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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시공간, 칵테일 만들기 | ARTLECTURE

그림, 시공간, 칵테일 만들기

-조효리 개인전 : Horizontal Cocktail-

/Art & Preview/
by 이도요
그림, 시공간, 칵테일 만들기
-조효리 개인전 : Horizontal Cock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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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칵테일 바다로 돌진하는 자동차의 뒷자리 시점에서 시작한 전시는 영롱한 색감의 액체와 유리잔의 이미지가 펼쳐진 풍경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들을 먼저 ‘잘 그린’, ‘감각적인’ 그림으로 받아들인다. 동요하나 없던 완벽한 감각에서 곧 작가의 흔적과 약간의 거슬림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다 전시의 중간지점 영상을 기점으로, 내가 느꼈던 그림의 감각들이 갑자기 뒤틀어지는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구축한 가상화면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재를 더욱 명확히 삼아 시간의 흐름을 연출해 보인다.

Sunglasses and Mask, acrylic on canvas, stainless steel frame, 97x193.9cm, 2024



조효리 작가의 3번째 개인전 <Horizontal Cocktail>에서 우리는 그의 그림에 쉽게 현혹될 수 있다.  

칵테일 바다로 돌진하는 자동차의 뒷자리 시점에서 시작한 전시는 영롱한 색감의 액체와 유리잔의 이미지가 펼쳐진 풍경으로 이어진다. 매끈한 표면의 유리잔과 그것에 반사된 강한 빛, 일렁이고 흘러넘치는 액체, 잔털과 분진 가득한 샛노란 나비와 통통한 애벌레가 물줄기 앞뒤로 교차하는 모습 같은 것이 화면에 가득하다. 디자인 포스터나 컴퓨터 스크린 화면 같은 매끈한 색감의 그라데이션과 안정적인 구도로 인해 우리는 이것들을 먼저 ‘잘 그린’, ‘감각적인’ 그림으로 인지하게 된다. 조금 떨어져 본다면 출력된 그래픽으로 오해하며 ‘사진이야? 그림이야?’ 와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발이 4개나 달린 유리잔들이 중력을 거슬러 물줄기를 쏟아 내거나, 꽃잎이 서로 이어져있는 묘한 모습에 ‘AI가 그린 그림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The Boy Who Swallowed a Star_2, 

acrylic on canvas, 116.8x91cm, 2024


Gravity, acrylic on canvas, 160x160cm, 2024



그러나 옅은 상아색 배경 밑으로 은근하게 보이는 연필자국과 완벽히 원형이어야 할 사물의 일부가 에어브러시 사용을 위한 마스킹테이프 처리로 미세하게 각진 모습에서 이것을 실제로 그렸을 화가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그림의 프레임은 전시효과와 전시장 자체를 고려하여 은근히 변형되어있다. 자동차 룸미러처럼 가로로 길기도 하고, 전시장 모서리를 따라 꺾여있기도 하다. 동요 하나 없던 완벽한 감각에서 곧 작가의 흔적과 약간의 거슬림을 인지하게 되지만, 이는 문제의식이나 불쾌감까지 동반하지는 않는다. 인위적인 풍경을 내내 마주하며 묘한 긴장감도 끌려오지만 우선 오늘날 미술관에서 그림 속 사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에 속 시원한 느낌이 들 수 있겠다. 

전시의 중간 지점엔 잔들의 터널을 무한하게 질주하는 영상이 상영 중이다. 영상에서는 주체의 시점이 소실점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전시는 조금 다르게 인식된다. 낮과 밤을 배경으로 칵테일 잔처럼 기울어진 한 쌍의 캔버스 위에 양각으로 새겨진 워터마크가 거슬리는 <Horizontal Cocktail>, 유리창에 맺혀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레진으로 표현한 <Horizon>, 커다란 새가 유리잔 속을 들어가 부숴버리는 장면을 보이며 전시장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운 <해방>, 무엇보다 앞선 ‘잘 그린’ 그림들과는 한참 동떨어진 듯한 이 거대한 스티로폼 작업<Cheer!>은 무엇일까. 내가 느꼈던 그림의 감각들이 갑자기 뒤틀어지는 현장에서 멈칫거리게 되고 당혹감마저 떠오른다. 



시간의 흐름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 참여작품은 시간의 성질을 시각화하기 위해 ‘액체’ 이미지를 순환하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작가는(...) 부유하는 시간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투명한 칵테일 잔들을 등장시킨다.”

-전시평 (OCI미술관 제공)

 


Horizontal Cocktail, acrylic, paper on canvas, 160x160cm each, 2024



작가는 3D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상환경에서 시점과 구도, 빛과 바람의 조건까지 모두 고려하여 구성한 장면을 화면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과거 전시와 인터뷰에서도 줄곧 드러나듯이, 아무것도 없는 평면 공간에 시공간을 창출하고 실험하는 행위는 그가 줄곧 흥미를 가져왔던 지점이다. 그간 실험의 연속선상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소재를 더욱 명확히 삼아 시간의 흐름을 연출해보였다. 작가에 의하면 칵테일은 여러 가지 액체가 섞여 만들어진 술, 요동치는 물결이며 커다란 ‘순환’개념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앞서 본 흐르는 칵테일과 액체, 애벌레와 나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질주하는 차는 비슷한 의미의 장치이며 과거 풍경화와 정물화 속 알레고리의 전형성을 태연하게 담아낸다. 

완벽히 인공적으로 조성한 풍경을 캔버스에 불러올 때, 작가는 에어브러시를 사용하여 대상의 질감표현을 극대화시킨다. 사물의 질감과 형태가 강조되고 묘한 형태로 중복된다는 점에서 감각적인 광고이미지 또는 초현실주의 느낌이 풍겨나기도 한다. 게다가 가상에서 현실로 이끌어진 화면의 일부가 사각형의 캔버스 안에 머물지 않아 생경한 감각을 가중시킨다. 물을 흘리기 위해 잔을 기울 듯이 비스듬히 놓인 캔버스 표면 위로 워터마크가 솟아올라있다. 디지털 화면에서 저작자를 알리기 위해 씌워진 레이어인 워터마크가 제목을 띄고 현실세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 뿌연 차창에 맺힌 물방울을 음각으로 파내어 레진으로 메꿔 놓은 행위는 워터마크의 또 다른 버전이다.   



해방, acrylic, oil on canvas, 486.3x227.3cm, 2024



전생엔 레이어였던 무엇이 현생의 캔버스 바탕에서 울룩불룩 튀어나오려는 감각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에서 착안한 작품 <해방>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작가는 소설 속 거대한 독수리가 입으로 화자의 몸을 관통해나가는 장면에 강한 인상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빠른 물줄기와 바람의 표현으로 역동성이 느껴지는 그림은 유독 천장이 높은 일부 전시공간을 고려하여 거대하게 제작한 회화이기도 하다. 난데없이 등장해 미술관 공간에 파고든 거대한 새가 유리잔을 부수듯이 캔버스까지 찢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작가가 감각한 장면을 3D 가상화면에서 현실의 캔버스로, 나아가 입체적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스티로폼 작품인 <Cheer!>에서 꿈꾸는 듯이 부풀어진다. 



<Cheers!> 일부 



“지지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양감을 직조해 버리는 작가의 입체감에 대한 열망은 역설적이게도, 원격으로 사물의 현존을 구축하고자 하는 태도로부터 서사의 본질을 압도하면서 회화의 환영성을 상실하고 사물 자체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전시평 (OCI미술관 제공)


섬세하게 시공간을 구축하고 캔버스에 유려하게 표현해왔던 작가의 노력이 갑자기 칵테일 잔을 탑으로 쌓아올린 비현실적인 꿈으로 변모한 듯하다. 잔들은 음각으로 파여 실루엣만 보일 뿐이고, 장면을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환상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육중한 스티로폼 틀은 입체조각이라고 하기 애매하며 칵테일의 순환을 보여주는 그림의 배경체로써 존재하고 있다. 모든 시점이 뒤섞이고 뒤집힌 작가의 잠재의식을 고백하는 것만 같다.  

작가에 의하면 스티로폼은 주로 물건의 포장을 위한 지지구조이자 배경으로 기능하는데, 대상의 부재를 나타내며 푹 파여져 있으므로 도리어 원래 모양을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는 기이한 스티로폼 조형에서 도리어 작가가 그간 회화성에 대해 고민해온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재밌게도 이 조형물의 뒷면엔 작가가 실제 사용했던 스프레이 도구와 물감통을 끼워놓아서 스티로폼 지지체 본연의 목적을 드러내는 한편, 작품의 제작 조건과 화가의 상황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Cocktail To Go, acrylic on canvas, stainless steel frame, 97x193.9cm, 2024



이와 유사한 시도를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맨 처음 마주한 작품 <Cocktail to go>로 돌아가보면 안과 밖의 풍경이 태연스럽게 뒤집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자동차의 뒷유리 열선이 바라보는 자리에서는 자동차 실내 풍경이 이토록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유리창은 실내 풍경보다는 반대로 내가 있는 풍경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뒷면에는 자동차 속 인물이 담겨있다. 전시장 맞은편에서 이 장면을 바라볼 수 있는데 화가는 인물을 그려내는 대신 그가 쓴 고글 너머 풍경을 다시 비춘다. 

이렇듯 우리는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안과 밖, 주제와 배경, 가상과 현실, 그림과 입체, 이상과 현실과 같은 대칭적 개념들이 경계선을 기준으로 뒤집어지고 뒤섞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효리의 회화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이 서로를 등지지 않고, 마주보고 확장되는 형식으로 그림으로부터 구현된다. 모든 재료들이 겹겹이 쌓이다가 뒤집히고 섞이는 전시는 그 자체가 감각적으로 일렁이는 칵테일 같기도 하다.


2023년 OCI 미술관의 YOUNG CREATIVES에 선정되어 2024년 8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이번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조효리 작가는 지난 2024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주목해야 할 신진 작가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1일, 미술관 전시 프로그램으로 작가는 직접 도슨트 투어를 진행했다. “이걸 (..) 이런식으로, (..)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미소지으며 덤덤히 제작의도를 말하는 것에 비하면 그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측면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저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결국 목표라는 작가가 계속해서 보여줄 작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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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도요_보고 작게 말하는 사람