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우리에게 현실을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 복제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사진의 본질이자 숙명입니다.
하지만 때로 사진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듯합니다. 사진가 한금선이 찍은 레바논 난민 캠프 작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는 “고통과 일상이 동의어"가 되어 버린, 하늘에서 내리는 빛 저편 어둠에 “눈물이 내리”는1) 풍경 앞에서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지를 고민한 것 같습니다.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전시 풍경
전쟁에 떠밀려 난민이 된 이들의 생활 풍경은 남루합니다. 부족한 지원과 낡은 시설 안에서 연명하는 삶은 희망이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것만 같습니다.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저널리즘 사진이 복제한 난민들의 현실은 우리에게 그들의 슬픔과 고난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그런데 난민 캠프에 간 한금선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건 그들이 아닙니다. 그녀는 슬픔을 보여주는 것이 꼭 슬픈 이들 자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전시 풍경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전시 풍경
작가는 덕지덕지 기워 세운 그들의 집과 저 멀리 캠프를 둘러싼 설산과 호수에 비친 하늘과 나무의 풍경을 프레임에 담았습니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천막 밖으로 드러난 발이나 역광으로 담긴 실루엣이 전부입니다. 어쩌다 실내로 들어가 찍은 풍경 또한 텅 비어 있습니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사과 모양의 시계가 기묘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래도 그녀가 얘기하려는 난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이 보이진 않지만 그들을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전시 서문을 쓴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말로 사진가의 의도에 한발 더 다가가 봅니다.
“... 그들의 기억을 들춰내지 않고도, 그들의 표정을 담아내지 않고도,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줄곧 '난민'이라는 말이 보여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 박혜진” 2)
평론가는 자신이 작가의 의도를 오독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전 이 표현이 사진가가 생각했던 것에 가장 근접했다고 느낍니다.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전시 풍경
다큐멘터리 사진가 한금선은 서울역 앵벌이와 노숙자, 용산 참사와 밀양 송전탑 사태, 두메산골 마을의 노인까지 우리 주변의 다양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그리고 학살을 겪었던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와 레바논 난민 캠프 작업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디에 가든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프레임을 보면 그 안에 담은 진심이 느껴집니다.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전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