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한 베를린의 모습은 ‘회색’이었지만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Hamburger Bahnhof – Museum für Gegenwart – Berlin)>에서 작품들을 만난 후에는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듯이 이 도시에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제프 쿤스(Jeff Koons)>,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현대 작품들을 본 이후 이 도시는 오로지 ‘회색빛’일 거라는 편견을 바꿔놓았듯이, 독자들에게 이 글이 현대미술과 조금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길 바란다.
베를린을 눈앞에 마주하고 처음 꽂힌 단어는 ‘회색’이었다. 독일이라는 도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 베를린에 왔는데 스위스를 다녀온지라 약간의 어두침침함을 느낀 것이다. 베를린 공항에서부터 숙소가 있는 베를린 중심부까지 U반과 S반(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역시나 이탈리아에서 마주했던 지하철 냄새와 같은 냄새가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내 몸만 한 짐을 낑낑 거리며 들고 갔기도, 날도 흐렸기도 한 터라 그 때를 생각하면 베를린은 ‘회색’이라고 기억될 줄 알았지만 ‘찰나의 순간’이 그 편견을 없애버렸다.
독일 베를린(Berlin)
베를린에 도착한 둘째 날 역시나 날씨는 구름이 가득하고 햇빛 한 점 없는 회색빛 날이었고 비가 한두 방울 왔지만, 독일인처럼 호기롭게 우산은 쓰지 않았다. 독일은 지하철 표를 미리 끊어야 하지만 검표검사에 걸리는 것은 복불복이다. 돈이 많지 않은 학생 여행객으로서는 티켓 값이 아까워서 차라리 검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렇게 호기롭게 그곳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Hamburger Bahnhof – Museum für Gegenwart – Berlin)>이다.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본 미술, 전시관의 형태 중에 가장 ‘Hip’ 했다.
이곳은 1846년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를 다니던 기차역으로 만들어졌으나 교통량 증가로 1884년 폐쇄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중 하나였던 기차역은 이후에 철도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고, 분단 시절 방치되다시피 하다 1996년부터 현대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백남준 작가부터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이 톰블리 등등의 현대 작가들의 컬렉션을 자랑하며 다양한 실험적인 기획 전시가 연중 끊이지 않는 곳이다.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관이기에 본관의 전시를 다 관람한 후, 긴 통로를 지나가면 또 다른 전시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지하철역을 환승하면서 전시를 보는 느낌이 드는 이곳은 어린아이들부터 중후한 노인들까지 전 세대가 함께 와서 즐길만한 곳이다. 왜 베를린을 예술가의 도시라고 하는지, 왜 베를린 인구의 50%가량이 예술가인지를 알게 해주는 전시공간이다.
In the exhibition, key aspects of am expanded concept of sculpture are addressed in a succession of rooms, under the headings Memory - Site - Body – Energy.
이 미술관의 전시는 기억-장소-신체-에너지라는 주제로 방들이 연결되어 있다. ‘Memory’ 방에는 이탈리아 여행 후 그 도시를 색으로 남긴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등 테마별로 다양한 작품들이 자리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주제는 에너지에 관한 작품인데 이 공간의 설명이 새로웠다. 1868년 샤를 보들레르는 조각은 구체적인 물질성 때문에 현대의 물질적 경계의 특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변화하는 특성을 담을 수 없어 ‘boring(지루하다)’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후 100년 동안 조각 예술은 영속성은 물론이고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조각 예술을 잘 표현한 작가는 독일 태생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이고 그의 작품들이 ‘Energy’ 공간을 가득 채웠다.
Joseph Beuys_The Capital Space
벽에 걸린 블랙 보드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요셉 보이스의 분석이 적혀있고 그 해석에 따르면 ‘자본은 경제적 개념을 넘어 정신적이고 창의적인 잠재력과 동일시된다’고 적혀있다. 앞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는 에너지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하면서 조각 예술의 영속성과 에너지 전달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Joseph Beuys_Directional Forces of a New Society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요셉 보이스의 작품 중 일부는 그가 강단에 섰을 시절 자신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설명했던 칠판들이 이리저리, 혹은 겹겹이 쌓여 늘어져 있었다. 여담을 풀자면, 그는 학생들에게 드로잉을 많이 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백남준 작가와 생전에 절친한 우정을 나눈 것으로 유명한데, 백남준 작가와 같은 플럭서스 멤버이면서 사상과 철학이 통하는 동시대의 예술가인 요셉 보이스는 낯선 독일에 살던 한국인 백남준을 보살펴주며, 동시에 함께 퍼포먼스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 역시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눈에 익은 한국 이름과 그의 작품이 보이자 어찌나 반갑던지,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더 생긴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Joseph Beuys_Tallow
소의 지방인 ’우지‘를 굳혀 만든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과거 10년에 한 번 독일 뮌스터에서 개최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아트페어에 출품되었다고도 한다. 사람이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연물 속 에너지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환하여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사회를 커다란 비물질의 조각이라 상상했던 보이스는 자신을 생각을 시각화하는데 특별한 재료인 펠트, 천, 지방을 사용했다. 이는 모두 인간에게 온기를 주는 재료이다. 거대한 크기의 동물 지방 덩어리에 철로 된 벨트가 채워져 있고 온도계는 섭씨 29도를 유지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에서 추락했으나 그 지역 원주민 타타르족이 그를 발견해 동물의 지방을 온몸에 발라주고 펠트지 천으로 감싸 구해줘 목숨을 건졌다. 그는 이후, 실존적 경험을 살려 펠트와 기름 덩어리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였기에 ‘따뜻한 기운이 사람을 살린다’라는 그의 메시지를 진실하게 관객에게 전달하였고 그 지열을 품은 암석은 차가운 전시장 바닥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Jeff Koons_완전 평형 시리즈 중 /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이탈리아에서는 현대 미술 대신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두 눈에 담았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마주했다. 독일의 베를린에선 제프 쿤스(Jeff Koons)의 완전 평형한 세계를 만났다. 제프 쿤스의 <완전 평형 시리즈>는 수조 안에 떠 있는 농구공이다. 물이 절반정도 찬 수조 안에 안정적으로 떠있는 농구공은 완벽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환상이라고 해석된다. 제프 쿤스는 이 농구공이 물 위에서 완벽한 균형이 잡힌 채로 떠 있게 하기 위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을 포함해 50여 명의 물리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지금은 강아지 풍선 모양의 거대한 작품으로 유명한 제프 쿤스는 이 <완전 평형 시리즈>를 통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은 실제 기차역을 개조했기 때문에 넓기도 넓고 천장도 돔 형식으로 되어있다. 프랑스에 오르세 미술관이 있다면 베를린에는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관을 지나 다른 전시 공간으로 향하는 길은 정말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기차를 갈아타는 길 같았고 그 전시 공간은 실제로 기차 화물 보관소를 이용했다고 들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이 이렇게까지 설렐 수는 없었다.
이동한 전시공간에는 사이즈가 훨씬 더 큰 작품들부터 걸어가는 통로를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놓기까지, 다양하면서 일명 ‘Wall works’라고 불리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부분마다 조금씩 전시 작품이 바뀐다고 알고 있는데, 이곳의 주를 이루는 큼직큼직한 작품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다양한 관람객과 소통한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작년 여름에는 이 공간에 <Friedrich Christian Flick>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지금은 잠시 문을 닫고 있지만 일 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또 어떤 새로운 작품들로 그 공간을 채웠을지 기대된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베를린에 방문하게 된다면 첫 번째로 발걸음을 하고 싶은 장소다.
George Segal_Man Installing Pepsi-Sign
Bruce Nauman_Raw War
* (왼) 조각이나 그림으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작품들을 선호했지만, 그 대신 특이한 방식으로 우주에 대한 실험을 했다.
* (오) 그는 홀로그램, 네온사인, 사진, 인쇄물,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했다. 나우먼의 개념 미술 작품은 미적 가치보다 의미를 강조하며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그는 존재와 고립에 관한 논쟁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종종 반어법과 말장난을 사용하곤 했다.
Gerhard Richter_VorhangIII(Hell) / Gerhad Richter_Vorgang
<VorhangIII(Hell), 1965>와 <Vorhang, 1965), 커튼을 의미하는 이 두 작품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품이다. 이 미술관에 방문하기 전부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왔기에 그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모든 작품과 열심히 대화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첫 작품은 <촛불과 해골, 1983>이다. 작품의 배경은 어두운 실내이고, 탁자 위에는 이빨 달린 해골과 불타는 양초가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미술인들에게는 낯익은 주제인 바니타스(Vanitas) 그림이다. 바니타스란 ‘구약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단어로 해골, 촛불, 모래시계 등 시간의 흐름이나 소멸을 상징하는 사물을 빌려 삶의 유한함과 욕망의 허무함을 전하는 그림을 말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그것을 오래된 사진첩에서 발견한 흑백사진처럼 흐릿하고 모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기법으로 전달한다. 오른쪽 작품은 사실 이렇게 사이즈가 작은 줄 몰랐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은 사이즈였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이 글을 적어나가면서 찾아보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작가 미상>이 2018년에 개봉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야기는 영화 리뷰와 함께 다음 연재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처음 마주한 베를린의 모습은 ‘회색’이었지만 이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만난 후에는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듯이 이 도시에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편견이란 것은 참으로 위협적일 수도, 그렇지만 어떠한 계기로 한순간에 바뀌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이 베를린은 오로지 ‘회색빛’일 거라는 편견을 바꿔놓았듯이, 독자들에게 이 글이 현대미술과 조금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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