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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 ARTLECTURE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Art & History/
by 훈수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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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베토벤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갓난아기들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들까지 흥겨운 리듬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해주는 흥의 원천입니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와 돌맹이을 타악기로 삼았을 우리의 조상들은 태초부터  원시적인 수준이겠지만 생동감 넘치는 리듬 위주의 음악을 즐기며 살지 않았을까요? 그림 역시 인류가 최초로 거주했던 동굴 속에서 발견되는 벽화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류가 등장하면서 함께 나타난 초기 형태의 예술이었습니다.


인류의 기원과 괘를 함께 하는 음악과 미술은 이렇듯 시작은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여흥으로 시작하여,  인간 지성의 발달과 함께 점차 발전과 변모를 거쳐 현대에는 단순한 여흥 거리가 아닌 인간 정신의 고양과 우리의 지성을 나타내 주는 높은 지위를 갖추게 됩니다.


그렇다면 미술과 음악, 어떤 것이 더 우위일까요? 또는 그 둘이 합쳐서 좀 더 나은 제3의 길이 열리지는 않을까요?  이런 예술의 근본에 대한 질문들은 인간이란 본질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커져갔던 근대를 거치며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존의 체재에 반대하는 새로운 물결이 시대적 대세였던 근대의 유럽에서 정치나 사회문제뿐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 있어서도 기존의 구세력에 반대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고, 파리에서 시작된 미술계의 분리파 운동도 그런 새로운 움직임 중의 하나입니다.


파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하지만 그 근원이 되었던 파리에서는 영향이 크지 않았는데, 뮌헨을 거쳐 빈에 가서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됩니다. 단순히 미술 자체에서 기존의 보수적인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던 것과 달리 빈의 분리파들은 회화, 건축, 공예에 걸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운동이며, 과거의 예술 양식에서 분리하여, 생활과 기능을 연결한 새로운 조형예술의 창조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빈에서 나타나는 까닭은 당시 빈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로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럽의 정치 문화적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더 이상 갖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오스만튀르크의 2차례 침공을 겪고 나면서 점차 그 위력을 잃기 시작하다가, 19세기에 들어서는 독일 제국의 맹주 자리를 놓고 겨룬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급속도로 쇄락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패전을 했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을 염두에 둔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배려 덕에 수도 빈은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게 되었고, 빈이 가지고 있던 화려함과 부유함이란 외형도 지속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하부 계급 사이에서 증가하던 체제에 대한 불안감은 결국 빈으로 대변되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내면에 점차 혼돈과 몰락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합니다.


벨 에포크로 표현되던 꽃피던 영광들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빈 시민들 사이에서 사회적 불안감은 점차 극에 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대의 분열음은 그에 대한 반항을 불러일으켜 사상과 예술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 서로 간의 조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등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기 독일어 문화권에서 대표적인 예술가와 사상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와 프리드리히 니체 등은 미술과 음악 그리고 형이상학  등을 최고 수준에서 통합하는 종합예술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빈 분리파 미술가들에게 '전체를 향한 길'을 추구하게끔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할 전용 극장(바이로이트 극장)을 직접 설계하고, 자신의 오페라에 쓰일 대본(Libretto)도 직접 쓰는 등 통합된 예술가로서 완벽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가 살고 있던 동시대 및 후배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빈의 분리파 운동은 새로운 시대의 획기적인 공간조형을 지향하는 등 위를 향한 일부 예술가의 운동이 아닌 아래를 향한 시민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그것은 이 운동의 어원 자체가 로마시대에서 유래가 된 특권계급에 대한 서민 계급의 분리운동에서 기원을 찾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분리파의 핵심과 가장 일치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또한 빈에서는 당시  프로이트의 성과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보수적인 기존 사회구조에 적지 않은 반향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런 영향은  클림트를 위시한 많은 빈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바그너는 그 스스로는 베토벤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예술의 흐름이었던 전체를 향한 길에서, 음악과 극의 통합을 이루어 내고자 했던  바그너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인 '합창'에서 그가 나가고자 하는 새로운 음악적 형식 및 사상적 혁명의 본보기를 보게 되었고, 스스로 9번 교향곡을 분석해서 편곡하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그의 자서전인 '나의 인생'을 통해 직접 밝히고 있는데, 바그너가 보여주는 사상과 새로운 시도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및 사상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니체는 젊은 나이에 '비극의 탄생'이라는 명저를 통해 바그너가 시도한 새로운 예술 방향에 찬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1902년에 열린 빈 분리파의 14회 전시회는 이런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베토벤에 대한 오마쥬로 이루어지게 되며, 빈 분리파의 전시회중 가장 완성도 높고 성공한 전시회로 알려져 왔습니다. 클림트는  이 전시회에 '베토벤 프리즈'란 제목으로 장식벽화 작업을 합니다. 


금속공예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클림트(1862-1918)는 미술공예 학교에 들어가 건축 장식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역사화와 벽화를 그리는 기법을 배웠고, 역시 화가였던 동생과 함께 그리스의 도자화나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절충한 사실주의 양식으로 국립극장, 박물관이나 교회의 벽화, 극장 무대의 커튼 등을 맡아 제작하여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 클림트의 이와 같은 작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Burgtheater'에 작업한 천정화와 벽화들이 있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통해서 3D 이미지로 감상해 보시죠.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xhibit/the-burgtheater-cycle-of-paintings/xQKCiFk_Ivy0Kw


14회 분리파 전시회에서 클림트는 이런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살린 작품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전의 작품들이 보여주던 그리스나 비잔틴 미술의 영향에서 점차 클림트의 특징인 상징과 관능성 등이 그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토벤 프리즈'는 전시장의 벽면 상단에 작업을 한 벽화입니다. 전시회장 가운데에는 막스 클링거가 제작한 베토벤 동상이 자리를 잡고 그 주위를 둘러싼 벽에 작업을 한 이러한 형태는 마치  베토벤 신전을 만들고자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신전이 왜 나오는지 당황스러우신가요? 먼저  Frieze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프리즈 (Frieze)는 고대의 사원(신전) 건축에서 유래한 건축물의 외부 장식 요소입니다.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기둥 위에 올려진 지붕 사이의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신전의 상단 테두리를 둘렀던 부조 형식의 조각 장식에서 유래가 되는데요, 페르시아 및 그리스 로마 시대에 많은 사원(신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내부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 자리잡기 시작하며 천장 바로 아래 벽에 작업된 뮤랄(장식벽화) 등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시면 프리즈 부분이 설명이 되어 있는데요, 많이 알려진 유명한 예로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가 있습니다. 영국이 그리스에서 일부를 가져와 대영박물관에 전시를 하고 있는데, 아래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대영박물관 소장 파르테논 프리즈


그렇다면 이제 왜 베토벤 동상과 그것을 둘러싼 베토벤 프리즈가 베토벤 신전 같다고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시냐요?


바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전이 가지고 있던 특징인 신전 중앙에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동상을 위치하게 하고 그것을 모시고 있는 신전의 지붕을 둘러서 프리즈로 장식을 한 것처럼 전시의 형태를 중앙에 베토벤 동상을 배치하고 주변 벽의 상단에 베토벤에게 영감을 받은 프리즈를 배치한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존경하는 대상을 신과 동등한 위치에 자리 잡게 한 것이죠.


클림트의 이 프리즈는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의 합창과 성악 부분을 위해 사용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송가 'An die Freude'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이 송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바탕으로 바그너가 해석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맞추어 베토벤이 지향한 예술세계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프리즈의 시작 부분에서 물에 떠 있는 듯이 흐르고 있는 Genii라는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인 행복을 열망함을 상징한다고 하며, 곧 고통받는 인간상을 의미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커플과 애원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구원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는 곧 적대적인 힘을 나타내는 터번을 둘러쓴 고릴라(티포에우스)와 질병과 광기 죽음을 의미하는 그의 세 딸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예술을 상징하는 여인들을 지나 세상을 향한 입맞춤을 통해 환희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프리즈'는 전체적으로 클림트가 꿈꾼 유토피아의 실현, 즉 예술과 헌신적인 사랑을 통한 인간 구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그가 많은 영향을 받은 바그너의  작품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인 'die fliegende hollander'(방황하는 화란인)에서 사랑을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여주인공 Senta의 지고지순한 희생을 통해  저주에 묶여있던 선장은 구원을 얻게 되며  (2012년 바이로이트 실황 연주 첫 부분입니다)



, Tannhauser(탄호이저)에서도 여주인공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통해 탄호이저가 구원을 얻는 실마리가 생기니까요.   (탄호이저 서곡)



사실 이러한 내용은 19 세기말의 후기 낭만파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던 순진한 예술관 (예술 지상주의와 기독교 중심적인 남성 우월주의)의 구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클림트의 작품들은 다시 한번 세기말이 도래하고 있던 20세기 후반 우리 앞에 재 등장하고 있습니다.

1986년 빈국립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베토벤 사이클의 음반 표지에 바로 빈이 자랑하는 클림트의 '프리즈' 이미지들이 사용됩니다.










역시 9번 합창 교향곡의 표지에는 환희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한다는 입맞춤 부분이 사용되었네요.

2차 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 초반에  베를린 필과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가 연주하던 9번 교향곡은 상처 받고 슬픔에 빠진 당시 사람들에게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였으며, 그러한 증거들이 지금까지도 실황 녹음들로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https://youtu.be/F54_nb2dc6w  1942년 베를린 실황 연주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1년 바그너가 창시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전후 최초 공연에서 푸르트벵글러는 다시 당시 최고의 멤버들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인류에게 고하는 음악으로 이것보다 더 적합한 곡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이 완성되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이 베토벤의 교향곡이 바그너의 음악축제에 올라갔다는 것 역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좋아하는 덕후들에게는 최고의 명연주로 꼽히는 푸르트벵글러의 바이로이트 실황 연주는 베토벤과 바그너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던 빈의 예술가들이 펼친 14회 빈 분리파 전시회에 대한 모든 것을 음악으로 들려주고 있는 듯합니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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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의왕_다양한 분야와 소재를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