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했던, [사월의 동행] -장민승, <사월의 동행>展, 2016.4.16.~6.26. 경기도미술관 [에피메테우스의 열아홉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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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오전,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탄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가 원인 미상의 이유로 기울어졌다. 평평한 바다 위로 기우뚱한 배가 모두의 눈앞에 드러났다. 바다는 시간과 편을 먹고 속절없이 배를 끌어당겼고, 세상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세계는 순식간에 닫혔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목청을 경험했다. 침묵 당했다. 한계는 눈썹 끝, 코앞에서 우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4월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술가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곡비哭婢를 자처했다. 침묵하며 세상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다양한 울음과 몸짓이 터져 나왔다. 이래도 슬프고 저래도 아프기만 한 고통에 비명도 지르고 몸부림도 치며 호된 호통도 내질렀다. 그리고, 가만히 서로를 그러 안은, 소리 없는 울음도 있었다. 다시, 4월이다.
징후만으로 어떤 일들을 온전히 예견할 수는 없다. 기억을 복기復棋하고 인과관계를 아무리 따져봐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카산드라의 입술 끝에는 언제나 알아듣기 힘들고 믿기 어려운 말들이 걸렸다. 그녀의 말은 지나치는 조롱거리였고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서 더욱 알아듣기 어려웠고, 확인할 수 없었기에 의심으로 가득 찼다. 트로이 사람들은 숱한 의심 속에서도 그녀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은 하지 않았다. 위험의 증후는 예견되어도 지나친다. 그래서 어떤 일들은 아무 조짐 없이 다가온다. 감각이 아둔해서, 감각을 외면해서, 어떤 일들은 너무나 느닷없어서,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다.
<둘이서 보았던 눈>, 장민승, 2014, 단채널 비디오, 1시간 29분 51초
검은 장막을 걷고 들어간다. 마치 불투명한 푸딩 속으로 들어가는 듯 어둠의 먹먹한 표면이 만져진다. 두꺼운 어둠을 비집고 손을 내밀어 벽을 더듬으면, 길고 곧은 의자가 만져진다. 서늘하고 딱딱한, 반듯하고 냉정한 예의 바름으로 놓인 의자는 어둠과 함께 앉아있다. 옷깃을 모으고, 몸을 곧추세우며 무심한 의자에 앉는다. 진공의 공간에 놓인 고막만이 심장의 두드림에 흔들린다. 아무 소리 없이, 어떤 예고도 없이 화면이 밝아진다. 눈부시지 않은, 공간 속으로 적당하게 번지는, 가라앉은 회색의 낯선 빛.나 혼자다.
<둘이서 보았던 눈>, 2014, 단채널 비디오, 1시간 29분 51초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검은 액체 속에 번지는 하얀 우윳빛처럼 머릿속을 불투명하게 물들인다, 흑백의 잔잔한 바다 위로 언뜻, 무심한 빛이 지나간다. 곱게 빗어 내린 회색빛 실타래 같은 물결 사이로 침묵이 켜켜이 끼어있다. 두 팔을 벌려도 품어지지 않는 화면 속으로 속절없이 몸이 젖어 든다, 단 한 방울도 용납하지 않으려던 마음과 달리 한 올 떨군 무심한 머리카락에 온몸은 이미 흠뻑 젖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다는 너무나 조용해서, 간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어쩐지 저 바다를 아는 것 같아서, 기어코 내 속에서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폭풍이 일어나 사방이 거칠게 휘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며 중력을 거스른다. 살갗은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 무너진 성벽의 부스러진 돌멩이들처럼 바닥에 깔린다. 목구멍은 찢어질 듯 갈라져 마침내 터지는 한 번의 비명도 삼킨다. 그저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고 땅에 몸을 비빈다. 여기에 나 혼자다.
블루오브 신드롬Blue Orb Syndrome이라는게 있어. 바다에서 일어나는 광장공포증이지. 깊고 넓은 해저에 나 홀로 있다는 인식이 엄습하면,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의식이 핀포인트가 되는 거야. 감압은 말할 것도 없고 숨을 뱉는 일까지 잊어버리지.
-<7년의 밤>, 정유정, 2016, 은행나무, 501쪽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는 내내 요동치는 것은 파도가 아니라 우리 속의 기억이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공황상태처럼 생각이라는 것이 끼어들 시간도 없이 닥쳐오는 몸의 감각. 작가 장민승의 바다는 기억을 헤집고 감각을 흔들지만 과도하지 않고 과장되지 않은, 주관적 감각의 파도다. 나라서, 나이기 때문에,내가느끼는 감각이다. 아무에게나 환원되는 감각이 아니다. 일정한 우리에게만-동일한 경험을 한 우리- 불러일으켜 지는 기억의 감각이다.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오프닝 영상용으로 작업 되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의 기억은 바다를 바라볼 힘이 없었다(이 영상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계획대로 상영되었다). 이제 바다는 예전의 바다가 아니었고 바다는 두려워졌다. 눈물을 삼키기 어렵게 치 떨리는, 똑똑히 바라봐서 증발시키고픈 바다였다. 물을 다 퍼내 건져내고 싶었던, 손을 넣어 뒤집힌 배를 바로 세우고 싶었던 우리의 기억. 더는 예전의 바다를 만날 수 없었다. 작가는 상상이 고통이 되는 바다를 나 홀로 바라볼 시간을 건넸다.
<마른 들판>, 2014, 수용성 종이에 실크스크린, 제주 조약돌,
타원형 스포트라이트, 각 29X42X8cm, 6점, 가변 크기)
어두운 통로 벽면으로 환한 종이들이 떠있다. 종이 한 장의 가벼움이 허공에 솟구치며 환하게 빛난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듯 구겨지고 비뚤어진 종이는 빼곡한 잔주름 사이로 한 줄의 문장을 간신히 붙잡고 있다.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
낯선 바다, 눈물도 짜다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닿지 못한 아쉬움을 바다에 적시며
검은 나무여 예전엔 흰 눈 쌓인 나뭇가지였겠지
마른 종이 부르튼 입술
둘이서 보았던 눈, 올해도 내렸을까
눈 감은 한세상은 바다에 두고
유심히 보아도 먼지 한 점 없어라
매일은 뜬 눈으로
손을 잡으면 사라질 눈물, 뜨거운 눈
빈손은 허공으로
마쓰오 바쇼(1644~1695, 하이쿠 시인)
닿지 못한 제주 바다에 활자를 풀어주고 종이를 들어 올린다. 물에 씻긴 말들이 떠오르고 이리저리 흐른다. 어느 한 글자쯤은 가닿지 않을까. 마르고 마른 종이는 모든 진이 빠져서 홑겹의 껍질만 남은 듯 비워낸 속을 바스락거린다. 종이를 제주 바다에 담가 씻었다. 종이는 바다를 품은 채 마르고 말라 제주 조약돌에 고여 바람을 눌러 재운다. 뭐라도 해야 했던,뭘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던 시간에 조심스레 움직였을 다정한 손길이다. 창백하고 부들거리는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뜨거움이라기 보다 계속 함께 있고 싶은 온기였다. 우리는 모두 추워 떨었고 누구 하나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애도와 위로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고통의 곁에서 슬며시 손을 건넨다. 말은 아끼고 시선은 은유로 돌리며 침묵 속에 귀를 열게 한다. 빗장뼈를 활짝 열고 등뼈를 활처럼 젖혀 팽팽한 시선을 저 멀리까지 온 힘으로 던지라 말한다. 온몸을 활짝 열고 버티라 한다. 입 있는 자들이 뱉어 놓은 허울 좋은 말 잔치에 귀 기울이지 말고 첫 숨을 골라 몸을 세우라고 말한다. 망망한 바다와 씻긴 시詩와 가만 했던 침묵을 기억하고 뭐라도 해야 했던 첫 마음을 다잡아 낱개로 흩어진 감각을 다발로 묶으라 한다. 작가 장민승이 보여준 바다는 그저 바다다. 어떠한 서술도 묘사도 불필요한 그저 바다일 뿐이다. 자극적으로 상기하지 않았고, 일부러 추동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흐느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는 예술이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위로하고 애도하는지 넌지시 짚어준다. 그 바다는 뭐라도 해야 했던 그가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진 기억이다. 그 바다가 우리에게 기억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른 몫을 가지고 지켜가야 할 약속이다.
- 2014년 이후 일 년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미술관 도슨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의 집사가 되었다. 지금은, 이 글도 쓰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사월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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