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심코 길을 걷다 마네킹에 입힌 옷들을 보곤 한다. 그리고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의 차림을 보고 생각한다. 그들의 나이, 직업, 성격, 심지어는 한 번도 이야기조차 해본 적 없을 이의 가치관까지. 의식했든 안 했든, 우리는 겉 차림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한다.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빅데이터와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의 관습과 문화는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성이 된다. 그렇다면 옷에서 사람을 빼면 어떨까? 마네킹조차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옷만 두둥실 떠서 거리를 활보한다면? 안창홍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패션 전쟁. <유령 패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람의 몸을 그리는 목적이 몸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과 사람의 본질적인 근원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사람의 몸을 제외한 겉 혹은 패션을 그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안창홍 작가의 작품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안창홍 작가의 인터뷰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지만, 한 가지를 더해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건 그의 거친 풍자와 비판 속 숨겨진 애증이다.
<안창홍, Ghost Fashion 2021'1, 2021>
안창홍 작가는 사람의 흔적을 쫓는다. 혹은 사람이었던 것의 흔적. 문명을 발전시키다 못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가속도가 붙자 낙오해버린 인간의 흔적. 안창홍 작가는 그것을 애도한다. 이쯤이면 거친 비판처럼 느껴지는 그의 표현은 오히려 장례식에서의 묵념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이미 먼 과거부터 전해져온 ‘패션’이란 욕망이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안창홍, Ghost Fashion 2021'19, 2021>
작가는 현대에 와서 패션이 욕망을 대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이것이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고, 예견된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 이유는 세태에 대한 애증 때문이다. 사회운동가든 일반인이든 작가든 관심 없는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한 비판과 분노와 의견은 결국 관심에서 시작된다. 나는 좋은 관심이든 나쁜 관심이든 그것을 하나의 애정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애정이 기반이 돼 나오는 신랄한 비판을 애증이라고 보는 것이다.
<안창홍, Ghost Fashion 2022'1, 2022>
이런 생각에 한 가지 더 확신을 가지게 된 건, 그가 ‘유령 패션’ 연작에 사용된 디지털 드로잉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사진을 고른 뒤, 인물을 지우고 덧그리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옮겨진 작품에 유화로 마무리한다. 혹자는 이 과정을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현대 패션 문화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평하지만, 작가는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를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편리성과 새로운 도전. 모순이 생겼다. 패션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생산과 소유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 작가의 말이라 더 아이러니하다. 아마 혹자의 평은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발로겠지만, 나는 그 해답을 애증에서 찾고야 만 것이다.
안창홍 작가의 작품은 매력적이다. 사람에서 시작해 패션으로, 패션에서 사회로, 그리고 결국 다시 사람으로 귀결되는 순환 속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때 이른 납량 특집처럼 보이지만, 지금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