주제 전시로 새롭게 발행되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은 시각적, 청각적, 문학적 측면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예술가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고민하고 작품 영역의 한계를 정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자기 작품의 체계와 유통을 작품을 구성하는 동등한 요소로 포함시킬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예술가는 최종 작품의 ‘형식적’구성 요소가 되는 전략을 만들게 된다.”
카리온은 전통적인 산문과 시의 저자는 대체로 글에만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아티스트 북 출판의 경우, 구상에서 배포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생산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저자의 책임이 있는것이다. 책은 한눈에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성을 가진다. 때문에 사진, 고무도장과 같은 비언어적인 속성을 지닌 기호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것을 반영하듯 메일아트 프로젝트 <예술가의 우표와 소인(Artists Postage Stamps and Cancellation Stamps)>전시를 기획하고 그것을 다시 또 출판물의 형태로 발간하였다.
그는 책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책의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구성 방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나 이 모든 것들이 한권의 책으로 응집해있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흥미롭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멕시코 출신으로 유럽 예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획득한 그는 글을 통해 현대적인 아티스트 북의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최근 그의 글과 활동을 새롭게 발견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들을 통해 그의 생애와 작업에 관한 연구들이 차차 진행되고 있다. 그의 에세이와 작업들이 보다 활발하게 연구되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그의 작업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