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 예술계에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가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흑인 문화는 가장 활발하게 예술계에서 보이는 다양성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202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5관왕을 차지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미국 최고의 스포츠 행사인 파워볼의 하프타임쇼를 단독으로 선보이며 보여준 것은 이러한 흑인 문화가 인종을 떠나 아닌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Float, 2019, Mixed media
이번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동시대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 (Mark Bradford)의 국내 첫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다. 브레드포트는 196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어릴적 미용실을 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접했던 그는 31세부터 예술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수학한 이후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전시와 다양한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며, 이외에도 비디오, 판화 ,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사회적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Mark Bradford: Keep Walking>에서는 회화, 영상, 설치와 전시를 위한 신작까지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는 흑인, 퀴어, 도시 하층민 자신의 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작품의 기반을 삼아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을 추상적으로 풀어낸다.

The Hood is Moody, 2003, Mixed media on canvas, Collection of Anderson Cooper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콜라주 작품들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앤드페이퍼” 연작은 그의 첫번째 콜라주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미용실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던 파마용 용지(end paper)를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파마 용지를 토치로 태워 그을음 테두리를 만든 후 이를 용지 위에 나열해 콜라주 회화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염색약, 잡지 이미지 등 미용실과 관련된 재료들을 활용해 어릴 적 기억과 지역 문화의 특성을 작품에 담아내며 이 시리즈를 확대 시켰다. “앤드페이퍼” 시리즈 중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초기작인 “불안한 동네(The Hood is Moody)”(2003)이었다. 염색약으로 채색한 파마 용지를 겹쳐 격자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잡지 이미지를 콜라주한 이 작품은 제목과 같이 산산 조각난 불안한 동네 이미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모자이크된 유리의 너머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명확히 보이는 것은 아래에 위치한 운동화들 뿐이다. 운동화 위에는 사람이 서있는 듯 하지만 네모난 형상들에 의해 저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을 제목과 연관짓는다면 이 동네의 주소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일 것이다. 특히 후드(Hood)는 종종 슬럼가(Slum)나 할렘가(Harlem)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도시에서 주거, 경제, 치안이 극도로 안좋아진 지역을 의미한다.

Manifest Destiny, 2023, Mixed media on canvas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해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해 왔다. 그중에서도 전단지는 그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다. 평범한 광고 전단지부터 이혼, 대출, 저가 보험 등 특정 계층들을 노리는 전단지까지 다양한 문구들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작가는 이 위해 회화적 터치를 더해 오늘날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점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2023)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3개의 캔버스 위에 전단지를 활용해 ‘조니가 집을 삽니다(JOHNNY BUYS HOUSE)’라는 문구를 적은 이 작품은 취약 계층에게서 집을 사들이는 부동산 투기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한 계층을 타겟으로 ‘조니’가 집을 사서 당신에게 현금을 줄 수 있다는 광고문구인 동시에, 가난한 자의 간절함을 이용해 집을 뺏어 더 많은 부를 축적해 계층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He Would See This Country Burn if He Could be King of the Ashes, 2019, Mixed media sculpture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일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He Would See This Country Burn if He Could be King of the Ashes)”(2019)는 지구처럼 생긴 여러 크기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불타고 구겨진 종이 공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구에 묘사된 지구의 모습은 바싹 말라 거매진 바다와 사막과 같이 황폐해진 대륙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지구온난화의 극단적인 끝을 묘사하는 듯하다. 이러한 지구의 위기 앞에 작가가 관람객에게 하고싶은 말이 바로 이 작품의 제목에 내포되어 있다. 제목은 유명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나온 대사로, 피터 베일리쉬 (Petyr Baelish)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며 나온 문장이다. 베일리쉬는 드라마 내에서 대표적인 배신과 권모술수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이런 캐릭터를 설명하는 문장을 작품으로 택한 것은 우리의 모습이 베일리쉬라는 캐릭터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길 바라는 작가의 함의가 내포된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는 마크 브래드포드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와 세계의 문제로 확장시킨 작업 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도시의 불안과 계층적 갈등, 그리고 지구적 위기까지 담아낸 그의 작품은 추상회화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 동시대 사회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그 현실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