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알리는 소리, 군밤타령
따끈한 겨울 간식들이 생각나는 코가 시리고 손이 시리는 계절, 겨울이 왔다. 어느새 길거리에는 붕어빵, 호떡, 군고구마 등 겨울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았다. 맛있고 따뜻한 여러 겨울 간식 중에서도 발길을 이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군밤이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는 물론이며 군밤 장수들이 손님들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흥이 나는 ‘군밤타령’을 주제가로 선정하여 틀어 놓고는 하기에 저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꽤나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민요집성』 에서는 이 노래를 ‘군밤 장수가 군밤을 사 가라고 노래조로 외치는 소리’라 해설했다. 또한 ‘군밤타령’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귀에 익숙한 음악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흥얼거리며 따라 할 수 있는 유명한 노래이며, 밝고 흥겨운 선율로 후렴구에서 군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군밤 장수가 이 노래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경기민요의 하나라고 알려진 ‘군밤타령’은 엄밀히 말하면 경기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가진 ‘신민요’이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새로운 민요를 의미하는 신민요는 넓은 의미에서는 근래민요로, 좁은 의미로는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한 갈래로서 기존의 전통 민요와 양악, 일본 가요 등 외래 음악적 요소가 합쳐져 창작되었다 보는 것이 통설이다. 신민요와 전통민요를 구분하는 방법으로는 구전으로 전승되었는가 아니면 작곡가와 작사가가 있는 창작 민요인가를 확인하면 된다. 즉, 언제, 누가 만들어 불리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전통민요와 달리 작사, 작곡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신민요이며, 대체로 음반 산업이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국민속예술사전』에 따르면 1932년 녹음된 유성기 음반에 ‘군밤타령’이 있고, 작곡가가 전수린(1907~1984)으로 되어있어 노래의 근원을 알 수 있다. 다만 음원이 전하지 않아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형성 시기를 대략 20세기 초에서 1932년 사이로 추정할 뿐이다.
‘군밤타령’은 음악적으로 전통 음악 민요의 선율을 사용하였고 반주에도 국악기를 활용하였으며, 타령 장단을 자진모리의 한배로 연주하는 형태의 자진타령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곡조의 일부나 가사 속 내용은 전통민요 풍을 이어받고 있는 점으로 보아 신민요의 요소와 전통적 요소가 적절히 결합된 통속민요라 할 수 있다. ‘군밤타령’은 대중적인 탄생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불러지며 여러 변화를 겪었고, 오늘날의 가사와 선율을 가진 노래로 정착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흥겹고 신나는 선율과 후렴구의 가사로 군밤 장수들이 자주 틀어 놓는 이 ‘군밤타령’은 사실 후렴을 제외하면 군밤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군밤타령은 13절과 후렴으로 구성된 곡이나, ‘군밤타령’의 곡명은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야 에라 생율 밤이로구나”의 후렴구에서 따온 것으로 단순히 후렴에 군밤이 나오기 때문에 ‘군밤타령’이 된 것이다. 최근 이 노래는 각 절이 순서대로 항상 똑같이 불리지 않고 창자가 구성한 대로, 혹은 상황에 따라 노랫말의 내용을 바꾸어 불리기도 한다. ‘군밤타령’의 가사들을 살펴보자. 다음은 비교적 유명한 노랫말들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 바다에 어허얼싸 돈바람 분다
눈이 온다 눈이 온다 이산 저산에 어허얼싸 흰 눈이 온다
나는 총각 너는 처녀 처녀 총각이 잘 놀아난다 잘 놀아나요
풍년이 온다 풍년이 와요 금수강산에 어허얼싸 풍년이 왔구나
나는 올빼미 너는 뻐꾸기 올빼미와 뻐꾸기가 잘 놀아난다 잘 놀아나요
*후렴구: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야 에라 생률 밤이로구나
앞서 잠깐 언급했던 『민요집성』의 ‘군밤타령’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해보면 이 노래는 군밤 장수가 군밤을 팔면서 주변의 생활과 관련된 일들을 여기저기서 주어다 노래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1절 ’연평 바다에 어허얼싸 돈바람 분다’는 연평도 바다에서 벌어졌던 조기잡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한때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혀 조기 잡이를 위해 수많은 어선과 어민들이 몰렸고, 큰돈이 되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이렇게 군밤타령에 ‘돈바람’이라는 가사로 남아있다. 1절 외에 해석할 여지가 있는 가사는 찾아볼 수 없다.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마을 처녀 총각의 사랑, 풍년을 소망하는 가사가 전부이다. 이와 같이 ‘군밤타령’은 사람들의 소망과 정감을 표현하거나 남녀 간의 사랑을 명랑하게 표현했다. 따라서 군밤타령은 군밤과 관련된 내용이라기보다는 그저 다른 민요들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속된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군밤장수가 군밤을 팔기 위한 호객행위로 사용되기에는 전혀 무관할 듯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군밤장수에게 군밤타령은 가사 내용이 중요하기보다는 그저 일을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노동 과정의 수고스러움, 욕구불만 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발생한 유희요로 보는 것이다. 입김이 절로 나오는 추운 날, 두터운 복장에 귀까지 내려오는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군밤장수가 철제 드럼통을 이용해 밤을 구워 내는 겨울의 독특한 풍경을 상상해본다. 군밤장수는 길거리 한구석 또는 골목의 모퉁이, 찬 바람이 코를 아리게 하는 날씨에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군밤타령과 달달한 군밤 냄새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군밤이 익어가는 냄새와 구성진 노랫소리에 이끌려 3천 원에 작은 한 봉지를 구매한다. 다만, 우리는 고소한 군밤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연탄불에 군밤을 굴려가며 연신 구워 냈던 군밤장수의 애환 그리고 군밤이 익어가는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향수를 함께 사는 것이다. ‘군밤타령’을 ‘군밤 장수가 군밤을 사 가라고 노래조로 외치는 소리’라는 구절은 가히 무리가 없는 해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