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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빛의 화가 라울 뒤피의 생애와 라울 뒤피의 작품으로 만나보는 파리 | ARTLECTURE

색과 빛의 화가 라울 뒤피의 생애와 라울 뒤피의 작품으로 만나보는 파리


/Art & History/
by 김가희
색과 빛의 화가 라울 뒤피의 생애와 라울 뒤피의 작품으로 만나보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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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1899년 10월 어느 날 고향 르 아브르를 떠나 파리 생라자르 기차역에 도착한 라울
화가를 꿈꾸었던 청년은 그 시대 파리를 찾았던 모든 예술가처럼 몽마르트로 향한다.
평지뿐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 몽마르트
그곳에서 마주한 파리의 황홀한 전망은 이 청년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는데
색과 빛의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을 통해 그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파리를 만나본다.


1877년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라울 뒤피가 태어나다

    

<라울 뒤피, 자화상, 1898, 퐁피두센터> - 이미지 출처 https://www.centrepompidou.fr

<르아브르 항구, 1898> - 이미지 출처 https://www.centrepompidou.fr



1877년 6월 3일 라울 뒤피는 노르망디의 항구도시인 르아브르(Le Havre)에서 레옹-마리우스 뒤피(Léon-Marius Dufy)와 마리-위제니 르모니에(Marie-Eugénie Lemonnier) 사이에서 아홉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회계사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1891년 14살이었던 라울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가족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야 했기 때문에 꿈을 접고 르아브르 항구에서 커피 수입을 하는 회사에서 5년간 일한다.



르아브르를 떠나 파리에 정착하다

 


<라울 뒤피, 몽마르트에서 바라본 파리, 1902, 개인컬렉션> - 이미지 출처 https://www.parisupdate.com



라울은 샤를 륄리에(Charles Lhuillier, 1824-1898)의 야간 수업에서 그림을 배우지만 더 깊은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르아브르를 떠난 라울은 파리로 가 국립 미술학교(l’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등록하고, 레옹-보나(Léon Bonnat, 1833-1922)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친구 에밀-오톤 프리에스(Émile-Othon Friesz, 1879–1949)를 만난다. 라울은 1899년에는 파리 몽파르나스 근처인 9, rue Campagne- Première에 정착하지만, 이후 몽마르트에 12, rue Cortot로 이사하게 되면서 오톤 프리에스와 함께 지내게 된다(현재 이곳은 ‘몽마르트 미술관’이 되었다).



몽마르트 미술관

Musée de Montmartre

    


<몽마르트 미술관> - 이미지 출처 https://museedemontmartre.fr



몽마르트 미술관은 1960년 몽마르트 언덕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인 곳에 지어졌다. 정원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에밀 베르나르(Émile Bernard), 라울 뒤피(Raoul Dufy), 샤를 카무앙(Charles Camoin),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그리고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와 같은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였다. 이곳에서는 회화 작품부터, 포스터 및 드로잉까지 포괄하는 상설 컬렉션과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기획전시까지 개최되고 있다.


- 사이트 : https://museedemontmartre.fr

- 주소 : 12 Rue Cortot, 75018 Paris, 프랑스



파리와 사랑에 빠지다


주머니에 연필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거리를 걸어 다니길 좋아하는 이 젊은 르아브르 청년은 금방 파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학교에 가기 위해 라울은 종종 라피트 거리(Rue Laffitte)를 지나다녔는데, 그러면서 화상 뒤랑-뤼엘(Durand-Ruel)이 전시하는 인상파 작품을 보았고, 화상 앙브아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 집에서는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과 폴 세잔(1839-1906)을 발견한다. 라울은 파리에서 지내며 미술관에 자주 다녔는데, 특히 루브르 박물관을 자주 찾았다. 또한 라울은 도시의 정원을 산책하며 관찰했고, 일상의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들을 담았다.



마티스와 야수주의 연구하다

    


<앙리 마티스, 사치, 평온, 쾌락(Luxe, calme et volupté), 1904, 오르세 미술관> -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

<라울 뒤피, 깃발이 있는 거리(La Rue pavoisée), 1906> - 이미지 출처 https://www.centrepompidou.fr




1905년에 라울은 살롱 데 장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에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사치, 평온, 쾌락(Luxe, calme et volupté), 1904>을 보게 되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의 야수적인 스타일에 흠뻑 빠진 라울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야수주의(fauvisme)는 라울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한 한 단계일 뿐이었고 1907년부터는 빠르게 벗어나게 된다.


<라울 뒤피, 깃발이 있는 거리(La Rue pavoisée), 1906>는 1906년 여름 라울이 르 아브르에 있을 때 그린 그림으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그린 <몽토르게이 거리, 1878, 루앙 보자르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 라울은 이 주제를 여러 버전으로 담았는데, 전경의 삼색기의 선명한 색이 녹색과 분홍빛을 띠는 집과 대조되며 부각되는데, 이런 스타일은 야수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폴 세잔과 입체주의를 연구하다



<라울 뒤피, 에스타크의 나무들(Arbres à L'Estaque), 1908> - 이미지 출처 https://www.centrepompidou.fr



그 시대 모든 화가와 마찬가지로 라울은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의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에게 큰 인상을 받는다. 이때부터 형태 기하학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1908년 브라크와 함께 에스타크(L’Estaque)로 여행을 가면서 그는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라울은 형태를 단순화하면서 색상을 부드럽게 하며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입체파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선의 자유로움을 만끽함으로써 라울 특유의 곡선과 아라베스크 장식, 그리고 가볍게 스케치 된 형태가 주는 효과를 연구하며 발전시킨다.



장식 예술과 만나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책> - 이미지 출처 https://fr.wikisource.org



1909년 라울은 유명한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Paul Poiret, 1879-1944)를 만났고, 그와의 저녁 식사 중에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를 알게 된다. 시인의 요청에 따라 라울은 <오르페우스의 우화집(Le Bestiaire ou Cortège d' Orphée)> 컬렉션을 설명하기 위한 목판화 30점을 제작한다. 이 계기를 통해 아폴리네르는 라울을 파리 문학계에 소개한다. 몇 달 후, 예술가의 목판화에 매료된 폴 푸아레는 이러한 모티프를 직물로 바꿀 것을 제안했고, 이때부터 라울의 장식 예술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킨다.

 


<라울 뒤피, 랑빠스 구엘마에 있는 아틀리에, 1935-1952>



1911년 라울은 젊은 아내 외제니-에밀리엔 브리송(Eugénie-Émilienne Brisson)과 함께 몽마르트의 5, impasse Guelma로 이사한다. 1953년까지 그는 이곳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이사를 간 해에 그는 폴 푸아레와 함께 ‘라 쁘띠뜨 유진(La petite Usine)’이라는 직물 인쇄 회사를 만든다.


라울 뒤피가 직물 디자이너이자 장식가로서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된 계기는 리옹의 실크 회사인 비앙키니-페리에(Bianchini-Férier)와 계약을 체결한 1912년부터였다. 그곳에서 그는 기념비, 꽃, 동물, 인물, 그리고 색채에 대한 그의 성향과 같은 주제의 장식 스타일을 발전시킨다.



뒤피 스타일이 탄생하다


1919년 라울의 그림은 새로운 역동성을 얻으며 ‘유동성’, ‘색상’ 및 ‘움직임’이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한다. 그가 설정한 진정한 ‘뒤피 스타일’의 독창성은 형태와 색채의 분리에 있다. 연필, 먹, 얇은 붓으로 그은 드로잉이 주는 형태는 화면을 구성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색은 때론 넓은 평면으로, 때론 활력 있고 재빠른 줄무늬로 번져 넓게 퍼져 순수하고 화사한 톤으로 이루어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로 그의 랑빠스 구엘마 아틀리에를 그린 그림처럼 말이다. 실제 아틀리에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그림 속 모습은 밝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선들은 스케치를 하다 만 것처럼 정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라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1920-30년대에 그려진 것으로, 이런 ‘뒤피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나서이다.



빛과 색으로 파리를 가득채우다

 


<라울 뒤피와 앙드레 구르, 파리 파노라마 태피스리, 1933> - 이미지 출처 https://collection.mobilier-national.fr



라울 뒤피는 1923년에 파리와 그 기념물을 주제로 태피스트리 시리즈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태피스리는 라울과 가구 디자이너 앙드레 구르(André Groult)가 함께 만들었다. 라울이 파리의 도시 풍경을 공중에 떠 있는 시점에서 담은 것으로 과거의 파노라마를 되살려 라울만의 방식으로 창조된 새로운 파노라마다. 시원하게 트인 파리를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파리 곳곳에 있는 상징적인 기념물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으로는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지어진 에펠탑이 있고, 그 뒤에는 샤이요 궁과 개선문이 보인다. 개선문 주변으로는 시원하게 뻗은 대로들이 있다. 현재도 볼 수 있는 이런 큰 대로들은 19세기 중반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정비되었다. 화면 중앙에 센강 위로는 라울이 즐겨 찾았던 루브르 박물관이 있고, 가장 위에는 몽마르트 언덕이 보인다. 



라울의 전기 요정

 


<라울 뒤피, 전기 요정, 1952-1953> - 이미지 출처 https://www.mam.paris.fr



1936년 장식 예술가로서의 그의 재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에게 여러 차례 주문이 이루어졌다. 그는 샤요 궁(Palais de Chaillot) 극장의 반원형 벽을 장식하기 위해 <센강, 파리에서 바다까지(La Seine, de Paris à la mer)>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는 1937년 국제 예술 및 기술 전시회(l’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et des techniques)에서 전기 전시관을 위해 <전기 요정(La Fée Electricité), 1952-1953>을 제작한다. 현재는 파리시립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에 소장되고 있는 이 프레스코화는 250개의 판에 그려진 것으로 높이가 무려 11미터 세로가 60미터에 달한다. 전기와 빛의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에 바치는 경의를 표현한 작품으로, 전기가 인류에게 가져온 눈부신 발전에 대한 찬미를 라울 특유의 밝고 화려한 색채 위에 자유로운 선으로 그려졌다. 이 작품은 라울의 최대 역작이 되었다.


파리시립 현대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미술관> - 이미지 출처 https://www.mam.paris.fr



파리시립 현대미술관은 1937년 국제 예술 및 기술 전시회(l’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et techniques dans la vie moderne)를 위해 지어졌다. 지금은 150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가장 큰 근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피카소(Picasso), 뒤피(Dufy), 모딜리아니(Modigliani), 드랭(Derain), 피카비아(Picabia), 샤갈(Chagall)뿐만 아니라 볼탕스키(Boltanski), 파레노(Parreno) 및 피터 도이그(Peter Doig) 등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예술계 주역들을 조명하고 있다.


- 사이트 : https://www.mam.paris.fr

- 주소 : 11 Av. du Président Wilson, 75116 Paris, 프랑스



오직 즐거움만을 담다


전기처럼 라울의 시대는 인류가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그런 놀라운 진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그런 번영을 누렸던 파리이기에 그 시대의 모든 예술가가 파리를 찾았다. 라울의 그림 속 모습처럼 파리는 어두운 밤에도 빛이 꺼지지 않는 ‘빛의 도시’이자,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낭만의 도시’였다. 나중에 프랑스 사람들은 이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고적으로 ‘아름다운 시대’를 의미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렀다.


르 아브르에서 파리로 온 라울도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에 살며 가장 아름다운 파리를 목격하지만, 사실 이 급격한 발전과 번영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결국 이 모순들은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야기한다. 하지만 라울은 마치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볼 수 없었던 눈을 가진 것처럼 이 시대의 모순, 아픔, 어두움을 모두 지워버린다. 미국에서 건너온 작가 겸 컬렉터였던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뒤피의 작품, 그것은 쾌락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라울의 그림은 그 시대의 어두운 것들을 거두어 내며 색과 빛, 자유로운 선이 존재함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의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오직 즐거움만을 느끼게 한다.


최근 들어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전시로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전시장인 더현대서울에서 라울 뒤피의 회고전을 개최한다고 한다. 20세기 현대 예술의 주역 중 한 명인 라울 뒤피의 회화작품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 등 총 130여 점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될 예정이며, 전시 제목도 ‘라울 뒤피 : 행복의 멜로디(Raoul dufy : la mélodie du bonheur)’로 ‘뒤피 스타일’로 담아낸 황홀감과 즐거움을 자아내는 그의 예술적 여정이 어떻게 선보일지 기대된다.


- 전시 기간 : 2023.5.17-2023.9.6

- 사이트 : @pompidou_thehyundai_seoul

- 주소 : 더현대 서울 

- 관련링크 : https://artlecture.com/project/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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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1877-1953)의 생애 요약


1877년 6월 3일 르 아브르(Le Havre)에서 출생

1893년 르아브르 시립미술학교에서 샤를 륄리에(Charles Lhuillier)의 야간 수업을 들음. 그곳에서 에밀-오톤 프리에스(Émile-Othon Friesz) 을 만나 우정을 쌓음. 8월 데생 초급 과정에서 2등 상을 받음

1898-1899년 1년간 군 생활을 함. 르 아브르시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등록함. 레옹 보나(Léon Bonnat)의 아틀리에에 들어감

1900년 오톤 프리에스와 함께 몽마르트 12 rue Cortot에서 생활하기 시작

1901-1904년 처음으로 살롱 데 자르티스트 프랑세(Salon des Artistes français)에서 전시

1902년 화상 베르트 웨일(Berthe Weill)와 알게 됨

1903년 살롱 데 장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에 처음으로 참여

1904년 6점의 그림으로 살롱 데 장데팡당에 두 번째로 참여

1905년 앙리 마티스의 <사치, 평온, 쾌락(Henri Matisse, Luxe, calme et volupté)>을 통해 야수주의를 발견

1906년 살롱 데 장데팡당 참여와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 처음으로 참여. 10월 6일부터 11월 15일까지 베르트 웨일의 도움으로 개인전 개최

1907-1908년 여러 살롱에 출품.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과 에스타크(l’Estaque),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과 마르티그(Martigues) 여행

1909년 외제니-에밀리엔 브리송(Eugénie-Émilienne Brisson)와 함께 파리 rue de Séguier에 정착. 패션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와 만남

1910년 빌라 메디치 리브르(Villa Médicis libre)에 머물며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작품을 위한 목판화 30점을 제작

1910년 살롱 데 장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에 출품

1911년 2월 9일 외제니-에밀리엔 브리송과 결혼. 5, impasse Guelma로 아틀리에를 구함. 폴 푸아레(Paul Poiret)와 함께 141, Boulevard de Clichy에 ‘라 쁘띠뜨 유진(La petite Usine)’ 직물 인쇄 회사 설립

1912년 리옹의 실크 회사인 비앙키니-페리에(Bianchini-Férier)와 3년 계약을 맺음

1914-1918년 두 번째 독일 여행 중 헤르바르트 발덴(Herwarth Walden)을 만나고, 1차 세계 대전 발발. 1918년에 파리 전쟁 미술관-도서관(musée-bibliothèque de la Guerre)의 관장이 됨

1919년 작품의 예술적 전환점 : 세잔 스타일을 버리고, 부드러운 선과 더 밝은 색상을 쓰기 시작

1920년 기-피에르 포코네(Guy-Pierre Fauconnet)와 함께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의 음악인 장 콕토(Jean Cocteau)의 연극 <옥상의 소(Le Boeuf sur le toit)>의 세트와 의상을 디자인함. 같은 해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는 베르나임-존느(Bernheim-Jeune)와 빌드라크(Vildrac)와 첫 번째 계약을 맺고 1932년까지 전시함

1921년 살롱 데 자르티스트 프랑세(Salon des Artistes français)에 참여

1922-1924년 이탈리아 장기 여행 중 비평가 피에르 꾸르티옹(Pierre Courthion)을 만남. 카탈루냐 도예가 조셉 로렌스 아르티가스(Josep Llorens Artigas)를 알게 됨

1923년 수채화를 사용하기 시작. 국가에서 파리와 그 기념물을 주제로 한 태피스리 제작을 요청함

1926년 기욤 아폴리네르의 <살해당한 시인(Le Poète Assassiné) de Guillaume Apollinaire> 36개 석판화 제작. 5월 22일, 국가 교육을 위한 레지옹 도뇌르 기사 작위(la Légion d’honneur au titre de l’Éducation nationale)를 받음

1929년 뉴욕 두덴싱(Dudensing Gallery)에서의 첫 개인전 개최

1935년 수채화에 필적하는 효과를 주는 유화 매체를 발명한 화학자 자크 마로제(Jacques Maroger)를 만남

1936년 샤요 궁(Palais de Chaillot) 극장의 바 흡연실 반원형 벽을 장식하기 위해 <센강, 파리에서 바다까지(La Seine, de Paris à la mer)>를 제작

1937년 국제 예술 및 기술 전시회(l’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et des techniques) 개최를 맞이하여 <전기 요정(La Fée Electricité)>을 제작

1940-1941년 독일군의 진격에 쫓겨나 남쪽에 정착

1943년 독일 당국의 독일 방문 공식 초청 거부

1944-1947년 코메디-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를 위한 새로운 세트를 제작

1948년 파리 루이 꺄레(Louis Carré) 갤러리에서 태피스리 전시

1950년 다발성 관절염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감. 뉴욕에서 전시 개최

1952년 41개 작품으로 프랑스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 및 회화 부문 수상

1953 3월 23일 포르칼퀴(Forcalquier)에서 사망 및 3월 25일 니스 시미에 묘지(le cimetière de Cimiez)에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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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가희_프랑스에서 공부 후 현재는 한국에서 강사와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