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호의의 탈을 쓴 욕망의 민낯 | ARTLECTURE

호의의 탈을 쓴 욕망의 민낯

-드림스(2025)-

/Art & Preview/
by 제이문
Tag : #욕망, #, #영화
호의의 탈을 쓴 욕망의 민낯
-드림스(2025)-
VIEW 20

HIGHLIGHT


꿈을 지닌 자는 하루를 다르게 산다. 꿈을 이루려는 열망이 강한 자는 멈춰있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간절한 손끝에 꿈이 스치는 순간, 그에게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반드시 붙잡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는 이제 꿈을 꿈꾸지 않고 욕망한다.

멕시코의 젊은 거장 미첼 프랑코 감독의 신작 <드림스>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멕시코 청년과 부유한 미국 기업가인 제니퍼의 이야기다. 2012<애프터 루시아>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의 대상을 받으며 등장한 이후, 프랑코 감독은 줄곧 기능하지 않는 가족이나 사회, 일상 속에 숨겨진 폭력성이나 비극, 계급 간의 갈등과 긴장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그의 이런 관심사는 이번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전작인 <메모리>에서 호흡을 맞추며 복잡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제시카 차스테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차스테인의 상대역으로는 세계적인 멕시코의 발레리노인 이삭 에르난데스가 캐스팅되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꿈과 욕망의 경계

 

꿈과 욕망은 무언가를 원한다는 지점에서는 일견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들이 향하는 지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꿈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상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향한다. 꿈은 꿈꾸는 자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꿈꾸는 자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꿈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향한다. 하지만 욕망은 다르다. 욕망은 결핍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은 자신을 향하지 않고 결핍된 대상을 향한다.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 욕망은 사그라들지만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집착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꿈과 욕망이 명확한 실선으로 경계가 나뉘어있지 않은 만큼, 인간은 자주 꿈과 욕망,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이 혼돈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막대한 부와 뛰어난 미모를 지닌 제니퍼는 멕시코에서 아름다운 청년 페르난도를 만나 그에게 깊게 빠져든다. 둘의 만남은 각자에게 꿈의 활로가 되어준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가족과 높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개인적 자유가 없는 제니퍼는 그를 통해 꿈도 꿀 수 없었던 사랑을 만끽하게 되고, 발레리노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멕시코에서는 그 꿈을 펼칠 수 없던 페르난도는 그녀를 만나면서 다시 미국으로 진출할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에 꿈에 부푼 페르난도가 발을 딛는 순간, 제니퍼에게 페르난도는 간절히 원하지만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면서 그는 이제 사랑의 대상에서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원하는 마음과 포기해야 하는 마음의 극렬한 대립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갖겠다는 제니퍼의 과욕은, 애초에 그와의 사랑을 꿈꾸던 그녀를 집어삼키고 급기야 페르난도의 꿈마저 앗아가 버린다.

 

자본주의라는 정글

 

제니퍼는 왜 페르난도를 사랑의 대상으로 골랐을까? 미국 태생의 백인 여성이자 미국사회에서도 초 상류층의 일원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그녀가 페르난도라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멕시코인 청년에게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니퍼는 막대한 부와 뛰어난 미모를 지닌 여성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가족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오빠와 함께 일하며 그녀가 누리는 모든 부는 일견 그녀의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집에 아무 때고 들락거리는 오빠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그녀가 소유한 것들은 가족이 소유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대로는 결혼상대나 연애상대를 고를 수도 없는 처지에 있던 제니퍼에게 재능과 젊음 이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페르난도는 그녀가 가족의 허락 없이 소유할 수 있고,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가진 것이 없다는 점은 막강한 부를 지닌 그녀의 입장에서는 손쉽게 그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이점으로 작용했을 테고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제니퍼에게 페르난도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꿈같은 연애를 가능하게 해주는 그녀만의 은밀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페르난도는 비밀 보석함에 얌전히 들어가 있다가 그녀가 원할 때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현실을 은유하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멕시코의 영토 절반을 빼앗은 이후, 미국에게 멕시코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멕시코의 젊은 거장이 만든 이 영화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두 국가 간의 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세월 멕시코에게 취해왔던 선의를 가장한 착취와 자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이번 영화에서 제니퍼와 페르난도의 관계, 특히 제니퍼가 페르난도를 취하고 버리는 일련의 행위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제니퍼와 페르난도의 관계는 미국과 멕시코가 그렇듯 권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제니퍼가 주도한 관계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를 소유하려 했고 결국 그것은 페르난도의 강제추방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에 페르난도는 제니퍼가 자신을 멕시코에 묶어두려는 행위를 역으로 재현하며 제니퍼를 감금해 버린다. 하지만 그의 감금행위는 힘없는 자의 물불 가리지 않은 잠깐의 저항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는 권력자에 의해 죽음보다 더한 응징, 즉 꿈을 실현해 줄 다리를 잃고 만다. 이제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꾸는 꿈에는 차등이 없다. 그러니 현실이 어떻든 현실 위로 날아가 꿈을 꾸려는 자는 모두가 동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진정으로 서로를 동등하게 볼 수 있는 가?’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이 질문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진정으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와 무게에 씁쓸해진다. 진정함이 전제되지 않고는 동등함의 실현이란 요원하기 때문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제이문_작가, 영화 팟캐스터 라고 소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