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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디자인'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 ARTLECTURE

일상은 '디자인'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Artist's Studio/
by 윤정민
Tag : #우리, #역할,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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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디자인'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Design Ato Z>


<Design Ato Z>


늘 고민한다.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일까. 휴학을 한 지금, 좋은 디자인에 대한 것을 곱씹으며 과거 나의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민망한 것들이 많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디자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완성의 상태에서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계속 돌봐주고 키워주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돌보고 키우는 과정에서 더 나은 방식은 없었을지, 더 경제적일 수는 없었는지, 건너뛰고 넘어간 부분은 없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나의 것은 '좋은' 디자인이 되지 못한다.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것임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좋은 디자인들은 여백을 지닌 작품이라는 것이다. 실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1년 전쯤에 우연히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의 작품을 접했기 때문이다. 카뮈의 예술철학은 그의 작품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는 늘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이다. 디자인 프로세스를 밟을 때, 스스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작업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집어넣게 된다. 한 가지 디자인을 둘러싸고 생겨나는 무수한 걱정들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어 진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덕지덕지 붙은 과잉 장식들은 관람자가, 사용자가 그들의 생각과 해석을 덧붙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디자인은 길을 잃고 결코 좋은 디자인이 되지 못한다.


예전 나의 작업들 중에도 그런 것들이 많았다. 당시 만족하고 넘어갔던 것들 임에도, 다른 수많은 경험 후에 마주하니 새로운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는 꽉 찬 작업인 것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간 말 그대로 비어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Designer A to Z>라는 이름의 작업으로 그 바람을 작게나마 행동으로 옮겨 보았다.  바쁜 개강과 과제들, 외부 작업과 산학, 광고 회사에서의 인턴까지. 많은 것들을 쌓아나가느라 스스로 정리하고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비움의 시간은 새해가 오기 전에 끝내고 싶었다. 연말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비움은 또 다른 채움을 위한 준비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쌓아나간 것들을 아귀가 맞게 다시 쌓으며 여백을 찾아나가다 보니 문득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의 궁금증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여백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우리가 공유하는 서로의 일 년이 어떤 방식으로든 각자에게 동질감을, 고마움을, 용기를 그리고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것을 느끼게 해준다면 더욱 좋겠다 싶었고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많은 것을 디자인하는 내 주변 12명의 사람들을 '디자이너'라 칭하고 그들에게 알파벳 A부터 Z까지 총 25개의 질문을 보냈다. 질문과 함께 자유로운 사진도 한 장 첨부해주길 요청했다. 그것 말고는 어떤 제한 사항도 붙이지 않았다.


받은 답변들은 A5라는 판형 아래 자유롭게 배치했다. 그리드도 질서도 없었다. 그리고 함께 받은 이미지는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게 주인의 이름을 지우고, 비트맵으로 원본을 누그려뜨렸다. 모든 것은 독자의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책은 크게 간단한 프로젝트의 개요와 12명의 답변, 작업 후기로 구성되어 연말이 되기 전 답변을 해준 11명의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를 포함해서 12명이었으므로 11명의 추가적인 답변만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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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창작자의 가이드를 없애고 독자의 방식대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업은 나에게 의미가 깊다. 작업이 끝난 지 약 두 달 여가 지났고, 그 사이에 만난 친구들의 후기를 통해 작업의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들 덕에 가능했다. 책을 만드는데 함께 힘써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너무 고맙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새해를 보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각자의 일상을 멋지게 디자인하고 있을 그들이 새롭게 쌓아나갈 것들이 여전히 궁금하고, 또 그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질 무수한 여백들이 궁금하다. 작년 나의 작업이 그랬듯 다른 무언가가 기회가 되어 우리가 또다시 서로를 공유하며 성찰할 시간이 또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우리 모두가 세상을 '좋은'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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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민 Yun Jeongmin - SADI에서 Communication design을 전공 중이다. 디자인을 하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